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ltitasking과 Priorities의 허구
부활절 연휴가 시작되는 목요일 오후 퇴근 직전, 한 주동안 완료한 업무와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점검했다.
그런 다음, 금요일인 Good Friday부터 Easter Monday까지의 4일간의 연휴를 마치고 출근하는 화요일 당일과 향후 한 주동안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1. 중국 출장을 위한 비자서류 제출
2. 출장 시 가져가야 할 자료 준비 및 PPT 리뷰
3. 2분기 매출 현황과 각 협력사 별 실적 점검
4. 협력사 사장 A와 B와의 점심 및 저녁 약속
5. H와 향후 협력 가능성 타진을 위한 미팅
제일 시급한 일은 비자 서류 준비였다. 출장이 2주 앞으로 다가왔고, 비자 접수에서 발급까지 5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화요일 오전 동안 이 일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중국 영사관에 비자를 접수시키려면 구입한 항공권 사본과 호텔 예약 정보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비자 신청서는 작성 완료했고 중국 지사로부터 초청 서한과 초청자의 여권 사본 모두 받아 놓았다. 잠시 생각했다. 영사관의 비자 신청 접수는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딱 3시간. 출근하자마자 항공권을 확보하고 호텔 예약을 마쳐야 한다. 항공권은 시드니 본사에서 거래하는 여행사가 독점하기 때문에 뉴질랜드와 호주의 시차 2시간을 고려하면 이곳 시간으로 11시 (호주 시각 오전 9시)에 출근한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발권을 받는다 하더라도 11시 30분까지 중국 영사관까지 달리기엔 빠듯했다. 도착해서 번호표를 받은 후 또 얼마나 대기해야 할런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앞뒤 상황을 따져보고 일단 비자 신청은 수요일 오전으로 미루기로 했다. 화요일 하루 동안 여유 있게 모든 서류를 완벽히 준비하고 수요일 오전 출근하자마자 영사관으로 가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번 출장 준비물과 PPT는 아직 시간 여유가 있는 편이고 주요 업무 사이에 틈틈이 할 수 있는 일이다. 5번 H와의 미팅은 다음 주초 만나는 것으로 하고 수요일에 연락을 넣어두면 된다. 협력사 A와 B는 그들 각자의 시간에 따라 점심 또는 저녁 식사 겸 미팅을 가지면 되는 것이니 출근 후 오전 11시쯤 두 사람에게 따로 전화를 걸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사전 정리를 하다 보니 화요일 오전 출근해서 오전 시간 동안 집중해서 해야 할 업무는 2분기 매출 현황과 각 협력사 별 실적을 점검하는 것이다. 매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선 2분기 보고서를 뽑아 출력하고, 화요일 자 보고서를 토대로 각 협력사 별 매출 실적을 하나씩 짚어가다 보면 실적이 뛰어나거나 작년 같은 분기 대비 실적이 저조한 협력사가 나타날 것이다. 오후엔 이들 사무실 방문 또는 커피 미팅 등을 위한 간단한 사전 약속 또는 통고를 오전에 모두 마쳐놓아야 하겠다. 여기까지 한 주동안 해야 할 업무의 굵직한 사안들을 점검하니, 화요일 반드시 해야 할 두 가지 업무는 2분기 매출 현황 파악과 비자 신청 서류 완료로 요약되었다.
연휴 직후의 화요일엔 4일간의 휴무로 인한 밀린 업무들이 쏟아지게 마련이다. 사전에 없던 긴급회의, 고객에 연관된 돌발 상황, 전화와 이메일을 통한 협력사들의 급작스런 요청, 팀원 각자의 업무 현황 파악과 지원까지 반응해야 할 일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 와중에 내가 마쳐야 할 두 가지 업무를 염두에 두면 일에 휩쓸리지 않은 채 그 날의 업무를 파악하고 경중에 따라 미뤄야 할 것은 미뤄두고 당장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업무를 동시 다발적으로 처리하는 멀티태스킹 (Multitasking)은 허구다. 효율성도 낮을뿐더러 시간 낭비다. 앞에 언급한 다섯 가지 업무를 화요일 하루 동안 모두 처리할 수는 있겠지만 그 업무 내용의 완성도가 떨어질 것이 뻔하다. 그 보다는 단 한 가지 또는 집중의 강도가 덜 요구되는 부수적인 업무 하나 정도를 추가하는 것으로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긋는다. 이를 위해 다음 두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업무의 최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그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정해지면 순위에서 밀려난 다른 업무를 다른 날 다른 시간에 배정할 수 있다. 최우선 순위란 뜻의 Priority는 단수이어야 한다. 최우선 순위는 언제나 하나일 수밖에 없다. 우선순위들 (Priorities) 이란 이미 우선순위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의 최우선 순위들이란 말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둘째, 업무에 방해되는 사람이나 상황 또는 요청에 분명하게 No라고 거절한다.
물론 상대를 배려하면서 기분 상하지 않게 잘 거절한다. 이를 위해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은 그날 스케줄에 일정 시간을 막아놓는 Time Locking이다. 업무에 따라 20분, 45분 길면 90분까지 시간을 정해놓고 오로지 해당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일에 열중하고 있는데 팀원이나 타 부서 임원이 내 사무실에 들어오거나 전화가 오면 "미안한데, 지금 내가 중요한 보고서를 작성 중이어서 나중에 내가 연락하면 안 될까?"라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그쪽에서 미안하다면서 방해하지 않고 물러나 준다.
화요일 출근하면 무슨 일을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 이미 머릿속에 정돈되어 있다. 당일 출근해서 '오늘은 또 무슨 일부터 하지?'라고 머리를 긁적이는 사람보다 업무 처리 능력이 빠를 수밖에 없다. 매일의 업무를 점검하고, 해야 할 다음 날의 업무를 퇴근 전 머릿속에 분명하게 입력해 놓으면 언제나 자기 자리에서 앞에서 흘러가는 전체 상황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 내가 바쁜 리더는 멍청하다고 말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