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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Dec 17. 2023

당신의 세상에서 본 나의 세상 (11)

서울 (4)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눈의 이야기입니다.




박은경. 누리






++당신의 눈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박은경입니다. 누리라는 이름을 예명으로 쓰고 있어요.



당신의 이름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은경은 은혜롭고 공경하다. 의 의미를 가졌고요. 기독교 믿음을 가지셨던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어요.

누리는 한글로는 '세상' 아랍어로는 '빛'을 의미해요.



당신에게 기쁨은 무엇인가요?

내면과 연결될 때요. 춤을 출 때, 공부를 할 때가 그런 순간이에요.



당신에게 기쁨은 어떤 색인가요?

밝은 핑크색이요. 따뜻한 빛인데 핑크 빛깔에 가깝네요.



세상이 당신을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나요? 한 마디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기억되고 싶지는 않고 자연스럽게 사라지길 원하는데요.

따뜻한 공기 같은 느낌이면 좋겠어요.






내 눈이 본 ++++ 그녀의 눈 속 이야기



불이 없는 여자는

결국 찾았다.


내 안에 가장 따뜻한 빛



소리마저 삼킨 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가장 잘 보이는

나만이 볼 수 있는

이 자그마한 불빛은

나를 감싸고

타인을 비춘다.



가장 추운 날

온몸으로 스미는

따뜻한 빛을 느꼈다.










죽음의 관이 내게로 오거든 내 이 세상을 그리워하리라 생각 마오



이날 박은경(누리) 님의 눈 인터뷰는 '죽음'에서 시작되었어요.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가 세상을 떠난 날 특별한 모임을 기획한 그녀는 직접 번역한 루미의 <태양시집>의 31번째 시 '죽음의 날 관이 내게로 오거든'을 들려주는 것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실제 루미의 기일은 샤베 아루스, '혼인식의 밤'이라고 불리며 흰옷을 입고 회전춤을 추며 잔치를 하듯 축하하는 날로 기념한다고 해요. 지난해 같은 시기에 터키 코냐에 있었는데 우연인지 그때의 이미지들이 출렁거리는 퍼즐처럼 그녀의 이야기와 같이 흐르는 기분이었어요. 함께 계신 다른 분들과도요.


코냐에서 검은 옷을 입고 등장한 사람들이 육신의 껍질을 벗듯 검은 옷을 내려놓고 빙글빙글 돌며 저마다 하얀 꽃을 피워내는 그 이미지, 제게는 너무도 인상적이었어요.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순간에 다 존재하는 느낌이 강렬했거든요. 당시 왜 세마 춤을 추는 여자는 없을까? 궁금했고요.





원래 여자도 함께 춤을 추었다고 해요



하얀 옷을 입고 회전하는 여성, 여기서 볼 줄이야. 이날 하얀 옷을 입고 자신의 중심축으로 뱅글뱅글 도는 여성들을 한 분도 아니고 여러 분을 보다니 뭔가 모르게 감격적이었습니다. 남자들의 수피 댄스도 멋졌지만 여자들의 에너지는 물의 속성이 더 강렬하게 살아나는 느낌이었어요. 이날의 테마가 물의 호흡을 기반으로 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으니 바다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물결의 에너지가 저를 이리저리 만지고 지나가는 것 같았어요.



  


씨를 땅에 묻으면 싹이 트고 자라나는데 사람의 씨앗도 땅에 묻으면 그러하지 않겠는가




이날 루미의 시에서 이 문구가 좋다고 하셨어요. 겉으로 보기에 씨앗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겨울의 상태인 거예요. 지금의 계절처럼요. 하지만 생명을 품고 있는 거잖아요. 물이 나무를 키워내는 것처럼 추운 겨울의 시기도 그래서 필요해요. 라면서요.

차이와 함께 대추야자를 내어 주셨는데 그걸 오물조물 음미하며 이 말을 들었어요. 대추야자는 이슬람에서 라마단이 끝날 때 시작의 의미로 먹었다고 해요. 제 접시에 올려진 걸 다 먹고 나니 씨앗이 네 개가 생겼어요.





저는 불이 하나도 없어요.



그녀는 웃으며 이 말을 했어요. 저는 숨겨진 불 같아요.

인터뷰할 때는 이런 말도 들려주셨어요.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자들이 시집갈 때 자기 집에 있는 화로를 들고 갔대요. 어쩌면 자기 정체성을 들고 간 것이 아닐까 해요. 그리스 신화에 헤스티아, 로마 시기에는 베스타도 떠오르네요. 불이 꺼지지 않게 보호하는 임무를 가졌던 여신이요.





제 기쁨은 내면과 연결되는 것이에요. 춤을 출 때도 공부를 할 때도 그래요. 나를 가장 위하는 것인데 이것이 자연스럽게 남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불이 아니고 따뜻한 빛 같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처럼. 이 말을 할 때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따뜻했거든요. 겨울의 씨앗마저 따뜻하게 보호받는 느낌.





아이를 키우니 요즘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요.



오른쪽 왼쪽 눈 사진을 비교해 보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보통 제가 경험한 왼쪽은 무의식의 감정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녀의 경우 순간이지만 오른쪽 눈에 더 강렬한 빛이 보였어요. 의지로 가득 찬 눈은 엄마라는 정체성을 가지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엄마의 역할을 경험해보지 않은 저는 알 수 없는 것이겠으나 찰나의 그 빛에 뭉클했습니다. 그걸 마주하는 그녀의 아이라도 된 듯 바라봤어요.


여리고 아름다운 빛이 힘을 내어 반짝인다. 든든하다. 언제고 불이 꺼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여사제 같다.

이 눈은 자신의 기쁨을 안다. 그걸 보는 아이는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기쁨도 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자신의 눈을 보며 해주고 싶은 말을 요청하는 제게 그녀는 말했어요.



잘하고 있어




 





+ 박은경. 누리 님은 현재 <라스요가&인도무용>의 대표로 인도 전통 춤을 지도하고 있으며 에스닉 무용단 <샥티댄스무브먼트>에서 수피 댄스 안무를 창작하고 공연합니다. 인도 무용과 수피 명상에서 착안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사람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페르시아어 번역가로 루미의 <태양시집> 원본을 국내 초역 발간했습니다. 인스타 @noori.bak




++ 누리 님을 인터뷰했지만 글을 쓰다 보니 뭔가 그 장소에 계셨던 모든 분들을 인터뷰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각자의 중심축으로 아름다운 원을 그리는 한 분 한 분의 모습이 깜깜한 밤에 달빛이 내는 길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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