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른봄 섬진강자전거길이야기 넷
해는 졌고 길은 어두웠다.
자전거를 끌고 30분 정도를 걸었다.
강가 외진 터에 사육장이 있는지 개 몇 마리가 어둠 속에서 미친 듯이 짖어댄다. 얼어버린 길 위를 추위도 잊고 달려온 수고 따위 무슨 소용인가. 길은 캄캄하고 날은 차갑고 몸은 초라하고 맘은 서럽다. 나는 왜 이 낯선 어두움 속을 두려워 떨며 걷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나. 밑바닥에서 끌어낸 의문이 머리를 얼리려는
그때 뒤 따라오던 남편이 외친다.
"안 되겠다. 돌아가서 아까 그 자동차 길로 올라가자."
하루 종일 함께 달려오면서 좋기만 했는데 이럴 수가.
"다시 이 길을 돌아가자고? 이제야 개소리가 안 들리는 곳까지 왔는데? 왜 너는 그런 판단을 이제야 하는 거니?"
나를 달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서있으니 뼈 속까지 한기가 스며든다.
나는 자전거를 돌리며 마음을 돌이켰다. 보이지 않는 물소리는 분명 낯에 빛나던 그 강에서 올라오는 것일 텐데 왜 이렇게 쉽게 서러워졌는지. 뒤에서 길을 비추며 따라오던 그가 개소리에 대고 화풀이를 한다. 격렬하게 짖어대는 개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뚫고 섬진강의 밤하늘을 울린다.
검은 길이 빛난다.
아스팔트 위에 얇은 얼음막이 생겼다. 내가 앞장서 길에 빛을 비추고 그는 따라오는 차량에게 우리가 잘 보이도록 뒤에 깜박이는 작은 등을 밝히며 간다. 우리 자전거들은 이미 얼어붙었다. 내 자전거는 기어 조정이 안되고 그의 자전거는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산속의 자동차 길은 가로등도 없고 차도 지나가지 않는다.
우리는 맞는 길로 가고 있는 걸까?
휴대전화가 보여주는 지도는 믿음직스럽지 않다. 자전거 핸들을 잡고 끌며 걷다가 결단을 내렸다. "천천히 타고 가자. 이렇게 가다가는 여관에 가기 전에 쓰러지겠다." 남편은 그 사이 두 번이나 넘어졌다. 1km 정도 타고 가니 미끄러운 길에 익숙해졌다.
살얼음을 깨는 바퀴 소리가 어두운 길 위에서 내 마음을 뚫는다.
여기까지 달려온 뜨거운 마음에 균열을 남긴다. 깨어져야 다시 살아난다는 아픈 진리는 또 한 번 험한 길을 넘게 한다. 멀리 마을의 불빛이 보인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날이 개었나 보다. 얼어붙은 길은 별보다 깊게 반짝거린다. 어둡고 차갑고 아름답다.
어둠 끝에 갈라진 두 길이 놓여있다.
곡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어느 쪽인지를 놓고 뜨거운 노상토론을 벌인다. 열 받은 가슴이 식기 전에 용기 내서 지나가는 차를 세웠다. 차 안의 남자는 자전거를 끌고 서 있는 아줌마의 행색을 아래 위로 훑고서는 설명을 시작하다가 포기하고 선언한다.
"따라와요."
남편이 주장했던 길로 간다.
낯선 이는 커다란 가로수가 길게 뻗은 길을 지나 새로운 갈림길에 차를 세우고 한쪽 길을 향해 손짓을 한다. 곡성군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다. 자기 길로 가는 이의 뒷모습에 대고 외친다.
"감사합니다!"
상점의 불빛이 이렇게 따스한 것이었던가.
허기가 밀려온다.
식당 문을 열고 자전거를 안에 세워도 되냐고 물으니 주인아줌마가 창고 문을 열어준다. 식당 안에 사람이 가득하다. 라이딩을 시작하고 6시간 동안 우리는 초코바 두 개를 먹었고 사람도 두 명 밖에 못 봤다는 것이 새삼 생각난다. 오징어 제육볶음 2인분을 시켰는데 식탁 위에 수저 놓을 곳이 없을 만큼 반찬을 내려놓는다. 전라도에 와서 두 번째 밥상이다. 우리는 배가 고팠던 걸까, 사람이 고팠던 걸까?
#17_어느 이른 봄 섬진강자전거길이야기 넷 끝
다음화 #18_곡성여관의 하룻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