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공모전 작업일지 6
오늘 그린 그림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수채화 + 자유로운 드로잉 느낌이 아니다. 그리고 수채화 수정이 너무 어려워서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데, 다 마른 다음에 색칠을 해야 할지 마르기 전에 이어서 색칠을 해야 할지 그것을 정하는 것조차 너무 어렵다. 그 차이 때문에도 그림이 달라진다. 특히 인물 얼굴은 동일하게 그려져야 하는데, 잠깐 정신줄을 놓으면 다른 사람 얼굴이 되어있다. 인물카드를 따로 만들어서 채색까지 해놓았는데도 그렇다.
나의 결정 장애 성격이 여기서도 한몫을 한다. 작업을 하다 보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러면 더 나은 결과대로 그리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하지만 그전까지 그려놓았던 그림들(예를 들면 인물 얼굴)을 전부 다시 그려야 한다. 계속되는 갈등과 결정 사이에서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그래서 오늘 작업은 여기서 그만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많이 들었다.
그럴 때면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한번 보았다. 그냥 흘러가는 구름과 이따금씩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나에게 말했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자고... 지금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이라도 계속 그려서 일정에 일단 맞추자고 나를 다독였다. 일정을 일단 맞추고 그중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이 있다면 다시 그리자고 나를 어르고 달랬다. 아니면 원화를 포기하고 컴퓨터로 나중에 수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수채화가 한 가지 그림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에게 계속 사탕발림을 했다.
나에게는 마감이라는 작업의 신이 있었다. 그 신의 힘을 빌려 나를 계속 달래고 얼렀다. 공모전 작업 내내 아주 많은 순간 그 신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