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숙아,
힘든 일 있거나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싶을 때 편지 써.”
부모님이 퇴원하시고 나에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피아노가 하고 싶다고 했고 그리하여 시작하게 된 피아노였다.
그렇게 한 번도 끊김이 없이 중학생이 되어서도 다니고 있던 와중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회비가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고 원장 선생님의 재촉을 나도 느끼게 될 즈음에 자연스럽게 나도 그만두겠다고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어린 마음에도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작은 선생님과의 작별이었다.
초등학교에서 반주를 맡게 되어 초견을 읽어야 했을 때도 기특하다며 제일 기뻐해 주시고,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학원으로 돌아갔을 때도 긴 말 없이 어깨를 안아주시고 중학교 음악 선생님의 부탁으로 성악하는 친구의 반주 초견을 봐야 했을 때도 눈치 주시는 원장 선생님을 뒤로하고 기꺼이 악보를 같이 봐주시던 어리고 착하셨던 작은 선생님.
피아노실에서 몰래 눈물 흘리며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을 때 들어오셔서 해 주신 말씀 덕분에 피아노학원을 그만두고도 선생님이 결혼하시고 본가를 떠나실 때까지 편지를 주고받으며 위로를 받았다.
그러다 선생님께서 결혼하시기 전 짐을 싸신다고 하셨을 때 왜인지 마지막일 것 같아 1시간 정도의 거리를, 버스를 타고 인사드리러 갔다. 선생님과 선생님의 어머니께 밥도 얻어먹고 선물도 받고 그리고는 연락이 끊겼다.
나는 현재 음악학원 3년 차 원장이다.
어렸을 적 나의 장래 소망은 나처럼 꿈은 있지만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사정이 여의찮을 때, 내가 도움을 받았던 선생님들처럼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당연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꿈은 퇴색되고 상황에 부딪히며 나와의 싸움에서 굴복되기도 하지만 마음만 있다면 결국은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가고 싶어 했던 곳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것을 살아가며 배우고 있다.
아직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시선과 행동을 틀 준비를 한다.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 불리는 불혹의 나이에 말이다.
다만 더 나은 시기가 있다는 것만은 확신한다.
굳이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우리는 마음과 준비만 필요할 뿐이다. 해와 달이 차례로 여러 번 바뀌고 시간이 적당하고 합당하게 흘러 시간이 나의 시간을 가르쳐 줄 때, 그 시기 말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받은 만큼의 감사함을 알고 그 뜻을 깊이 느끼기 때문에 그 도둑질을 이제 내가 하고 싶다.
진정으로 나와 같은 제자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