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순간

자기 것을 만드는 시간

by 방수진

아침 햇살이 길을 따라 미끄러지듯 번져 간다. 바람에 밀려온 푸른 잎이 발끝을 스치고, 골목 모퉁이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앉아 있다.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산책길은 고요를 품고, 그 속에서 이어지는 호흡만이 또렷하게 감지된다. 그 순간, 사람들의 목소리도, 오늘의 할 일도, 마음을 짓누르던 걱정도 희미하게 멀어진다.


고요가 건네는 속삭임은 의외로 분명하다. 배움은 단순히 지식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 흔히 교육을 배움으로만 이해하지만, 무언가를 새로 알았다고 해서 곧장 삶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지식을 붙들 수 있는 바탕이 단단히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겉으로 아무리 견고해 보여도 파도 한 번에 사라진다. 진짜 배움은 더 많은 정보를 쌓아 올리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내면의 토대를 세우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바탕을 단단히 다지는 과정은, 종종 이런 산책길의 정적 속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루 중 잠시라도 고독 속에 머물며 스스로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고요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 시간을 얻으면 자연스레 휴대폰을 켜거나, SNS를 통해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들으며 시간을 채운다. 책을 펼쳐도 곱씹기보다는 읽는 데 그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정보는 많아지지만, 정작 내 안의 중심을 세우는 일은 뒤로 미뤄지곤 한다.



방수진 <고요의 순간>, Mixed media on canvas 15.5x15.5cm, 2025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물음이 있다. “오늘, 고요 속에 머문 시간은 있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를 끝까지 따라가 보는 시간이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 대신 자기 문장을 써 내려가고, 누군가의 그림을 바라보는 대신 손끝에서 색을 펼쳐내는 시간이다. 그때야 비로소 배움은 자기 것이 된다.

배움은 경험과 감각을 자신의 몸과 손으로 옮길 때 비로소 완결된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읽은 것을 자신의 문장으로 써 보고, 들은 것을 자신의 말로 풀어내고, 본 것을 손끝에서 다시 만들어낼 때, 지식은 살아 움직이는 힘이 된다. 타인의 언어와 감각을 통해 들어온 것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손님일 뿐이다. 그것을 붙잡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때, 그 손님은 삶의 일부가 된다.


예술은 바로 이 과정과 닮았다. 예술을 알수록 알지 못하는 세계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된다. 반대로 예술을 모를수록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 착각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자유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단순히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타인의 취향이나 세상의 기준에 끌려다니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할 힘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책을 읽는 대신, 조금 낯설더라도 마음이 끌리는 책을 펼쳐 보는 것. 남들이 선호하는 그림을 따라 그리는 대신, 손끝이 원하는 색과 형태로 그려 보는 것. 자유는 이렇게 작은 선택과 경험 속에서 길러진다.


자유 속에서 타인의 기준을 비판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으며, 내 감각과 생각을 따라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결국 자유는 스스로 중심을 세우고,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지킬 수 있게 해 주는 힘이다. 그 자유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욕망이다.

살아 있는 존재이기에 사람은 욕망을 따라 움직인다. 욕망이 없다면 자유도, 변화도 없다. 그렇다고 욕망을 좇는 삶이 방탕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욕망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를 드러내 준다. 욕망이 파도처럼 일어나 마음을 흔들 때, 잠시 고요에 머물며 그 물결을 바라본다. 잔잔해진 뒤에도 남아 있는 욕망이야말로 삶을 앞으로 밀어주는 진짜 힘이 된다.


그래서 교육은 단순히 계속해서 받는 행위가 될 수 없다. 배운 것을 자기 언어로, 자기 그림으로, 자기 삶으로 표현할 때 교육은 완성된다. 출간된 책과 전시회 같은 결과물은 사실 이 과정을 증명하는 흔적들일뿐이다. 본질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 앞에서 쌓아온 무수한 고요의 순간들이다.

결국 지켜야 할 것은 ‘고요의 시간’이다. 고요 속에서 중심이 세워지고, 그 자리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변화가 쌓여 나다운 삶이 된다. 삶의 무게가 자꾸만 바깥으로 끌어내려도, 하루 중 잠시라도 고요에 머문다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


삶은 짧고 유한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남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자기 목소리를 찾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 그 목소리가 삶을 이끌어갈 힘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고요의 순간은 단순한 일시 정지가 아니라 시작이다. 진정으로 자기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턱, 그리고 삶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당신의 하루에 건네는 작은 질문


1. 다른 사람의 기대가 아니라, 진짜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본 적이 있나요?


지금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상상해 본 장면:


2. 최근 배운 것 중, 그냥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내 방식으로 표현해 본 적이 있나요?


배운 것을 행동이나 그림, 글 등으로 시도해 본 경험:

배움 속에서 새롭게 발견한 나만의 시각:


3. 바쁜 하루 속에서도, 잠깐이라도 마음을 정리하고 중심을 세우는 고요한 시간을 만들고 있나요?


짧게라도 나를 돌아보며 느낀 감정:

오늘 나를 지탱하게 만든 작은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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