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행불행은 다른 사람과의 인연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행운이 귀인을 통해 들어오듯 불행도 악연을 통해 찾아오는 일이 많거든요' (The Having 중에서, 이서윤, 홍주연 저)
현실에 어차피 피해 갈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 우리 인생사다. 어느덧 성장하여 직함에 맞는 자리에 안착하여 밥을 벌고 있는 前 또는 前前 직장 동기들이나 후배들 그리고 친목으로 엮어진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곳이 평범하지 않고 독특한 이유가 많은 곳이란 걸 재차 확인하게 된다.
각자 밥벌이터 실상의 넋두리를 듣다 보면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과 유사한 연유에서 발생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곳은일상의 범주에 벗어난 무질서한 룰이 심하게 저마다의 불행의 이유로 엉켜있는 곳이다.
'확실한 희망을 품고 사는 것. 그 불안을 견디는 것. 모든 상황을 내가 규정짓고 심판하고 책임지겠다고 생각한 오만함을 내려놓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 마지막 회 내레이션처럼 행운이 악연으로 변질된 현실은 불변이지만 결국 그 깨달음은 각자에게 남는 것이다.
오늘처럼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마음이 처연할 때에는 다행히 나에게는 아무도 방해받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요가가 있다. 구겨져있는 매트를 쫙 펴니 내 마음의 구김살도 같이 펴지는 것 같다. 빗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이어 아사나에 하나하나 몰입하니 마음과 호흡이 차분해진다.
이곳에서 행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요가와 구루를 알게 되었고 요가를 배우는 과정에서 그나마 큰 위안과 성취감을 얻었다. 요가는 어떤 구분 없이 그 자체로 즐기고 자아내면의 중심선에서 자신이 균형 잡고 나가면 된다. 그것이 요즘 매트 위에서 깨달은 나의 삶이다.
중립적이고 힘을 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차츰 사라진다. 이도시에서 물리적인 거리 몇십 km를 벗어나야 짓누르는 감정에서 탈피되어 진실된 자아를 찾을 것만 같았다. 무엇이든 가꾸고 다듬지 않으면 망가진다. 삶 또한 그렇다. 요가 또한 그럴 것이다. 누구만을 위한 요가는 압박이 되고 갇히게 된다.
삶이 투영된 요가를 통해 이미 지나온 경험을 토대로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삶의 행운을 상상하는 것. 또 다른 새로운 우연에 의해 만날 낯선 타인도 기대해보는 것. 과거와 미래, 악연에 빠지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게 행운을 오래 가게 하는 나의 요가는 과연 무엇일까?
'나눔이란 한 방향으로만 가는 일방통행과 같은 느낌이에요.(...) 윈윈은 철저하게 주고받는 것 give and take으로 내가 상대에게 이익을 주면 상대방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돌려준다는 개념이에요. (...) 상생이란 내가 먼저 베풀면 우주의 에너지가 돌고 돌아 나에게 더 큰 행운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