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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Feb 08. 2020

신혼은 달콤하다고 누가 그런 거야

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가보고싶은 그 곳 하와이. 

하와이를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니, 대한민국 공항에 발을 디딘 그 날부터 현타가 시작되었다.

"엄마, 나 잘 도착했어~"

"그래 잘 도착했구나, oo아 너네집 냉장고에 떡이랑 술이랑 아침에 가져다 놨으니까 집에 들어가서 짐풀고 꼭 챙겨서 한복 차려 입고 시댁에 가서 인사드려"

"뭔데?왜?"

"그래 하는거야..."

신혼집에 짐 풀고나니 벌러덩 눕고싶다.

의지로 일어나 시계만 보고 있다 거울보고 단장하고 한복곱게 차려입고 여행지에서 쟁여온 선물꾸러미 챙겨 택시에 올라탔다.

핸드폰이 또르릉.

"엄마, 왜!"

"냉장고에꺼 챙겼나?!"

"헉!아 맞다!근데 나 이미 택시 탔는데?!"

"차돌려서 다시 챙겨가!"

"그냥 주말에 다시 갈때 가져다 드리면 안돼?!"

"안!돼!"

.

.

.

(남편)"네, 엄마 지금 가고 있어요"


여행지에서의 꿈같던 환상적인 그 곳에서의 기억이 아직 온전한데 왜이리도 빨리 잊게 만들어주시는지, 본격적인 신호탄은 이미 시댁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시댁에 도착하니 거대하게 차려진 잔치상과 일가친척분들이 우리를 맞아주시기 위해 대충 봐도 서른 분 정도가 모여 계셨다.

불편한 한복을 입고, 어디에 엉덩이를 붙여야 할지, 어디에 발을 디디고 서 있어야 할지,

갈팡질팡 우왕좌왕, 인사를 시켜주시는데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아... 네..."

"결혼식에서 봤지? 여기는 oo이 이모, 여기는 고모, 작은어머니..."

누가 누군인지 모르겠고, 나중에 차차 다시 알면 되겠지...


부엌에 들어가니 많은 분들이 들어와 계셔서 발붙일 곳이 없고, 그래도 서있으려 했더니 첫날부터 이렇게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며 앉아 쉬라 하시고, 그렇다고 거실에서 남자 어른들 계시는 곳에서 함께 티비를 볼 수도 없고 갈팡질팡하다보니 남편이 조카 꼬맹이들과 보드게임을 하고 있는 장면이 보인다.

문턱에 서서 지켜보고 있으니 남편이 들어오라는데 앉아있어도 가시방석일 것 같아 그냥 문턱에 한참 서서 보드게임만 지켜본다.

'에휴, 시간이 왜 이렇게 안가는거야..'

민감한 내 성격이 한몫 하고 있는 순간이다.


일가친척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시고, 시댁에서의 낯선 하루를 맞이했던 나는 기절하다시피 첫날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부엌에서 분주하게 들려오는 그릇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이 깬 나는 후다닥 일어나 부엌으로 나간다.

남편은 자느라 내가 나가는지도 모르는 눈치다.

낯선 부엌에 서계시는 시어머니와 거실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계시는 시아버님께 문안인사를 드리고....

아침상을 차려내시는 시어머니 옆에서 어깨만 넘어다보며 드는 생각은...


'엄마 보고 싶다'

눈비비고 나와서 앉아 먹던 아침상이 그립다.

스무살부터 자취생활과 타지생활을 하며 끼니를 그렇게 신경써서 챙겨먹지 않았지만, 방학이나 연휴때 얻어먹던 엄마밥이 그렇게도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옆에 서서 차려지는 아침상을 바라보다 시부모님과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긴 했지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내가 뭘 먹고 있는건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오늘 저녁이면 신혼집으로 퇴근을 할 수 있으니까'

룰루랄라 나는 기쁘게 출근을 했다.

이렇게도 회사에 빨리 출근하고 싶었던 적은 입사이래 처음이었던 것 같다.

.

.

.

'오늘은 남편이랑 뭐해먹지?'

레시피 열심히 찾아보며 맛난 음식을 해서 나눠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날아간다.

드라마 속에서 보았던 신혼의 달콤한 장면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진다.

이제 진짜 우리 둘만의 달콤한 신혼생활이 시작되는구나!




퇴근하자마자 버스정거장의 가까운 마트에 들러 온갖 채소며 요리 재료들을 가방 채워서 허겁지겁 집에 도착하자마자 손을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고, 점심시간 짬내어 연구한 레시피를 꺼내어 맛난 요리를 하겠다는 의지로 투닥투닥...

레시피를 봐도 모르겠는건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분명 레시피대로 했는데... 맛이 왜 이런 거야...;;;

더먹으라지만 배부르다고 먹지 않는 남편을 보자하니 그래, 오늘은 실패인정.

'점점 나아질꺼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조리도구는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나는 이미 퇴근후 장봐서 요리까지 해냈으니 넉다운.

몇일째 묵묵히 설겆이를 해내다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우리 그냥 사먹자!"


맛없는 저녁 먹고 늘어져있다 잠들기의 연속....

그래, 남편도 많이 참았구나...


"그러자"

어쩌면 남편이 먼저 그렇게 말해주길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그렸던 달콤한 신혼을 그렇게도 누려보고 싶었으니까.

빠르게 인정하고 빠르게 수긍하자! 남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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