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질투심이 얄미운 순간이 있다. 기껏 나 자신을 고상한 척 포장했더니 지깟게 뭐라고 존재감을 들이밀며 얼룩을 만드는지. 유독 미학을 대할 때 심해진다. 절대적 미학이 있음을 믿게 될 만큼의 아름다움을 마주했을 때, 꼼꼼하게 향유하려 세심하게 관찰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너의 아름다움을 내가 알아줄 수 있다는 건 나의 깊이가 너에게 한 스푼 더 매력을 더해준 게 아닐까. 너의 매력에 나의 공이 있으니 너는 우선 숭배의 대상에서 내려온다. 너에게 끌리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니, 너는 대중성을 지녔을 테다. 대중성, 이 얼마나 천한 가치인가. 희소성을 지니지 못할 바엔 너를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테다. 그렇게 외면하다, 다시 뒤돌아서 너를 봤을 때, 너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었고, 너는 탐이 나는 아이가 되었다. 너를 낮추고, 너를 질투하고, 너를 사랑한다. 이것을 감히 사랑이라고 부르지 말기로 하자. 온전한 객체를 이해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이런 알량한 감정은 이해도 하지 말고 사랑도 하지 말고 사랑이라고 포장해 주지도 말자. 이 감정 또한 하찮아서 매력적이고 갖고 싶어 지니, 차라리 나만 가질 수 있도록 너흰 미워하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