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달리기 하위 10%의 10킬로 도전기 #2
쓰다 보니 길어진 마라톤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1 에 이어
지난 11월 첫째 일요일 문제의 jtbc 마라톤 10킬로 구간을 완주했다.
별 다른 감회나 거창한 독후감은 없다.
그저 수천 명의 타인과 함께 평소에는 달려보지 못할 송파대로를 달렸고
잠실대교를 건너 돌아와 올림픽 메인 스테디움을 달려 결승선을 통과한 것이 전부이다.
(10킬로 참가자만 5000명이다 500명 아니고...)
본인이 국민학생이던 88 올림픽 때, 학교에서는 올림픽 경기를 참관하고 그 입장권을
제출하는 숙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엄마손을 잡고 처음 방문한 잠실체육관 꼭대기에서 구 소련과 미국의 배구경기를 관람했고
경기전 우연히 마라톤 주자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30년이 지나 그때 그곳을 내가 달렸다 생각하니(달릴 때는 생각 못한다. 힘들어서;;) 묘한 기분이다.
(아 물론. 제일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너무 늙었구나"였다)
사람들이 물었다. 충분히 혼자 달릴 수 있는데 왜 대회를 나가냐고.
기록과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시계와 휴대전화를 가지고 스스로 만족하면 되지 않냐 묻는다.
물론 맞는 얘기다. 대회 이전에도 이미 10킬로를 몇 번 달렸고 기실 gps의 오작동으로
12킬로를 달리기도 했으니 대회 출전 전에 어느 정도는 목표를 이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달려본 적이 없다. 아마도 그렇기에 이렇게 묻는 것이라 확신한다.
대회를 참가해야 하는 목적은 분명하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게 독려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실천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목표를 포기해야 할 수 만개의 이유들이 우리 삶을 덮치고 우리는 그것을 핑계 삼아 스스로에게
포기에의 면죄부를 주는 것에 익숙한 그런 족속, 바로 인간이 아닌가.
아울러 대회를 완주하게 되면 나는 공식적인 기록을 가지게 되는 마라토너가 된다.
그것도 공신력 있는 신문사가 보증까지 해주는 남들과는 다른 그런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더 이상 10킬로 완주에 걱정을 하지 않는다. 고민하지 않는다.
왜? 나는 이미 증명된 사람이기에 그렇다.
대회를 마치고도 우리는 다시 달린다. 그리고 이제는 걱정 없이 다음 목표를 바라보며 달린다.
설사 오늘 달리다가 퍼져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는 10킬로를 달린 사람이니 말이다.
마라톤으로 검색되는 수많은 sns의 이미지들 중 대다수는 예쁜 옷을 입고 예쁜 표정으로 V자를 하며
밝게 웃는 자신의 모습들이었는데 그들에게서는 마라톤이 주는 인간의 한계에의 도전,
나 자신과의 싸움 같은 절박한 느낌을 받을 수 없었기에,
이들의(그때는 나와 그들이 완전히 다르다고 믿었다) 대회 출전에 상당히 부정적이었건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달리지 않는 마라톤이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이런 본인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임을
대회에 참여한 유모차를 함께 밀며 달리던 부부를 보며 단번에 느낄 수 있었는데.
부부가 즐거워하는 얼굴, 같이 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건네는 파이팅 소리 등은
내게 생각지 못한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모두들 본인처럼 달리는 행위에만 집중했다면 얼굴을 찡그릴 만한 그런 상황이었음이 분명했지만
놀랍게도(적어도 본인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어느 누구 하나 자신의 주로(走路)를 방해한다고
화내는 일 없이, 그들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웃으며 자신의 길로 비켜가더라.
이런 동주자들의 모습에 놀라기도 잠깐,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초반에 벌어진 일이라 느낄 수 있었지 중반 이후에는 달리느라 정신이 없었;;;;)
흔히들 마라톤은 외롭디 외로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 말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문구가 마라톤이라는 스포츠의 특성을 전부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 싶다.
물론 지극히 일부의 선수들과 특출난 선수급의 엘리트 동호인들에게는 그런 프레임을 적용해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나 같은 일반 동호인들에게 마라톤이란 그저 작은 도전이고 여러 사람과 함께 할 이벤트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건강한 취미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어찌 되었건 열심히 달려야 한다. 최선을 다해 말이다.
하지만 혹 열심을 다하지 않는 것 같다고, 뛰지 않고 걷는다고 그들의 행위를 아무 의미 없는 시간낭비라고
폄하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겠구나 대회를 참가해보니 느낄 수 있었다.
(이 대회는 같은 장소에서 모든 참가자들이 출발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엘리트 동호인들이 이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며 수군거리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언제부터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건지,
왜 자신들의 레이스만 의미가 있고 10킬로에 참가한 일반 동호인들은 그렇지 않다 여기는지,
대회에 한번 참가해본 본인도 쉽게 느낀 이런 감정의 선한 변화를 왜 가지지 못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썼지만, 솔직히 "엄청 추했다"라고 말하는 게 좀 더 솔직하리라.)
처음 참가해본 jtbc 마라톤은 그 역사와 규모가 상당했다.
대회의 시작 전 몸풀기 행사, 그리고 대회를 마치고 즐길 수 있는 부대행사들이 충분했는데
아쉽게도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오롯이 혼자 참여했기에 전부 다 즐길 수 없어 아쉬웠다.
지극히 혼자 하는 스포츠이지만 함께하는 이가 절실했던 이번 대회는
참가한 사람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즐거운 축제였다.
누구는 스스로의 기록을 위해 달리고 다른 누구는 식구를 건강을 기도하며 달리고
또 어느 누군가는 오롯이 오늘을 즐기기 위해 달리는 것.
서로가 목적과 이유는 달랐지만 한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달리는 것으로 함께 즐거워하는 일
그것이 대회의 의미였고 이것만 충족된다면 기록이니 싸움이니 하는 것들은
어쩌면 부수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엘리트 선수들의 달리는 모습을 보지 못해 그렇게 생각한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확실히 말하지만 그들이 단 1초라도 자신의 기록을 줄이고자 이를 악물고 달리는 그 모습은 아름답고
분명 고귀한 행동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분명 나와 같은 동호인들에게 대회는 남들보다 빠른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는 것이,
내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이 참가의 유일한 목적과 의미는 아니리라.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과 응원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빡빡한 삶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신나게 뛰고 웃으며
함께 얽혀뛰어 다른 참여자들에게 좋은 기운을 주고 또 돌려받는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대회의 가장 큰 의미이자 순 기능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마라톤에 대해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무조건 시작하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편히 이야기할 수 없는 초짜 러너지만 이것만은 말해주고 싶다.
네 발로 기어 다니던 인간이 직립을 시작한 이후, 그들에게 가장 좋은 운동은 러닝이 되었다는 사실은
굳이 의학적인 소견이나 자료를 첨부하지 않아도 명백한 사실이며,
신체에 가장 무리가 덜 한 운동이기에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고 말이다.
뛰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걸어도 된다. 아무도 그것에 뭐라 하지 않는다
혼자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주위의 러닝 크루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같은 의지를 가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은 도전의 벽을 조금은 낮춰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크루들의 응원을 받으며 뛰는일은 글을쓰는 본인은 해보지 못한 소중한 경험이 되리라 확신한다
*크리스토퍼 맥두걸의 TED 영상 , 달리기를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작),
마라톤에서 지는 법(조엘 H 코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