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림 Jan 06. 2021

아버지와 겹쳐지는 내 그림자

술을 싫어했다. 당연했다. 어릴 때부터 지겹게 봐온 것이 투명한 물잔에 '꼴꼴꼴' 소주를 가득 따라 마시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으니, “난 절대 술 안 마실거야. 저게 뭐야” 말하며 자랐다. 알코올중독자와 아닌 사람을 나누는 '나만의' 기준도 생겼다. 소주잔에 술을 따라 마시면 즐기는 사람이고, 물컵 가득 소주를 콸콸 부어 벌컥벌컥 마시면 중독자로 보였다. 어머니는 술을 입에 대지도 못 하셨기에, 술을 적당히 즐기는 사람을 볼 기회가 없었다. 술을 마시는 것은 취하는 것이고, 취하는 것은 추해지고 게을러지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아주,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중2병이 창궐한다는 그 15세. 나와 친구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동해 어딘가에 있다는 친구 할머니 집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보호자 없이, 친구 넷과, 2박 3일 떠나는 첫 여행. 충분히 다 컸다고 생각했던 나이였기에 신나는 것은 당연했다. 어찌저찌 친구들 모두 부모님들을 설득해 여행길에 올랐다. 정확한 장소도, 집을 찾아간 과정도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별 무리 없이 도착을 했던 것 같다.


태어나 처음 가보는 진짜 어촌이었다. 오션뷰니 뭐니 따지고 할 것도 없이 집 앞을 가로 지르는 도로 건너로, 해변이 펼쳐졌다. 할머니는 혼자 그 집에 살고 계셨고, 동네 어르신들은 타지에서 손녀와 친구들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런저런 해산물들을 가져다 주셨다. 회부터 오징어까지, 온갖 해산물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중2병의 직격탄을 맞고 있던 우리들은, 출발 전부터 야침찬 계획을 세웠었다. 술을 마시자! 어른의 음료, 술을 마시자!

계획성 있게 출발 며칠 전 소주 '대꼬리'(1.8리터 페트병)를 구했고, 출발 때부터 가장 무거운 그 짐을 돌아가며 들고 할머니 댁에 입성했다. 할머니가 주무실 때까지 의미심장한 눈빛 교환을 했고, 할머니가 깊게 잠 드시기를 기다렸다가 대환장 파티를 시작했다.


각자의 주량이란 것을 알지도 못하던 때였기에 입 안으로 부어버리면 되는구나 하며, 종이컵에 소주를 부어 마구 들이켰다. 술이 들어가자 친구들이 저마다 숨겨온 사연들을 이야기하며 울기 시작했다. 한 명이 울면 따라 울고, 자기 이야기를 하다 복받쳐 또 울고. 나는 매일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욕하며 울고 울고 마셨다. 밤이 깊어갔다. 모두가 저마다의 아픔을 토해내던 자리... 시간이 갈수록 먹은 것을 토하는 친구도 늘어갔다. 친구들 등을 두드리다 눈을 떴더니 아침이었다. 어떻게 잠들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날, 제법 늦은 시각까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뇌가 이렇게 아플 수 있는 거구나, 머리가 인간의 몸에서 가장 무겁다더니 진짜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물도 마시지 못한 채 하루를 보냈다. 아버지는 이걸 어떻게 매일 마시는 거지 감탄하며,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역시, 다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학교 입학 이후, 본격 술의 시기가 찾아왔다. 몰래 마시지 않아도 되니, 주변 모두가 술을 마셨다. 잔디밭, 벤치, 술집 등 장소만 달라졌을 뿐, 소주, 막사(막걸리+사이다), 꿀막걸리(꿀+막걸리) 등등 다양한 주종을 번갈아 가며 마셔댔다. 마치 술을 마시기 위해 대학에 들어왔다는 듯, 술자리는 끊이질 않았다. 나 역시 학비며 생활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술은 마셨다. 그즈음 알코올중독 치료를 위해 전문 병원에 입원하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도 여전히 술을 마시고 다녔다. 아버지는 퇴원 후 한동안 금주를 하셨기에, 늦은 밤 술냄새를 폴폴 풍기며 집으로 들어가다 아버지를 맞닥뜨리는 경우도 많았다.

"기집애가, 작작 좀 마시고 다녀라."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듣는 날이 올 줄이야. 새삼 나의 성장을 느끼며 "네-"하고 대답했던가. 어쨌든 아버지는 퇴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술을 찾으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역시- 또 시작이군"했고, 나 역시 술을 마시고 다녔다.


아버지와 나는 다르다고 늘 선을 그었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술자리를 좋아하는 것이지만, 아버지는 꾸준히 혼자 매일 술을 드셔서 저렇게 되신 것이라고 선 긋기에 바빴다. 아버지는 요즘 말로 '혼술파'였다. 혼자 드셨고, 혼자 취하셨고, 가끔 혼자 대폭발을 하셨다. 낙오자, 실패자, 술에 빠져 인생을 포기한 사람. 그게 내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술에 빠진 것은 똑같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았고, 아버지와는 다르다며 선을 긋고, 마음 편히 술을 마시고 다녔다.

 

혼자 취하는 아버지와 밖에서 취하는 딸. 그렇게 술 마시기에 열정적인 부녀였지만, 단 한 번도 둘이서 술을 마신 적은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입사 전까지, 단 둘이 꽤 오랜 시간 살았으면서도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인 적은 전혀 없었다. 아버지가 거실에서 술을 마시고 계시면 못 본 척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꽉 닫아걸고 웬만해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족 모임 등 아버지에게 술 한잔 따라 드릴 기회는 간혹 있었지만, 나는 한사코 그것을 거부했다. 그런 식으로 '불만 있음'을 꾸준히 표출했던 것이다. 한 번쯤은 마주 앉아 이야기하며, 이야기가 어렵다면 멀뚱멀뚱 앉아서라도, 맥주든 소주든 마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당시에는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지금은... 그랬으면 좋았겠다 생각은 하지만, 다 지난 일. 돌이킬 방법은 없다. 




아이를 재우고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홀로 TV 앞에 앉아 멍-하니 맥주를 홀짝이는 날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컴컴한 거실, 밤 늦도록 번쩍이는 TV 불빛, 그 앞에 술 잔 하나 쥐고 울다웃다 하는 쪼그려 앉은 사람의 그림자. 그것은 내 머릿속에 가장 오래도록 남아있는, 아버지의 '상징'같은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 그대로를 내가 흉내내고 있음을 알게 됐다. 앞으로 어떡하나, 캄캄한 미래에 잠도 오지 않는 밤. 맥주를 들이키며 '이 맛에 살지' 하고 있는 나를 본다. 컴컴한 거실 속 내 그림자와 아버지의 그림자가 조금씩 겹쳐진다. 그토록 선을 그었었는데, 이렇게 비슷한 모습으로 앉아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평생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왜 저렇게 무책임하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비슷한 모습으로 앉아 술을 들이키다보니, 조금씩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버지에게도 '순간 마취제' 같은 것이 필요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자리는 없고 아이들은 자라고. 어쩌지 어쩌지 하며 머릿속은 복잡한데, 딱 떠오르는 해결책은 없고 잠도 오지 않고. 그런 뒤척임들 속에서 지쳤을 것 같다. '일단 좀 내버려두자'하며 한 잔 하고, '이 맛에 살지'하면서 또 한 잔하고, 술이 술을 부르면서 '이거라도 마셔야 살겠다'하며 또 마시고... 그렇게 하루하루 넘겼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에라이, 몰라' 하며 낮에도 술에 손을 뻗게 되고, 에라이 하는 날들이 늘어가고. 마취의 순간은 즐거웠으나 현실은 변하지 않았을테고, 또 술로 도망치고, 그렇게 한 발 한 발 무너져 어디서 어떻게 손 써야 할 지 모르는 순간까지 흘러가신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는,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버지와 똑 닮은 모습으로 쪼그려 앉아 있는 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더 마음을 다잡게 된다. 여기서 무너지면 아버지처럼 되는 거야, 무너져선 안돼, 호기롭게 다짐도 해본다. 내 모습은 아이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적어도 무책임한 어른으로 남지는 말아야지, 결심해 본다. 아버지의 딸이지만, 아버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사는 것. 그것이 내가 평생 좇아가야 할 가장 큰 목표인 것 같다.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지만 닮아가지는 않으리라. 그것이 부모님과 아이, 그 사이를 살아가는 내가 해야할 중요한 역할인 것 같다. 

이전 14화 커피 한 모금이 주는 여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