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새학기인 캐나다 초등학교는 매년 이 맘때, 11월 초순경에 성적표의 일종인 Elementary Progress Report Card를 집으로 보낸다.
평가항목은 크게 두 가지로 학습능력 및 학습태도, 그리고 과목별 성적으로 나뉜다. 학생들의 학습능력 및 학습태도는 두 달간 담임선생님이 학생을 보고 관찰한 결과를 토대를 바탕으로 가장 훌륭한 Excellent, 그다음인 Good, 그럭저럭 만족인 Satisfactory, 그리고 노력을 요한다는 Needs Improvement 등 총 4단계로 평가된다.
과목별 성적은 과목 담당 선생님이 과제와 시험 등을 통해 3단계- 발전이 더딤(Progressing with difficulty), 잘 따라하고 있음(Progressing well), 매우 잘함(Progressing very well)로 평가한다.
우리 아이들도 리포트 카드를 가방에 가져왔는데 초등 고학년(한국에서는 중학생)인 큰 아이는 생각보다 점수가 높지 않아 약간 속상해했다. 둘째는 아무 생각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성적이나 평가에 관심이 없다.
나의 경우 집에서 아이들을 따로 학습을 시키는 건 아니라서 성적이 평균만 되면 만족하는 편이다. 낯선 나라에서 적응하며 잘 지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기 때문에 우수한 성적까지 바라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학습 태도에 관해서는 다르다.
우리 아이들이 엄청난 수재는 아니어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려 노력하는 편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학습 태도나 능력은 그래도 이제까지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새학기에는 둘째의 경우 학습태도 및 능력 부문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것이다. 지난 학년까지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던 아이였는데 뭐가 문제일까 고민이 되었다.
이 성적표를 받고 나면 곧바로 선생님과 학부모의 개별 면담 시즌이 도래한다. 3일간 약속 날짜를 미리 정해 그 시간에 학교에 방문하면 담임선생님과 20분간 상담할 수 있다. 그 전에 둘째 담임 선생님이 전화를 해서 아이의 영어 실력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니 좀 더 신경을 써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런데 그때 통화하면서 든 느낌은 선생님이 아이의 개성이나 성향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학습 능력에만 관심이 있다고 느꼈다. 아니나다를까. 이 선생님은 재작년 큰 아이의 불어 선생님이었다. 큰 아이 역시 선생님이 로봇처럼 딱딱하고 차갑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선생님에 대한 편견이 조금 생기자 공연히 불만이 생겼다. 상담날 평가 항목마다 왜 이렇게 평가하였는지 조목조목 물을까 고민도 되었다. 하지만 결론은 선생님을 믿기로 했다. 때로는 아이의 전인적인 교육 뿐 아니라 아이의 학습 그 자체에 집중하는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행운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또한 둘째 아이에게 필요한 평가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갈무리하니 상담일에 큰 아이와 둘째 아이 선생님들께 꽃을 선물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한국의 문화도 알릴 겸 나는 학교에 카네이션을 들고 갔다.
This is for you.
선생님을 만날 때 첫 인사였다. 카네이션 다발을 선생님께 드리자 두 선생님 모두 무척 감동하신 것 같았다. 두 분 모두 여성이기도 했고, 나 역시 누군가 우리 집에 초대할 때 꽃을 들고 오면 그게 그렇게 기쁘고 좋았다. 둘째 담임 선생님은 역시나 딱딱한 태도로 시종일관 영어에 대한 부족한 부분만 이야기 하셨다. 작년 담임 선생님의 경우에는 둘째의 읽기 향상을 위해 매주 책을 복사해 가방에 넣어주셨고 나는 이 책을 날마다 읽혀 주었다. 그리고 상담할 때도 아이의 좋은 점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 후 고쳐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알려 주셨다. 지금의 담임 선생님은 아이의 부족한 부분만 시종일관 지적하니 그 부분이 아쉬웠지만 선생님에게 집에서 더욱 신경써서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왔다.
선생님의 부탁을 받은 후로 아이의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단어 공부와 일기 쓰기 등 평소보다 강도높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글과 영어 모두 글쓰기 능력을 기르기 위해 한글로 일기를 쓰고 다시 영어로 쓰기를 하고 있는데 첫째날에는 무려 두 시간이 걸렸다. 다음날에는 한시간 반으로 줄어들었고, 날이 지날수록 점차 익숙해지는 중이다.
나는 아이들이 자라서 누군가에게 뚜렷한 이유 없이 불만을 가지거나 미워지려고 할 때 그 마음을 이성적으로 조절하고 균형있게 판단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공부를 잘하고 명문대를 가는 것 보다 이런 능력이 살아가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먼저 40년 이상 살아본 짬밥이 그렇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보다 내 아이에 대해 선생님이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사실은 훨씬 마음 편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