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앓이
'이젠 특별히 미운 사람도 없고 불편한 사람도 없는, 나이 들어감의 느슨함과 편안함이 생기는 거 같아요.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해 살을 파 먹듯이 다가오고, 그로 인해 가장 힘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더라고요'
3년 만에 다시 대상포진이 왔다. 3년 전엔 감량으로 신체가 주된 원인이었다면 이번엔 마음인 것 같다. 항바이러스제를 7일 복용하니 두통이 가라앉는다. 한의원을 찾았다. 시대가 변해 맥도 이제 기계가 본다. 여러 분야의 맥(파동)이 그래프용지에 인쇄 출력되고 통역의 몫은 아직까지 사람인 한의사의 몫이다.
여러 분야의 맥이 허하고 기(氣)가 많이 빠진 상태라 한다. 특히 어떤 맥은 극심한 스트레스 곡선인데 가슴앓이라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본 단어다. '가슴앓이' 갑자기 사랑에 빠져 누굴 사모하거나 그리워한 경우는 아니니 예상대로 체력보다 일상의 불편한 마음으로 인한 병 같다.
마음이 헛헛해 지인에게 메일을 보내니 답장이 왔다. 그렇다. 모든 것은 언제나 내 안에 답이 있다. 새봄 아름답게 핀 꽃을 보면서 며칠 여유를 가진다면 좀 더 빨리 회복되지 않을까 하는, 로또번호를 마킹할 때 잠시 가지는 비현실적 상상을 펴다 이내 현실로 돌아와 본다.
스트레스 안 받는 방법은 두 가지다. 안 만나는 것과 만나도 스트레스 항체를 가지는 것!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내 안에 있는 답이 아니다. 지인의 말씀은 자신을 격리한다든지, 타인을 바이러스 취급하는 억지스러움이 아닌 내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단련시키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말하는 것 아닌가 싶다
맞이할 줄 아는 삶과 당하고 허둥대는 삶의 경계는 바로 마음가짐이다. 맞이한다는 말은 다르게 말해 떠나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낀다. 어긋난 인연은 어떻게든 어긋나게 되어있고, 이어질 인연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그 편안함이 기대와 욕심을 자기 마음에서 내려놓게 만든다.
무거운 것은 병을 부른다. 마음이든 몸이든.
홀로 요가매트를 펴고 '파드마 아사나(Padmasana)'로 심호흡을 해본다. 힘 빼는 것이 가장 힘든 요가에서 마음의 힘을 빼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무거우니 힘이 부치고 마음이 상한다. 이어서 '아르다 받다 파드마 파스치모타나 아사나(Ardhabaddhapadmapaschimottanasana)로 이어지니 자극보단 통증이 앞선다.
같은 질병이지만, 3년 전은 체력적으로 단련시키다 준비된 병을 맞이한 것이라면, 지금은 마음이 고갈되고 자극 없이 통증만 축척되어 일방적으로 병에게 당하고 만 것이다. '파드마 아사나'는 마음의 무엇을 지우려고 위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파드마 아사나' 그 아사나 자체로 집중하고 몰입하며 만족하면 되는 것이다.
북유럽인들의 상위권 행복지수가 '얀테의 법칙'과 무관함이 아니듯, 나이에 맞는 자연스러움이 어떤 것인지 지인의 말씀 중 어느 한 문구에서 그 편안함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천천히 마음을 회복하여 새봄 또한 맞이하려 한다.
'신기하게 요즘, 아니 이 나이가 되어서인지 사람 관계에서 별 스트레스 안 받고 사는 거 같아요.'
-2022년 4월 꽃피는 봄날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