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대

by 김정은

몇 차례의 우기와 건기 사이에서

생은 폭발했지

짝짓기의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세계의 자손들은 늘 사랑을 나눴어

나는 그저 오랫동안 비 내리는

열대가 좋았을 뿐


반만 물에 걸친

맹그로브 사이로

수줍게 지나가는 빨간 코코넛 게와

비를 맞던 날

풀이 자라는 소리들 사이로

열대림의 안개

아마존의 속살들 어루만지며

대기와 대지는 사랑을 나눴지


작고 흐물거리는

내 여린 손가락들

물속에 가만 넣으면

꼬물거리는 생들이

자꾸만 나를 간지럽혀

의미 없는 열대림의 정경 속에서

생은 가장 충만했고

나는 더욱 행복했어


내 팔에 앉아 피를 빨던 모기는

아마존의 석양을 바라보며

잠깐 울었지

자신도 붉은 태양처럼

한 번은 찬란하고 싶다고

스스로 만들지 못해

흡혈해야 만 하는 비루한 삶에도

의미는 없겠느냐며


몇 차례의 우기와 건기 사이에

세계의 자손들은

별생각 없이 사랑만 나눠

풀들은 어느새 내 키를 덮어

나를 장사 지내고 있어

무의미의 무덤에 묻힌 나는

비로소 의미 지옥을 탈출하고,

내 어깨에 앉아

<슬픈 열대>를 읽으며

붉은 태양 닮은 피 한 모금

꿀꺽 삼키는

'슬픈 모기'는

의미를 찾는 내내

생이 마렵다




* 슬픈 열대: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쓴 책의 제목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래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