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쓴 같은 제목의 글을 (1탄이라고 명시하진 않았다, 2탄을 쓸 줄 몰랐기 때문에) 보고 오면 이해가 쉽다. 빨간 다리 대학교는 면접 때까지는 모두를 환영해 준다. 문예창작과(이하 줄여서 문창과) 단과대 안에 대기실이 있고, '예비 선배'들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그들이 쥐여주었던 핫팩의 온기가 아직도 손에 남아 있는 듯하다. 열렬한 응원을 받고 면접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교수님들은 지쳐 보였다. 대답 좀 못한다고 해서 누가 잡아먹지는 않았다. '은유'와 '비유'의 차이에 대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 쓰고 싶은 것'에 대한질문이 나왔다.
끝나고 나와보니 쪽빛 어둠이 다동의 회색 계단 위를 약간 적셔놓았다.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올라오는 것보다 힘든 것은 처음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모든 건물이 타원형으로 둥글게 마주 보고 있는 형태인데, 그 중심으로 가야지만 밖으로 향할 수 있는 구조였다. 걷는 동안 점점 어둠 속으로 깊게 빨려 들어갔다. 강의실 창문마다 켜진 형광등빛이 짙어졌다. 정문까지의 거리는 참 멀다고 느껴졌다. 입학하고 나서도 한동안 그랬다. 그렇게, 필자는 일 년 동안 몇백 편의 시를 썼던 해에 합격했다. (안 세어봐서 정확히는 모른다, 백 편은 확실히 넘었던 것 같다)
인형탈을 쓰고 춤을 추는 선배들이 환영해 주는 입학식을 거치고 나면, '예대뽕'에 취하게 된다. 벗어던지는 데에 한 달은 걸렸다. 콧대가 강의실 천장까지 올라가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알게 된다.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글쓰기 '정보 격차'는 태어난 지 일주일 된 강아지와 장성한 사자의 몸집 차이다. 진입하는 데에 필요한 소스를 비전공자가 알 방법이 없다. 하다못해 '진짜' 쓰려면 어문 계열이라도 전공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대학입시처럼 사회적 약자를 위해 따로 나눠놓은 전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설령 초등학생에게 경제와 세금 문제에 대해 설명하듯이 간략하고 쉽게 풀어 설명해 준다고 한들, 세계관 전체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자에게 '유명한 작가' 혹은 '좋아하는 작가'를 질문하라. 전공자는 김멜라, 김금희를, 비전공자는 정유정, 공지영을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 필자도 타과 수업 때 '말만' 했을 뿐인데, "너 문창과지?"라는 질문을 교수님한테 받은 적이 있었다. (교수님도 영문학 전공자였다. 영문학도 '영어' 전공이 아니라 '문학' 전공이다.)
"나 잘났다", "엘리트다" 이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걸 알고 선택을 하라는 뜻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