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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별 Oct 04. 2024

하동빈│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기엔


소년

하동빈

────



여전히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할머니 앞의 무력한 내 모습에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조금이라도 빠르게 아버지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오늘도 어디에선가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술을 마시고 있을 그를 말이다. 내가 건 전화는 대략 50통 정도. 수십 번 그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을 테지만 끝끝내 받지 않는다. 증오를 가득 담은 메시지부터 설득과 회유의 메시지까지 다양하게도 보내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에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를 찾아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남루한 술집 어딘가에 있을 그를 찾을 방법은 없었다. 중학생인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술집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하기도 했다. 병원 어딘가에서 실수로 아기가 바뀐 건 아닐까. 할머니가 갓난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다른 아기를 키우게 된 건 아닐까. 할머니는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은 걸까. 나라가 아니라 외계인에게 지구를 팔아먹었던 걸까. 나의 할머니에게서 저런 개차반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한여름에 실수로 버려지지 못해 다 썩어 문드러진 생선 쪼가리도 그 보다는 깨끗할 것이다. 그에게는 '짐승만도 못한' 등의 수식어조차 아까웠다. 짐승에게도 주인이 생기고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지면 그간의 정이 쌓여 어떤 식으로든 감사함을 표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어떤 것으로도 재활용할 수 없는 악취와 세균이 득실득실한 음식쓰레기라고 해두는 게 맞겠다. 힘들게 낳아주고 사랑으로 길러 준 부모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자식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



분주하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외침, 그리고 서너 사람이 동시에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 커튼 밖에서 다급하게 전개되는 사건들은 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무슨 일일까, 사람이 쓰러지기 라도 한 걸까?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걸까?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는 커튼을 살짝 걷어보았다. 의료진들과 환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보였다. 바지만 입은 채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남자에게 비릿한 냄새가 느껴졌다. 온몸은 피범벅이었고 복부에서 흐르는 피는 침대 아래까지 철철 흘러내렸다. 냄새의 주인이 그의 피였다는 걸 늦게야 깨달았다. 이건 드라마에서도 보지 못했었던 장면이다. 환자를 다리 사이에 둔 채 침대에 무릎을 박고 환자의 가슴에 무언가를 대었다 떼었다를 반복하며 땀을 닦아내는 의사. 그가 주는 사인을 받는 즉시 꽤 복잡해 보이는 기계를 계속 눌러대는 간호사들이 보였다. 혹시 심장이 멈춘 걸까? 저건 심정지가 왔을 때 사용한다고 배웠는데. 저 남자... 설마 죽는 건가?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 걸까 싶어 두려움이 몰려왔다. 커튼을 다시 닫아버렸다.


'삐───── .'


잠시 후 커튼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경험해 본 바는 없지만 저 기계음이 주는 의미를 난 알 것 같았다. 더는 의료진들의 땀방울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 의사와 간호사들의 노고는 여기까지였다는 것. 그의 영혼은 육신을 빠져나가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자신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겠지. 지난 시간들을 후회로 가득 채워가며 여지없이 슬퍼하고 있겠지. 안타깝게도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기엔 그는 상당히 젊어 보였다. 많이 봐야 이십 대 초반 정도랄까. 뒤늦게서야 소식을 듣고 찾아온 가족들은 그를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까.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 어떤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겠지. 갑자기 왼쪽 가슴이 저릿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비단 남의 이야기만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덜덜 떨려오는 다리 탓에 괜히 심장이 더 빠르게 뛰는 기분이었다.



"김춘애 님 손자분."


커튼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짧은 대답소리와 함께 누렇게 색이 바랜 커튼이 열렸다. 커튼 뒤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주름 없이 팽팽한 얼굴과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 의사가 서 있었다. 외모와는 매우 대조되는 노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할머니 의사라는 걸 모를 정도로 젊어 보였다. 여기저기 늙고 고장이 난 우리 할머니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차트를 들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안경을 이마 정중앙까지 올려가며 차트와 나를 번갈아 유심히 바라보았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가며 할머니와 나의 신원을 확인한 의사는 예상과는 달리 희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보호자만 주구장창 기다릴 수 없어 엑스레이로 김춘애 환자를 살펴봤어요. 손자분은 할머니가 머리나 등을 맞았을 거라고 했는데, 아니었어요. 그 부위의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고, 김춘애 님 오른쪽 팔에 있는 멍이 점차 진해지더라고요. 엑스레이 결과를 보니 손목 부근 골절이 심했습니다. 전완근 파열도 보이고요. 나이가 많으셔서 뼈가 잘 붙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커튼 사이를 비집고 나가려던 의사는 다시 뒤를 돌며, 잊어버렸다는 듯 한 마디를 더 건넸다.


"아! 그리고 너무 상심 말아요. 지금 놀라서 그런 거니까. 곧 깨어날 거예요."


할머니가 눈을 뜰 거라는 저 말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거짓말이어도 좋으니 할머니가 일어날 거라고 누군가 한 마디만 해주길 얼마나 바라고 바랐는지 모른다. '동빈아~'하며 따스함 가득 담아 내 이름을 불러줄 유일한 존재인 할머니를 말이다. 할머니가 머리를 다친 게 아닐 거라는 말에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지진 않겠구나. 같은 하늘 아래 할머니와 계속 살아갈 수 있겠구나. 혹시 모를 그녀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기엔 아직 난 너무 어렸고, 나에겐 할머니가 필요했다. 의자로 털썩 주저앉아 할머니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되네었다.


"할머니...... 살아줘서 고마워." 




*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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