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바다 Mar 20. 2018

리더는 빈 그릇을 스스로 채운다

며칠 전 한국 근대사에 관한 책을 읽다가 뭉클한 생각이 들었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제에게 강탈당한 직후 일부 사대부들 중 '나라가 망했는데 죽는 선비 하나 없어서야..' 하는 심정으로 자결한 분들이 있었다. '매천야록'으로 유명한 황현 선생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기록에 따르면 76명의 고관과 왕족 등 친일파들은 총독부가 나눠주는 일왕 은사금과 귀족 작위들을 받아 챙기느라 희희낙락하였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치부가 시작됐다. 그와는 정반대 편에 서서 온갖 고초와 부침을 겪었지만 지금 역사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 숨 쉬는 독립운동가들도 많다. 2년 전 브런치에 쓴 '어느 청년의 미소'에도 적었듯, 그 시대 사람은 아니지만 내겐 1920~40년대에 대한 '설명하기 힘든' 아련한 향수 같은 것이 있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걸린 흑백 사진들을 하나씩 보면서 이 사진에 찍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당시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인가를 짚어보니 가슴이 찡했었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 출입구. 비좁은 거리에 선 작은 건물의 그 초라함에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새롭다. <사진=강바다>

가족들에게 들켜 자결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망국의 선비 몇 사람이 있다. 양명학의 대가인 영재 이건창 선생의 아우인 이건승, 정원하 홍승헌 선생 등이다. '자신의 한 목숨 망한 나라의 원통함에 함께 묻자'는 뜻을 이루지 못하자 식음을 전폐하고 폐인처럼 지내다가 뜻을 바꾼다. 기왕 죽은 목숨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망명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발걸음들이 모이고 꺼질 듯 버티면서 사그라들지 않은 채, 1919년 3월 만세 항쟁에 이어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는 임시정부 수립 후 일제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의 근간이 되었다.
1910년! 나라가 일제의 손아귀 안에서 마구 난도질당하는 시점, 영원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 대한제국에서 조선으로 나라 이름까지 강제로 바뀌어 미래가 보이지 않던 그 캄캄한 시대, 거친 어둠에 갇힌 소수의 선각자들이 처음부터 36년 후에 일어날 8.15 광복을 예견했을 리 만무하다. 절망 속에서 그들은 꺼뜨릴 수 없는 작은 희망을 위한 작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고 그것이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함 뿐이었을 것이다. 

이끄는 사람이란 리더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닌가. 

작은 시작을 만드는 그 첫걸음을 먼저 내딛는 사람,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함께 그 첫걸음을 내딛게 할 수 있는 사람. 그 걸음이 허황된 무용의 노력이 아니라 매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새로운 시작으로 열 수 있다는 자기 확신과 독려로 그 걸음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부끄러운 역사의 한 귀퉁이를 들여다보면서 목숨까지 버리려 했던 엄청난 좌절과 분노 속에서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암흑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는 그 힘의 원천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자기 앞에 놓인 빈 그릇을 리더라면 스스로 채워야 한다. 

자신의 가치관, 사물을 보는 뚜렷한 철학,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이것으로 반드시 해야 한다 라고 판단할 수 있는 자신의 주관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지식과 열린 경험을 토대로 세워진 주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며 언행의 일치를 보이는 사람을 우리는 리더라고 부른다.

이것이 없으면 자신의 빈 그릇을 다른 사람이 채워주길 기대하게 마련이다. 언제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으려 하고 뭔가를 해주길 기대하고 관심받으려 한다. 그렇게 채워진 그릇은 썰물처럼 금방 비워져 버린다. 계속 누군가가 자신이 가지지 않은 어떤 것들로 채워주길 기대하고 바라니 끊임없이 매달릴 수밖에 없다. 자기 집 곳간 열쇠를 남에게 맡겨놓을 수 없듯 자신의 내면은 스스로 채워나가야 한다. 명상을 하기 위해 인도 바라나시의 아쉬람을 전전할 필요 없이, 자기 집 작은 거실의 한 귀퉁이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을 알아차리며 자신이 원하는 행동의 방향을 선택하는 자기 성찰이 가능하다. 
나의 일상을 지탱하는 가치 - 감사, 겸손, 친절, 배려, 연민과 같은 너무나 평범해서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그러나 자신의 뿌리가 될 수 있는 이러한 가치관들로 자신 앞에 놓인 빈 그릇을 혼자서 채울 수 있다면 그 그릇에 투영되는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언행은 사소한 일이라도 자연스레 배어져 나올 것이다. 


1906년 강화도에 계명 의숙을 세우고 구국운동을 전개했던 이건승 선생은 개인의 마음은 미미하므로 여러 사람의 뜻을 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고, 신학문에 힘써서 지식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만주로 망명해선 민단에 가입하라는 일본인 순사의 압력을 뿌리쳐 '호적도 없는 이 씨 늙은이'로 불렸다고 한다. 
낯선 타국에서 맞은 환갑날, 계명 의숙 졸업생이 보낸 수저와 젓가락을 선물 받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음이 전해진다. 


망상(妄想)만 어수선하니 나라는 망하여 서글픈데
뜻이 큰 영재들 모조리 서로 헤어졌네
세상의 변고 이 눈으로 보니 누군들 변치 않으랴만
오직 자네들 마음만은 옛날과 똑같구려


찌질하고 서글픈 우리의 근대사를 읽어 내려가면서 생각과 행동에 대한 결단도 스스로 내려야 하지만 그에 따른 결과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도록 그릇의 크기를 함께 넓혀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힘으로 차곡차곡 채워야겠다. 빈 그릇을 내 것으로 가득 채워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기에. 

 

이전 09화 꼰대와 리더의 차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