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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테바신 May 11. 2021

하늘로 떠난 아이 졸업장 만들어 놓은 선생님



경희 씨의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인 여덟 살에 세상을 떠났다. 살부터 4년 간 투병해온 소아암을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  아이는 교실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출석부에 이름만 남긴 채 차디찬 병실에서 숨을 거뒀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월의 어느 날. 경희 씨는 모르는 번호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글은 '준수 어머님'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남이 불러주는 아이 이름을 들은 경희 씨는 자기도 모르게 메시지를 눌렀다.


"준수 어머님, 잘 지내시는지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준수 1학년 담임입니다. 어머님께 드릴 것이 있어서 연락드립니다. 혹시 오늘 오후에 만날 수 있을까요.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경희 씨는 여러 번 다시 읽었다. 준수가 떠난 뒤 준수와 관련된 사람들의 연락처는 전부 삭제했는데 1학년 담임이라니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동그란 뿔테 안경에 긴 생머리를 한 여자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6년이 지났는데 무슨 일이지? 그리고 드릴 것이라니?


경희 씨는 6년 동안 세상과 거의 단절한 상태로 살아온 터라 문자가 반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답장을 하지 않고 무시하기는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답장을 썼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신지요."


바로 다시 답장이 왔다.


"준수 졸업장을 전달드리려고 합니다. 혹시 불편하시면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어머님 마음 아프게 해 드린 건 아닌지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그제야 그날이 인근 초등학교 졸업식날이란 것이 생각났다. 준수는 살아있었다면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였다. 생애 첫 빛나는 졸업장과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환하게 웃었겠지. 이제는 정말로 엄마 떼고 진정한 10대의 세계로 내딛는 날이라 설레었을 텐데. 경희 씨는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아서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런데 졸업장이라니. 무슨 말이지.


경희 씨는 고민 끝에 만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선생님은 이미 다른 학교로 전근한 상태였다. 마침 멀지 않은 곳이라서 직접 가겠다고 했지만 선생님은 한사코 준수가 다녔던 학교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한 경희 씨는 준수가 단 한 번도 지나가보지 못했던 초등학교 정문 앞으로 갔다. 준수가 그렇게 떠난 다음에는 일부러 멀리 돌아서 피해 다니던 학교였다. 정문 위에는 커다랗게 '축 졸업'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6년 만에 처음으로 그 앞에 서자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역시 여기 오는 게 아니었어.


약속을 취소하겠다고 문자를 보내려는데 조심스럽게 "어머님"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6년 전과 똑같은 모습을 한 선생님이 서 있었다. 커다란 꽃다발을 든 선생님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 경희 씨의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둘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둥켜안은 채 펑펑 울었다. 선생님은 한 손엔 꽃다발을, 다른 한 손엔 졸업장을 넣은 가방을 든 채로 경희 씨의 등을 수도 없이 쓸어내려 주었다. 경희 씨는 선생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울고 또 울었다.


선생님은 담임을 맡았던 준수가 세상을 떠났을 때부터 준수를 잊지 못했다고 한다. 본인 역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희 씨도 잊고 있었던 준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준수가 딱 한번 선생님에게 인사드리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날 준수가 했던 말까지 정확히 기억했다.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 가면서도 준수를 잊지 않았다. 학교에 부탁해서 준수가 졸업할 해의 연도와 이름을 넣어서 졸업장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 그녀는 졸업장과 경희 씨의 연락처를 고이 간직했다가 준수의 초등학교 졸업식날에 맞춰 연락한 것이었다. 그녀가 준수를 생각하며 준수의 졸업장을 준비하고 경희 씨에게 건네기까지의 기간은 무려 6년이었다.


경희 씨는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고마웠다. 준수와 매일 뛰놀던 유치원 친구들, 함께 아이 키우던 동네 엄마들 모두 철저하게 준수를 잊었다. 그 누구도 준수를 기억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오직 엄마와 아빠만이 기억해서 더 절절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아무 관련 없는 누군가가 끝까지 잊지 않고 기억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선생님은 준수의 이름 석 자가 적힌 졸업장과 꽃다발을 내밀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어머님, 졸업 축하드립니다."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던 경희 씨는 졸업장 사진과 함께 교육청에 사연을 보냈다. 교육청에서는 이렇게 답변이 왔다.


"선생님께 직접 문의드렸지만 한사코 표창받기를 거부하셔서 표창을 수여하지 못함을 알려 드립니다."


그날 저녁 경희 씨는 선생님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어머님, 오늘 교육청에서 연락받았습니다. 전혀 표창받을 일이 아니라서 거절했습니다. 어머님이 준수 옆에 졸업장을 놓아주시면 제겐 가장 큰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


각박하고 힘든 세상이다. 그럼에도 가끔 살 만하다고 느끼는 건 이런 선생님이 세상에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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