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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고 Nov 15. 2019

외래어의 남발에 대하여

우리가 생활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말들 중 불필요한 외래어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한번도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 없다면 친구나 동료 혹은 가족과 하는 대화를 할 때 얼마나 많은 외국어를 쓰고 있는지 한번 실험을 해 보라. 가능하면 대화를 녹음해서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비단 우리가 하는 대화가 아니더라도 길거리로 나가서 간판들을 한번 둘러보라. 영어 등 외국어가 아닌 상호를 몇 개나 찾아볼 수 있는가?

전에 일하던 곳에서 실제로 회사의 상호를 정하는 데 참여해 본 경험이 있다. 처음에 우리말 단어가 한 두 개 제시되었지만 이내 제외되었다. 뭔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당시 나도 그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결국 그럴싸해 보이는 영어 단어가 상호로 채택되었다. 외국어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한자어를 써야 하며 순 우리말 단어가 상호로 사용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외국어가 아닌 우리말 단어를 쓰면 왠지 없어 보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예를 들어 보자.


직장이나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용어 중에 ‘프레젠테이션’이란 것이 있다. 계획 등을 발표하는 것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의 발음을 우리말 식으로 표현한 것인데 사전적 의미로는  ’제출, 제시, 수여, 증정 등의 뜻도 있다. 예전엔 ‘발표’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 때부터인가 ‘프레젠테이션’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하더니 이젠 ‘프레젠테이션’ 대신 ‘발표’란 말을 쓰면 왠지 원시인 취급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프레젠테이션’이란 말이 좀 길고 발음하기 까다롭다 보니 줄여 ‘PT’라고 줄여 쓰기도 하는데 더 이상 ‘발표’라는 말은 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쯤 되면 ‘발표’란 말이 우리말 사전에서 사라질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조금 다른 예로, ‘씨스루룩’이란 말이 있다. 영어의 ‘see-through look,’을 말하는 것인데, 피부를 살짝 살짝 비쳐 드러내 보이는, 살갗을 보이는 패션이란 것으로 오건디 같은 투명한 천을 소재로 만든 블라우스, 셔츠, 드레스 등을 말한다. 주로 패션 등 분야에 이처럼 원래 단어 그대로 음을 따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우리말로 말을 풀어 쓰거나 새로운 용어를 만들기가 까다롭다는 이유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심플하다,’ ‘콘텐츠,’ ‘글로벌,’ ‘럭셔리,’ ‘스탠다드,’ 비하인드 스토리’ 등의 말들은 그냥 ‘단순하다,’ 내용(물),’ ‘세계적인,’ ‘화려함(한),’ ‘뒷 이야기’ 또는 ‘내막’이라고 쓰면 안 되는 것일까? 단순히 듣기에 그럴싸해 보인다는 것 말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들을 굳이 외국어로 사용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앞에서 한자어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우리말의 운명과 그 불완전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처럼 불편이나 제약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말을 쓰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을 것들마저 외국어로 갈아 치우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유독 다른 문화를 수용하는 데 인색하고 누구보다 민족성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우리 말에 대한 자존심은 이렇게 낮은 것일까? 어쩌면 또 다른 문화적 사대주의인가?


물론 나 자신도 통역이나 번역 일을 하다 보면 특정한 영어 단어나 표현을 우리 말로 옮길 때 적절한 말이 생각 나지 않아 막히거나 원래 영어 단어 그대로 사용하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우리말로 옮길 때나 우리말로 대화를 할 때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외래어나 영어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지만 외래어 사용이 워낙 우리 생활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아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유독 우리말을 할 때 외래어나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의 우리말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닌지 아니면 서양 문화 우월주의 같은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가진 것은 아닌지 한번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적 소통이 아니라 그 문화를 제대로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 쪽 문화를 전체적으로 깊이 있게 이해하고 통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필요한 문화인의 자질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직업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영어와 같은 국제적인 언어가 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없이 감사하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영어가 세계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보다 완전한 세계 공통어가 된다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의식적인 서양 문화 숭배와 자기 언어에 대한 비하로 나타난다면 그보다 한심한 일도 없을 것이다.


한번 뒤집어서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어떤 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 나라 사람들이 불필요한 부분까지 자국의 언어 대신 한국어를 남발해서 쓰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느낄 것이고 의사소통의 문제가 없으니 편리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문화에 대한 존경심이나 관심이 생길까? 왠지 무시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을까? 


외국어를 알고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외국 문화를 더 많이 경험했으며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열린 사고방식과 객관적인 시각을 지니고 상대적으로 기회를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그러한 이해와 통찰을 나누어주고 나아가 자신이 속한 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할 책임이 어느 정도는 있지 않을까?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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