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공모전 작업일지 7
원화를 그리기 시작할 때 수작업으로 그릴지 디지털로 그릴지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물감을 척척 섞으면서 색을 만들고 붓을 물에 담가 씻고 종이에 직접 칠 할 때의 즐겁고 조마조마한 느낌이 좋았다. 과정에서의 그 설렘이 좋았다. 특히 크로키 같은 경우 잘못 그은 선까지도 작품이 되기 때문에 한마디로 수작업은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본 작업에 들어가니 많은 순간 나도 모르게 디지털로 작업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했다.
디지털로 그렸다면 여기서 색을 바꾸는 건 금방인데... 여기서 형태를 조금 변형하는 건 금방인데...
이 캐릭터를 조금 더 위로 올리는 건 정말 순식간인데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게다가 지인과의 대화에서 이제 디지털로 작업하지 않으면 수정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속도 면에서는 정말 뒤처질 수밖에 없고, 심지어 디지털 그림의 색감이 더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참 혼란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인 김동성 작가님까지도 디지털로 그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는 화들짝 놀랐다. <엄마 마중>이라는 작품부터 디지털로 작업했다는 덧붙인 소식까지 듣고는 책장에서 엄마 마중을 꺼내어 한참을 보았다.
'이게 디지털로 그린 그림이었다니... 속았다!'
손으로 잘 그리는 사람은 보통 디지털로도 잘 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업이 되면 효율을 무시할 수 없다. 단지 바람이 있다면 수작업으로 천천히 그리는 그림들로도 생계가 되고 대우받는 그림책 시장이 되면 좋겠다. 효율만을 따지는 건 왠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