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읽는 리나 Oct 15. 2020

아이들과 주택에서 살아보니

집 짓기와 주택 생활 후기

 집을 지어 주택에서 살게 되리라고는 결혼 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아들 쌍둥이들을 낳지 않았다면, 그럴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에너지 넘치는 아들 쌍둥이들을 집에서 데리고 있기 힘들어 바깥으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지칠무렵, 교외에 주택을 지어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살고 있던 곳은 주상복합 아파트였는데 건물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도 외식과 쇼핑, 여가생활을 할 수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과 씨름했었는데 얼마후 주택에서 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땅을 사서 집을 지어 보자는 이야기를 듣고도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이유는 도시 생활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런 제가 주택에서 사는 게 가능할까 싶었습니다. 집짓기에 대해서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어쩌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땅을 보러 갔을 때, 논밭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보고는 도저히 사람이 살 곳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걱정과 우려를 안은 채, 집짓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설계를 해주실 건축사님을 찾아간 첫날, “집이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다음 번에 올 때까지 집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그날 밤, 어릴 적 주택에서 살았을 때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공간은 마당과 옥상, 긴 골목길이었습니다. 다음 번에 찾아가서 집이란 '추억과 휴식의 공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집의 어떤 공간을 아이들과의 아지트로 꾸밀지 다시 고민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교외로 이사를 하려고 하자 당시에 중학교 1학년이던 큰 아이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참 예민한 시기였던지라, 혹시 이사를 안가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집을 지어 이사를 가려고 하는데 괜찮은지 물었더니 큰 아이는 “그럼 마당에 오렌지 나무를 심으면 되겠네요.” 라고 흔쾌히 말해주었지요. 아마 그때까지만 해도 주택생활이 어떤 것인지, 단 한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아이인지라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아서이겠죠.  


 집을 짓는 과정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설계했던 것이 시공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도 연이어 이어졌습니다. 현장에서 상황에 맞추어 해결을 해야하는 일도 생겨났지요.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집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목조주택이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처음 예상해 놓은 일정보다는 여러 달이 늦어지게 되었지요.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에 맞추어 이사를 하려고 했는데 이사날짜와 맞지 않아 주택 안에 짐만 먼저 옮겨놓고 게스트하우스 생활을 보름 정도 하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이 참 많았네요. 덕분에 사춘기 큰 아이와 더 가까워지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주택으로 이사를 간 건 쌍둥이들이 다섯 살 때였습니다. 그 때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 만 5년을 주택에서 생활했습니다. 주택에서 살면서 좋았던 점도 많았지만 불편한 점도 만만치 않았지요. 제일 좋았던 점은, 예상하셨겠지만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파트에서 살았을 때는 아랫집, 옆집을 신경쓰다보니 해만 지면 '뛰지 마라', '조용히 해라' 또는 '안 돼' 소리를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주택에서 살면서 제일 좋았던 점은 아이들이 집 안팎에서 신나게 뛰어놀아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는 것입니다.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놀았던 경험은 아이들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장난감이 따로 있지 않아도 해가 질 때까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놀곤 했었죠. 엄마들의 밥 먹으라는 소리를 들으며 내일 만나서 놀자고 약속하곤 집에 들어와 저녁밥을 먹곤 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주택에서 살면서 바깥놀이를 자연스럽게 많이 하게 되고, 노는 방법을 스스로 익히게 되었습니다.


또 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 맡을 수 있고,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계절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접하게 됩니다. 각 계절에 피는 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여름의 나뭇잎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가을이 되면 잔디 위에 방울져 있는 이슬을 보게 됩니다. 겨울 초입에는 나뭇가지 위로 하얗게 내리는 서리를 보게 되지요.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 여름 내내 우는 개구리 울음소리 등 아직도 그리운 정경들이 눈을 감으면 떠오릅니다. 가장 좋았던 소리는 비가 오는 날에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였지요. 비에 젖어 피어오르는 흙냄새도 그리워집니다. 주택에 살면서 아이들은 꽃의 이름도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봄이 되서 아이들과 함께 심었던 찔레꽃, 달맞이꽃, 장미꽃, 맨드라미, 수국 등 계절마다 다른 꽃들을 마당에 심었습니다.



비가오면 자연의 색들이 진해져서 더 선명한 느낌입니다.


 아이들이 초등 3학년이 되면서 다시 도심 아파트로 나왔습니다. 살던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한 학급밖에 없어 아이들이 계속 한 반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사를 와서도 주택에서 살던 시절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1년에 한두 번씩은 예전에 살던 마을에 놀러갑니다. 아직도 친구들을 만나면 반갑게 어울리곤 합니다. 아이들이  주택에서 살았던 추억을 잊지않고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그러하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은 왜 질문이 많을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