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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향 Jan 31. 2023

불안의 반대말은 사랑, <색깔 손님>

사랑으로 문을 열면 사랑이 온다

신간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그림책 <색깔 손님>을 소개합니다. <어른의 그림책>에도 넣고 싶었는데 쓰지는 못했다가, 요즘 새로이 사랑하고 있답니다.


엘리제 할머니는 겁이 많아서 온통 무서운 것 천지예요. 늘 어둑한 집안에서 종일 쓸고 닦고 정리하며 지내지요. 어느 날 할머니 집에 종이비행기 하나가 날아들어와요. 갑자기 날아든 종이비행기가 무서워 할머니는 얼른 태워버리지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태워버린 비행기가 밤새 방 안을 날아다니는 거예요.


뜬눈으로 밤을 지샌 할머니에게 종이 비행기 주인이 찾아와요. 빨간 모자를 뒤로 눌러쓴 남자아이였지요. 아이는 쉬가 마렵다며 집으로 성큼 들어서요. 할머니의 사진을 보고 궁금해하고, 책을 읽어달라 하고, 같이 놀자고 하고, 간식을 달라 합니다. 굳어 있던 할머니의 표정이 점차 풀어지고 어느새 미소가 번져 있어요. 새까맣던 할머니의 집에도 환한 색깔이 가득 들어찹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불안


최근 본 명상 영상 중 '사랑의 반대말은 불안'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분노나 증오, 불안의 반대말은 평정 혹은 고요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불안과 사랑이 반대말이라고요?


문을 열고 닫는 이미지로 생각해보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더군요. 사랑은 마음을 열고 세상과 에너지를 주고받는 일, 불안은 마음의 문을 걸어 잠궈 에너지를 차단하는 일.


마음을 닫으면, 마음을 아무리 열심히 가꾸고 돌보아도, 밖이 아무리 환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아요. 언제 누가 저 문을 부수고 들어올지 모르니까요. 용기를 내어 빛을, 타자를, 세상을 내 집으로 초대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지평에 섭니다. 찡그린 미간이 풀어지고 잔뜩 솟은 어깨도 스윽 떨어지지요. 설령 상처받더라도, 무수한 것들에 초대장을 보내는 와중 나는 삶의 주인으로 살게 됩니다.


아주 오랫동안 제 삶의 원동력은 불안이었어요.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불안이라고, 불안은 나의 힘이라고도 말하곤 했지요. 불안은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이였고 나를 성장시키는 원천이었어요.


아는 삶의 방식이 이것뿐이라 그렇게 살다가, 서른의 끝자락에서 무너지고 말았지요. 제겐 다른 삶의 방식이 필요해졌어요. 그게 사랑이라는 걸 사십이 넘고서야 배우다니, 얼마나 어리고 어리석은가요.

 

앞면지
뒷면지

마지막 장에 이른 엘리제 할머니의 표정을 바라보아요. 그리고 집이 무지개색으로 물들어가는 걸 지켜보아요. 그저 문을 열었을 뿐인데, 꼬마 손님에게 화장실을 내어주었을 뿐인데- 많은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알지 못해 두렵다는 이유로 밀어냈던 것들에 얼마나 다양한 색이 숨어 있었을까요.



그저 열려 있고, 닫지 말라.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라.

- 마이클 싱어, <상처받지 않는 영혼>



남자아이가 돌아간 후, 엘리제 할머니는 종이비행기를 접습니다. 편안하게 감은 눈과 발그레한 뺨- 할머니는 한 20년쯤 젊어진 얼굴로 웃고 있습니다. 반대편 의자는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지요. 누가 와서 이 방을 채워줄까요? 사랑으로 문을 열면, 사랑이 올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봄이 다가오듯, 새가 돌아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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