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의 개

가난한 너를 위하여 [1부 12월 12일 : 남겨지다]

by 성냥팔이 소년


제자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녀석의 유일한 피붙이였다. 수업을 마치고 빈소를 찾았다.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제자를 발견했다. 외투를 벗어 덮어주고는 녀석을 살폈다. 맞은 것같이 눈가가 퉁퉁 부어있다. 해남에 사는 인척에게 맡겨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멀다. 앞으로는 만나기 어렵겠지. 후회가 된다. 놀이동산에 가자고 그리 떼를 썼는데, 가지 못했다. 후회가 된다.


한 시진쯤 지나 아이가 깨어났다. 전부를 잃은 이에게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할까. ‘괜찮니?’라는 말은 같잖았고 ‘힘내.’라는 말은 당찮았다. 미어지는 마음과 다르게 해줄 말을 찾지 못했다. 무엇 하나 도울 수 없는, 간판뿐인 보호자이기에. 진심으로 훗날을 기약하여도 결국 물 위에 새긴 맹세가 되겠지. 착잡했다.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노래 좀 들어볼래, 조심스레 물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녀석을 바싹 당겨 품에 안았다. 무슨 곡이 좋을까. 저릿한 마음으로 목록을 뒤적이다 Pink Martini의 ‘Smile’에서 멈춘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따스한 목소리를 지닌 노파가 자장가처럼 가사를 읊조린다.


작고 여린 영혼이 나에게 기대, 의미도 모르는 타국의 노래를 한 소절씩 귀담아듣는다. 고개를 들어 할머니의 영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내 커다란 눈동자가 그렁그렁 해진다. 손을 뻗어 얼굴을 가려주었다.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깜박, 깜박, 눈꺼풀을 깜박일 때마다 아이의 눈에서 굵은 슬픔이 흘러내렸다. 얹어진 나의 손을 뜨겁게 적셨다. 덩달아 나의 속을 울게 하였다.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둡고 싶었다. 조명은 작은 스탠드로 충분했다. 의자에 앉아 병째 한 모금을 삼켰다. 유령처럼 무력감이 엄습한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필 중인 원고들이 책상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이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그대로 들어 서랍에 쑤셔 넣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살 수 있는데, 솔잎이 되려고 애를 써왔으니… 무능은 나에게 내려진 형벌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글이 아닌 곡을 썼더라면, 연주할 수 있었더라면. 차라리 음악이 되고 싶다. 너에게 스며들어, 너를 위로하고 싶다. 간절히.




image_©Marianne St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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