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온라인 셀러가 되고 보니

방구석 셀러의 하루

by 사공리셋

상가에는 빨래방이 입점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후 바로 임차인이 구해져 일단락되었으나, 무의미해진 빨래방계약서는 살아 있었고 틈만 나면 고개를 내밀었다.

"언제든지 다른 자리 구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통화를 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저 것 하나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적 감정만 쌓일 뿐 법적 대응까지 고려한 적극적 계약파기의 방법을 찾아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으나 승산이 없는 싸움이기에 권하지 않았다. 이미 문서상 나는 계약자일뿐이었다.

다른 상가를 구해서 개업해 볼까 하는 마음과 내 돈 어떻게 돌려받지 하는 마음이 함께이고 보니 '회피'만을 선택할 뿐이었다.

예민이에게 첫 창업의 꿈이 버려진 타격감이 너무 커서 자책모드를 벗어나는 것부터가 과제가 되었다.

해결되지 않은 경제적 책임에 대한 레이더망은 눈에 불을 켜고 있었으며 똑똑한 유**알고리즘은 퇴사 후 방구석에서 돈 버는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들을 가져다주고, 타고 들어가면 비싼 강의료가 기다리고 있고, 퇴사하자마자 노마드비즈니스의 첫 강의료로 이미 비싼 금액을 결제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나를 견제하고 있던 터라, 해결되지 않은 계약서 한 장도 함께있었으니 그냥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물리적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흘렀다.

일하던 엄마가 옆에 없던 시간을 지나, 자꾸 엄마가 옆에서 간섭하는 일과를 맞이한 아이들과 티격태격 하루를 보내며 서로에게 적응해 가는 시간 안에 있었기에, 평온하지만은 않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정감이라고 할까...

남편과 아이들을 바라보면 모든 걸 잊고 현시점에 머무르게 되면서, 지나는 일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인지하면 마음이 편해지고는 했다. 어차피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나도 가벼웠다가도, 거짓말처럼 내가 해결을 해야지!라는 마음이 올라오면 자책모드로 들어가 엉엉 울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끙끙 앓고 있는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어느 한적한 주말오후였다.

가까이 사는 외할머니댁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데리러 친정집에 잠시 들렀다.

아버지께서 불쑥 "이리 들어와봐라" 하셨다.

아버지 방에 있는 pc화면을 보여주시며, 이 사람이 한 달에 꾸준히 몇 백을 번다고 하는데, 니도 한번 해볼래?

아버지는 평소 소금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계셨고, 본래 건강에 관심이 많으셔서 약대신 자연치유법을 믿고 꾸준히 실천해 오시던 분이라 본인이 드시고 계신 소금이 판매 중인 사이트를 보여주셨다.

"이거 올려놓기만 해도 꾸준히 사 먹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 기존에 나를 통해서 먹고 있는 지인들도 편하게 주문받아서 보내 줄 수도 있고, 창업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밑져야 본전 아니겠나? 애들 학교 보내놓고 시간 날 때 한번 해봐"

아무생각 없었다. 그냥 한번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또 시작하면...잘 해야 해서 블로그도 개설하고 글도 쓰고, 사업자로 등록해서 쿠*에 입점하고 네**스토어에도 물건을 등록하며 어느새 방구석 셀러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문받아서 하루에 박스가 30개씩 나가는 날들은 집안일 다 제쳐두고 애들오는 순간까지 박스포장을 하고 있었으니 어느새 제대로된 방구석셀러의 길을 가고 있었다.

이런 시간이 감사해야 하는데, 자꾸 브레이크가 걸렸다.

분명 내가 나에게 시간을 선물 한다고 했는데 지금 돌아가는 모습은 아이들이 학교 가고 나면 판매플랫폼의 광고를 세팅하고, 재고관리하고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고 박스포장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아이들오면 정신없이 간식챙겨주고, 밀린 집안일 쳐다보며....하...


결정적으로!또 적이 있다.

힘들게 올려놓은 판매순위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타업체들의 횡포에 수시로 훼방이 놓이며 판매가 0개가 되기도 하고 판매량은 엎치락 뒤치락...

이 부분은 공급처에서도 골머리를 앓으며 단속을 하는 중이었으나, 뚜렷한 해결책은 못 내어놓고 있는 상황이 이어졌다.


기분 나쁜 감정이 휘몰아치며 화가 올라왔다.

이 상황을 뚫고 나가보자는 마음보다 멈춤 상태였다.

몸과 머리는 이쪽으로 에너지를 쓰고 있지만 몰입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짜증, 화" 이건 뭘까, 감정정리가 필요했다.


처음 퇴사를 할 때 들었던 생각.

외부에 의해 이끌려온 수동적인 삶의 태도에 대한 거부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를 마주했을 때, 회피하려는 그 마음의 시발점은 결국 주어진 현실에만 맞추어 최선의 선택을 해왔던 그 과거의 삶의 태도.

단순한 짜증과 화가 아닌 복잡한 감정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경제적 책임에 대한 어깨의 짐을 지고 타인(아버지)의 말에 이끌시작한 일.

또 외부적 횡포에 의해 내 쌓인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 현타가 온 것 같았다.


퇴사 후 다짐한건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었다.

'너(나)가 원해서 시작한 거 맞아?''그냥 타인(아버지)이 하라고 해서 한 거 아니야?'

둘 다였다.

언제나 그렇듯 책 속에서 답을 찾는다.


“지금 이 순간, 나를 비난하는 대신 사랑을 선택하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순간 치유는 시작된다.”

루이스 L <치유> 책 속 문장을 읽는 순간, 눈물이 났다.

나에게 필요했던 건 경제적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결과가 아니라, ‘나를 이해해 주는 시간’이었다.

퇴사 후 선택한 것들에 대한 잘잘못을 가려 봄이 아니라, 나와 친해져 가는 과정에 단지 필요한 경험들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일 뿐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값비싼 강의료를 지불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무의미해진 빨래방 계약서, 온라인 판매경험 이 모두 회피로 이어지는 순간들 또한 '나의 일부' 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경제적 책임을 지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보려는 의지와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마음 또한 나였고, 그 시간 안에 공존할 뿐이었다.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한,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없다. 자기 사랑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치유의 힘이다.”


내가 좋아하는 유**채널의 러브포레스트님의 '자기 사랑 8가지 습관'으로 소개된 내용이다.

첫째, 삶의 우선순위를 정한다(지금 나라는 존재에게 가장 큰 의미를 가지는 최상위 가치를 선택하기)

- 지금 현재는 아이들의 정서적 보살핌이 최우선적 가치이다. 곧 사춘기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의 불안정한 감정 앞에서 나 자신마저 오르락내리락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나 자신을 아이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대한다(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을 나 자신에게 주는 것)

- 내 몸이 신호를 보내는 날에는 머릿속에 모든 스위치를 꺼버리는 날도 생겼다. 막상 해보니 별 일이 없었다.

셋째, 나를 지키기 위한 경계선을 설정한다(타인의 에너지로부터 나의 고유한 에너지를 건강하게 지키는 것)

- 누군가 불편하게 해도, 내가 예민한건가?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면, 내 경계선이 생기면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려줄 수 있기때문에 건강한 관계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넷째, 나 자신의 감정을 자주 느낀다(연약한 감정은 그 안에서 머무르며 오롯이 느껴주면 단단해진다)

다섯째, 지금 이 순간을 산다(지금 순간들이 모두 감사하게 다가온다)

여섯때, 내 마음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내가 조금 참고 타인을 만족시키는 선택들 하지 않기)

- 이것은 착한 게 아니라, 타인에게 미움받을까 봐 그 불편함을 감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나는 불편한 상황을 싫어해 '내가 조금 희생하고 말자'라는 생각이 많았다.

일곱 번째, 나의 욕구에 솔직해지기(욕구가 나쁜 게 아니라 욕구를 대하는 자세에서 집착이 생기기 때문에 그 집착에서 고통이 발생하게 됩니다)

-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내가 만든 고통이라는 나에 대한 선입견마저 생겼었기에 필요했다.

여덟 번째, 중심을 나 자신에게 가져오기(중심이 굳건히 선 사람은 타인의 다름도 잘 인정해줄 수 있다. 고집불통이 아니라, 더욱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다. 뿌리깊은 나무가 더 자유롭게 가지를 뻗듯이)

- 남편이 팔랑귀라고 놀린다. 타인을 대할 때 나의 기준으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도 중요했지만, 유연한 사고가 더욱 필요해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도 꼭 필요했다.


불완전한 나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태도로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누군가의 말에 이끌리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삶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자, 내가 도달해야 할 삶의 목적지였다.





keyword
이전 04화여기서 영업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