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이 떡집이라, 시댁에 갈래요.
#2
명절 전날은 떡집 ‘대목*’ 날이다.
*대목 : 설이나 추석 따위의 명절을 앞두고 경기(景氣)가 가장 활발한 시기. (네이버 국어사전)
대목이니 큰돈을 벌 수 있는 날인건 당연하지만, 그만큼 중노동이 필요하다.
우리 집도 나름 인기 있는 떡집이라 이사를 간 이후에도 일부러 찾아오시는 손님들도 있었고, 동네에 단골손님도 많았고, 버스정규장 앞이다 보니 뜨내기손님도 많았다.
그렇다 보니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 위해서 부모님은 일주일 전부터 송편을 만들었고, 나는 전 날 하루(주말이 끼면 이틀)의 노동뿐이었지만 노동 강도가 꽤 셌다.
특히, 학원강사를 한 이후에 명절 전날의 노동은 잠도 거의 못 잔 상태에서 육체와 정신의 1+1 고통으로 더더욱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명절 전날의 떡집의 일과는 이렇다.
새벽 4-5시에 부모님, 나, 아빠 지인 2-3분이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한다.
그럼 손이 빠르고 불같은 성격의 우리 아빠의 진두지휘에 따라 일이 시작된다.
가루를 빻고, 시루에 떡을 안치고, 떡을 찌고, 반죽한 떡을 여러 종류의 떡으로 만들고, 포장하고 등등등.
떡 종류만 해도 송편, 제사편, 시루떡, 찰모둠떡, 약식, 인절미, 개피떡, 꿀떡, 증편, 절편... (아이고, 숨차.)
이 많은 걸 우리 아빠는 단 3시간 만에 끝낸다.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포장까지 다 완료한 시간이 단 3시간.
엄마는 ‘아빠 아니면 이렇게 빨리 하지 못한다’며 힘들어하면서도 항상 대단해하셨다.
그런데 나는 아빠 밖에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진짜 빠른 건지 더 빠른 분이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진짜 성격이 매우 급하고, 아빠가 생각한 대로 일손들이 움직여주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지기에 그 속도대로 움직이면, 성격 급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엄마와 나도 버겁긴 했으니 빠르긴 한 것 같았다.
내 담당은 여러 가지였다.
떡을 찌기 전 빻아놓은 가루를 시루에 안치기 위해 타이밍 맞게 시루를 깔아주고, 부모님이 일하는데 불편하지 않게 재료들을 알맞게 촥촥 준비해 주는 보조역할.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떨어지는 불호령에 눈치 백 단이 되어야 한다.)
아빠가 개피떡을 뜨면, 옆에서 나오는 대로 바로 기름칠을 촥촥 한 다음 바로 도시락에 실시간으로 예쁘게 담는 일.
(아빠가 개피떡을 뜨는 속도가 정말 빠르기에 한순간 삐끗하면 기름 바를 새도 없이 떡끼리 달라붙어 눈치를 봐야 하기에 초고속 로봇모드가 되어야 한다.)
꿀떡이 기계에서 만들어져 나오면, 나오는 꿀떡을 판에 옮겨 기름칠을 해서 떡이 달라붙지 않도록 하는 일.
(허리를 숙여서 해야 하는데 명절에는 꽤 많은 양을 만들다 보니 이때부터 허리에 통증이 시작된다.)
절편이 나오면 제사용 길이로 잘라, 기름칠을 하고 도시락 포장을 하는 일.
(길이를 제대로 자르지 않으면 들쑥날쑥해서 판매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로 잰 듯 정확한 눈대중이 필요하다.)
아빠가 인절미를 썰 때, 도시락에 바로 담을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도시락을 깔아주고, 떡이 담기면 빼내서 바로 랩으로 싸는 일.
(아빠의 보조를 한다는 건, 무엇을 하든 로봇모드가 되어야 한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판매용 떡이 얼추 나오면 1층 진열대에 판매할 떡을 동선에 맞게 진열하는 일.
(하루 종일 밤 10시까지 판매를 해야 하기에 판매자도, 손님도 불편함이 없도록 매대를 세팅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메인 업무는 바로..
‘장사’.
앞에서 내가 하는 일들은 그냥 내가 맡은 일을 ‘알잘딱깔센*’ 하면 됐다.
*알잘딱깔센 :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그리고, 전 남자 친구이자 현남편인 그가 사위가 된 이후부터는 내 일이 줄어든 건 없지만, 든든한 지원자가 생겨 덜 힘들었다.
그런데, ‘장사’. 그 ‘장사’가 참 힘들고 어려웠다.
왜 명절만 되면 친근했던 단골손님들도 돌변하는 건지 참 묘했다.
물가가 올라도 우리 부모님은 10년 동안 떡 가격을 올리지 않으셨었다.
(최근 2년은 도저히 안돼서 올리긴 했지만, 주변 떡집들의 항의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가격을 올리지 않던 때, 단골손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씀은 “명절이라고 비싸게 받네~~”였다.
우리가 하루 반짝 떴다방 장사도 아니고, 3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하는데 명절 때 눈속임으로 가격을 뭣하러 올리겠는가.
그리고 최근 2년 동안 떡 가격을 올렸을 때는 당연히 재료값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올랐다고 말씀드렸었다.
우리 아빠의 장사 신념(?)은 “‘손님들 눈속임은 절대 하지 말아라.’ 였기에 엄마가 비싼 재료값에 조금이라도 재료를 아끼는 모습을 보면 바로 불호령이 떨어지며 ”아끼지 말고, 팍팍 넣어!! “라고 하셨다.
그런 걸 알기에, 단순히 명절이라고 비싸게 받는다며 본인의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내가 아무리 안 올렸다고 해도 믿지 않는 그 눈빛과 말투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우리 가게에 단골이기에 더 야속했던 것 같다.
모든 단골손님들이 그런 건 아니었다.
항상 맛있게 먹는다며 격려해 주시고, 뜨내기손님이 오셔서 “여기 떡이 왜 이렇게 싸요~?” 하면서 놀라워하면, “여기 재료도 좋은 거 쓰는데 정말 맛있어요~”하며 영업도 해주신다.
그럼 나도 감사한 마음에 몇 개라도 송편을 더 담아드리기도 한다.
“많이 드렸어요~“ 하는 생색은 덤.
그리고, 내가 지금도 정말 ”이게 맞아? “라는 의문이 드는 행동들이 있다.
명절에는 가게 앞에 큰 진열대에 송편을 종류별로, 색깔별로 펼쳐놓고 덮개를 덮어 진열하고, 저울에 달아서 판매를 한다.
그러면 떡이 새로 나올 때마다, 판매를 할 때마다 덮개를 열게 되는데, 그때!!
바로 그때!!
지나가는 행인의 불쑥 들어온 손.
진열되어 있는 송편 들고 가기.
나의 명절 장사 스트레스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