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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호 Mar 31. 2024

고백

단편소설

새해가 밝아온다.


여보 오늘 퇴근 늦어요?

아니 왜?

아침에 이야기하기가 그러니 

저녁에 이야기할게요.

나는 아내가 대화를 

하자고 하면 

왠지 불안하다.

예감은 적중했다.


올 6월 말에 내가 정년퇴직이잖아.

그러면 돈을 아껴야 살지, 그래서 말인데 

마을버스 그만 타고

나한테 버스카드 

반납해 주세요 한다.


우대용 교통카드 하나로만 

출퇴근하려면 전철 노선을 

바꿔 타야 하고

환승도 한번 해야 한다. 

그리고 전철역까지 

18분을 걸어야 한다.

걷기 운동은 되지만 번거롭고 

피곤한 출퇴근이다.


반면에

버스카드 반납은 퇴근할 때 

길자와 두 정거장을 함께 

할 수 있는 행운이다.


이것이 운명일까?

하늘이 만들어 준 기회?

아내가 배려해 준 것?


퇴근시간이 되면

길자와 점순 이를 포함 

십여 명이 

출퇴근 체크기 앞에 모인다.

언제부턴가 길자의 동선을 체크하면서 

주변 사람 눈치를 본다.


두 정거장의 동승은 가슴을 뛰게 한다.


5분 설렘!

5분 데이트!

하루종일 기다리는 5분!


오늘은 반드시 고백해야지 

단단히 마음먹는다.

며칠 전 길자의 절친 

점순과 함께 

저녁약속을 해놓았다.


길자 씨 좋아하는 걸로 시키세요?

점순 씨도 부담 갖지 말고 시켜요?

둘이서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이모 빈대떡 주세요 하고 

점순이 손을 들고 외친다.

점순은 길자와 달리 

명랑한 성격이다.

나도 덩달아 막걸리 세병이요 

하고 소리 지른다.


회사 이야기와 동료들의 

험담 도중

창호 선배님

길자 좋아하세요? 하고 

점순이가 불쑥 묻는다.

아~니 왜?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촉이 이상해서요.


여자들의 촉은 듣던 봐와 같이 

정말 무섭구나~

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취기가 느껴질 때쯤 

우리는 일어선다.

창호 선배님

길자 잘 태워 보내주세요 하고 

우리와 반대편으로 간다.

아 네 걱정 마세요. 점순 씨!


점순이 화장실을 가거나 식탁에서 

잠시 자리를 비울 때

고백을 하려고 했는데 

좋아하냐고 묻는 바람에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두 정거장을 지나 

나는 환승을 위해 내리고

플랫폼에서 전철 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환승 승강장으로 갔다.

전철 안은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빈 좌석이 많았다.


취기가 있어서 인지

더욱더 머릿속엔

온통 그녀 생각뿐이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지질하게 문자로 고백을 한다.

사랑을 위한 용기는 대단하다.


핸드폰을 감싸고 있는 

두 손에 진동이 느껴진다.


창호 선배님 고마워요

우리 동료로 지내요

서로 가정이 있잖아요

선배님은 좋은 분이세요

그냥 친하게 지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안해요

어떻게 됐나 봐요

용서해 주세요

정신 차릴게요


고백했던 문자를 

꼭 지워 주세요


알았어요 걱정 말고 내일 봬요


지금 보낸 문자도 함께요


네~


당황한 나머지 진심 어린 

감정은 어필하지 못하고

변명과 용서 그리고 

흔적을 없애려는 

말도 안 되는 문자만 보낸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카카오톡 나가기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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