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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보이스에 약해요.

by 이문연

일에 자기 확신이 강하면 좋으련만. 쓸데없는 것에만 자기 확신이 강해지고 있다. 좋은 목소리에 약하다는 것이다. 여자든, 남자든 좋은 목소리를 좋아하는 마음. 그런데 취향은 있다. 마을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앞 자리에 앉은 60대 아저씨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데 목소리가 아주 다정다감하다. 바로 뒤에 앉은 요인도 한 몫했지만 보통 어르신들의 휴대전화 통화음은 젊은 사람들보다 크게 설정되어 있기에 상대방의 음성도 꽤나 잘 들렸다. 아들인 것 같다. 아들 목소리가 참 좋네. 귀를 쫑긋 세우고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빠가 뭔가를 부탁한 것 같은데 자세한 건 모르겠고 마지막 말이 또 기억에 남는다. “부탁한다. 차오-” “네, 차오-” 우리 집은 부모님이 자식들한테 뭔가를 부탁하면서 ‘부탁한다’라는 소리를 하지 않기에 부모가 부탁한다라는 저 음성이 너무 신기했다. 톤에서 느껴지는 다정함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마지막 인사는 뭐지? 차오? 검색해봤더니 이탈리아어로 ’안녕-‘이란다. 추측해보건대 가족들이 함께 한 이탈리아 여행을 갔는데 그 말이 좋았거나 아니면 가족 중 누군가가 이탈리아와 긴밀한 인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 부족한 1인의 결론. 꿀보이스에 더해서 나는 이런 다정함에 결핍이 있나보다. 예전에 썼던 글 중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가급적 다정하지 못한 성격이지만 다정하려고 노력하며 목소리에서도 최대한 차가운 끼를 덜어내고자 노력하는 편(나도 남들이 들었을 때 좋은 목소리의 소유자이고 싶다!! - 비주얼은 포기한다.)이다. 내가 선호하는 꿀보이스는 따뜻하면서 부드럽고 단단한 느낌의 목소리. 좀 어렵지용? 고 이선균 배우의 목소리에서 동굴끼를 좀 덜어내고 배성재 아나운서의 목소리에서 딱딱함을 좀 덜어내고 이도현 배우의 목소리에 깊이를 좀 더하면 되려나? 내가 썼지만 어이없는. ㅋㅋㅋㅋㅋㅋ 여튼, 다정한 부자의 통화로 인해 나까지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꿀보이스에 다정함까지.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야말로 각박한 세상에 참으로 돈 안들이고 행복해지는 방법일 것 같다. 나도 꿀보이스는 아니지만 노력하면 서윗함 정도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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