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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죽음과 삶의 공존

by 박세환

어렸을 때 이집트 하면 떠오르는 것. 바로 피라미드다. 온갖 이야기 책과 교과서, 영화에 나오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쓰인 만화와 소설은 차고 넘칠 정도였다. 그래서 궁금했다. 실제로 보면 어떨까.


역시 직접 보아야 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모래 벌판에 놓인 피라미드는 웅장했다. 육면체의 거대한 돌들이 규칙적으로 겹겹이 쌓여있는 피라미드. 그런데 그것뿐이었다. 생각보다 감흥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까이서 계속 보니 그냥 커다란 돌산 같았다. 같이 간 친구와 가위 바위 보를 하며 한 칸씩 올라가 봤다. 그것도 올라가기 힘들어 몇 번 하고 말았다. 만화와 소설의 스토리가 피라미드를 더 신비롭게 만들었나 보다. 누군가 그랬다. 멀리서 보면 영화지만, 가까이서 보면 다큐라고. 멀리서 봤을 때 웅장했던 피라미드는 더 이상 내게 흥미롭지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던 스핑크스는 어떤가. 책에서 멋진 앞모습만 보다 뒷모습을 보니 생각했던 느낌과는 달랐다. 고대 왕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하는데 축 쳐져있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그리고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따로 봐서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보니 뭔가 어색한 느낌. 역시 직접 보아야 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카이로에서는 이집트 박물관이 생각난다. 영화 미이라에서 봤던 관뚜껑부터 돌로 만든 별여별 신기한 유물들이 많았다. 괜히 세계 최대 규모의 고고학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전시는 다른 유명 박물관에 비해 폼이 안 났다. 전시라기보다는 그냥 곳곳에 놓아둔 느낌. 그리고 양으로 승부하는 듯한 기분. 조금만 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짜임새 있게 유물을 배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유물이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투탕카멘의 황금가면을 비롯해서 무덤에서 나온 것들을 많이 전시해서 그런지 어두운 느낌이었다. 죽음 이후인 사후세계를 믿어서 만든 것이 파라오의 커다란 무덤인 피라미드이다. 그들 역시 영생을 믿었다. 다만 다른 점은 천국이 아닌 피라미드 안에서의 삶이었다는 것.


이집트에서는 우연스럽게도 결혼식을 구경했다. 숙소 밖이 시끄러워 나와보니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많은 하객들 가운데 전통 의상을 입은 신랑과 신부가 춤을 추고 있었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죽음에 대한 어두운 것을 잔뜩 보고 온 상태에서 활기차고 생명력 넘치는 결혼식을 보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역시 사람은 밝은 것을 보고 다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주변을 둘러본다. 무엇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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