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아군으로 맞이하여야 할 때
22년 5월 계약을 하고 24년 1월에 오픈을 했으니, 계약서를 참으로 오랜 시간을 묵혔다.
어쩌면 내 마음이 회복되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이라고 하면 딱이겠다.
그 사이 영업팀장이라는 사람은 이미 퇴사를 했고, 결국 2년 전의 나의 계약서는 본사로 넘어가 약 900여 개의 지점을 가진 대표와 직접 통화하기에 이르렀다.
전국 그리고 해외까지 지점이 900개가 넘는 큰 회사 대표 앞에서 개인이 통화한들 달라지는 게 있겠냐만은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맞닦드려 다시 한번 뚫고 나가보고 싶은 마음 하나였다.
그 마음을 가지는 게 2년을 걸렸나 싶지만... 그렇게 걸렸다.
대표라는 사람은 친절했다. 진정성 있는 대화가 오가면서 나의 가시 같던 마음도 한편 수그러들었다.
대표라는 사람과 나의 말속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통화가 이어졌다.
"이것은 계약의 문제이지 합의 자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눈에 뻔히 보이는데, 그래도 계약자님이 진정성 있게 제 말을 들어주시니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잘 들어보십시오"라며 설명을 시작했다.
오픈을 원치 않을 시 계약당사자는 회사 측으로 소송을 할 것이고 결국 법정소송기간으로 약 2년 정도 이미 들어간 나의 계약금과 중도금은 다시 묶이게 되는 것이며, 법은 결국 둘 중 누군가의 편을 들어주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코로나 때 반환청구 소송이 몇 건 있었고, 소송진행 후 온전히 돈을 돌려받은 점주는 단 한 명도 없었다며 이 말이 믿기 힘들다면 사무실 방문 주시면 소송자료들도 보여 줄 수 있으니 잘 판단 하시라는 내용이었다.
너무나도 싫다면 오픈 후에 타인에게 양도하는 쪽이 오히려 나을 거라 했다.
2년 동안 양수자를 한번 구해보겠다는 희망고문을 하며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지 않고서야 어떻게 2년 동안 한 팀도 양수받을 사람이 안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인지 신뢰가 없는 상태였기에 내 마음 하나 달리 먹고 오픈을 시작하는 데 있어 신뢰회복이 우선이었다.
대표라는 사람은 친절했다. 그렇게 오픈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했다.
통화 후 변호사와 상담받고,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도 상담받아 보니 이곳에서는 소득 수준에 따라 변호사 선임비도 지원이 가능하다는 약자를 위한 나라의 지원이 있었다.
하지만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회사계약서의 문항들은 완벽했고, 그것을 자세히 보지 않고 도장을 찍은 오롯이 나의 잘못을 들춰내어 한 번 더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아 한숨만 나왔다.
돌아갈 곳이 없고 나아가는 것만이 최선의 결론이었다.
엎치락뒤치락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내 마음을 붙잡고 현재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마음의 중심을 잡고 적을 아군으로 맞이하여 창업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자리 구하는 것부터 인테리어, 간판, 마케팅 관련 여러 가지 본사의 코칭을 받으며 창업과정을 협업하는데 매사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22년 5월 당시로 시간을 되돌려보았다.
창업은 분명 내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고, 계획에 어긋나면서 창업을 하려는 용기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게 자리해서 시간만 흘려보냈고, 그동안의 나 자신을 용서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에만 초점을 두기로 했다.
물가반영 대비 계약서를 다시 썼다.
그 회사도 나로 인해 계약 후 6개월 이내로 오픈한다는 새로운 계약조항이 생겼다고 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대면했던 부산역 인근의 카페, 그곳의 분위기, 사람들 그리고 자리까지 그 순간의 기억은 한 장의 이미지로 저장되어 지금도 너무 생생하다.
오래 묵혀두었던 어떠한 감정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웠지만,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는 시간, 그에 따른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입맛도 없고 소화도 안되고 불편하고 24시간이 48시간처럼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이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에게 기대어 미팅에 나갔다.
내가 평소에 보았던 선하다는 느낌의 남편은 어디 가고 그날 따라 근엄했고,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이었다.
우리는 계약서를 다시 썼고 일은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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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경력이 단절되면서는 '지금 이 순간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쓰자'라는 기준이 생겼었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자에 초점을 두면서 그만두었지만 긴 호흡으로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었고, 그러려면 안정적인 수익원이 필요했기에 선택해 본 무인 창업이었다.
나는 먼 길을 돌고 돌아 셀프빨래방 사장님이 되었다.
방향을 전환하고 나서는 '잘. 하. 자! 잘. 될. 거. 야'라는 생각만으로 현실감 넘치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그렇게 애태우고 말 많고 탈 많았던 나의 작은 새로운 공간이 탄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