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잘생겼다. 요즘 말로 하면 '얼굴 천재'다. 키도 크다. 성인 남자 평균 키가 170cm도 안 되던 옛날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던 180cm가 훌쩍 넘는 훤칠한 몸의 소유자였다. 아빠는 20대 청년 시절 명동 거리에 한번 뜨면 뒤에 여자들이 까마득하게 줄을 서서 따라왔다고 농담처럼 얘기하시곤 했다.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순 없지만 앨범 속 젊은 아빠의 얼굴을 보면 정말 그랬을 것 같다.
엄마는 아빠가 잘생겨서 좋았다고 대놓고 말씀하셨다.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잘생긴 아빠 얼굴을 보고 있으면 "잘생겼으니 봐줘야지"하면서 화가 슬며시 가라앉곤 했다고. 하지만 남들이 아무리 아빠가 잘생겼다고 해도 딸이 아빠의 외모를 보지는 않는다. 내겐 그냥 다정한 아빠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아빠가 잘생겼다는 걸 드디어 알아차린 사건(?)이 생겼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졸업식인 만큼 전교생 아빠들이 총출동했다. 그날 확실히 깨달았다, 다른 아빠는 대부분 못생겼다는 사실을. 나는 아빠는 다 우리 아빠처럼 생긴 줄 알았었다. 친구들이 날 툭툭 치며 "너네 아빠 진짜 잘생기셨다" 했다. 슬쩍 돌아보니 아담하고 배 나온 아빠들 사이에서 우리 아빠의 빛나는 얼굴이 홀로 우뚝 솟아 있었다. 왠지 어깨가 으쓱했다. 그날 이후 내 눈에도 아빠가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동안 내가 들어온 말이 사실은 칭찬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어려서부터 '외탁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외삼촌, 이모들과 친했기 때문에 기분 좋게 들었다. 그런데 내가 아빠의 미모를 닮지 않았다는 뜻이었다는 건 몰랐다.
지나치게 잘생긴 아빠를 둔 탓에 나는 평생 '인물이 아빠보다 못해서 아쉬운' 딸로 살았다. 엄마는 아빠와 결혼하면 다른 건 몰라도 인물 하나만큼은 최고인 아이가 나올 줄 아셨단다. 어쩌면 엄마는 자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날 낳자마자 깨달으셨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얘는 공부를 시켜야겠구나"라고 생각하셨다니.
'얼굴 천재' 우리 아빠가 70대에 접어들었다. 미남의 대명사인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처럼 아빠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져도 여전히 멋있다. 그리고 나 역시 변함없이 평범하다. 젊었을 땐 기저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던 아빠는 이제 손주들과 열심히 숨바꼭질을 하고 색칠 놀이를 해주신다. 그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아빠를 보고 있으면 멋진 외모를 타고난 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부모가 되자 부모인 아빠의 입장이 사뭇 와 닿는다. 부모는 자식이 모든 면에서 자기보다 낫길 바란다. 아빠도 그랬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평범한 내 얼굴이 죄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