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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음 뒤에 감춰진 절규

by 소망안고 단심

“영미야! 숙제했냐?”

다연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밝았다.


마치 어제의 새벽이 없었던 것처럼,

아니, 일부러 잊으려는 듯 더 크게 웃어 보였다.


한숨조차 자지 못한 얼굴.

눈만 간신히 씻고,

몸에 남은 두려움을 억지로 밀어 넣은 채

다연은 집을 나섰다.


버스에 올라 영미 옆에 털썩 앉으며

일부러 과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진짜 숙제 귀찮지 않아? 하하하!”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속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남동생은 괜찮을까.

엄마의 팔에 난 상처는 덧나지 않았을까.

걱정과 두려움이 머릿속을 떠다니며

심장을 죄어왔다.


다연은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꾹 눌렀다.

“울고 싶다…”

“그냥 사라지고 싶다…”

말할 수는 없었다.


말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연은 늘 그랬듯,

아무 일 없는 척 웃음을 택했다.



학교에서 다연은

활발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


누구도 그녀의 집 안 사정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다연은, 알려주고 싶지도 않았다.

힘들수록 더 밝게 웃었고,

고통스러울수록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 인간처럼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저 인간처럼 살지 않을 거야. 내 인생은 내가 지켜야 해.’

그럼에도 가끔은 흔들렸다.


‘왜 나야? 왜 이런 부모를 만나야 했을까?’


수업이 끝나도

집에 곧장 가고 싶지 않았다.


작은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면 고요한 장의자와,

앞쪽의 십자가가 다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연은 속삭였다.

“하나님… 제발 아빠를 데려가 주세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 절규를

누군가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주길 바랐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신기’라는 말을 핑계 삼아 그 유일한 통로마저 막아섰다.

‘신기? 웃기지 마. 술만 먹으면 눈 뒤집히는 주정을 무슨 신기의 탓으로 돌려?’




그리고 지금,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장례식장엔 불경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 하나하나가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을 떠올리게 했다.


‘죽었는데도, 왜 아직도 이 소리를 들어야 하지?’

다연은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하지만 울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 깊숙이 더 크게 메아리쳤다.


그때,

문득 떠오른 장면 하나.

추운 겨울밤, 맨발로 온 동네를 헤매던 그날.




다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기억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았던 날들이, 사실은 지옥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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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