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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UK Oct 27. 2024

네가 좋은 대학을 갔어야지.

자식은 부모의 얼굴 (2)

대학교 1학년 내내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성적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은 2학년 1학기 성적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다 핑계이다.

그저 내가 공부를 안 한 것이다.

변명할 생각도 없다.


말했다시피 나는 지방대라 집이랑 대학이랑 통학을 절대 할 수 없는 거리이다. 그래서 1학년부터 학교 기숙사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그게 못마땅하셨나 보다. 왜냐하면 어쨌든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을 기숙사비 + 식비가 추가적으로 지출하게 되었으니까.


내가 지방대를 갔는데 성적도 바닥이니,

엄마가 화가 나셨다.

(사실 바닥까지는 아니고 등수로 따지면 60명 중에 20등이었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나의 성적에 관심이 많았다.

아빠는 대학을 나오지 않으셔서 공부에 대해 잘 모르시지만 아빠도 성적은 지속적으로 물어보셨다.


“이번엔 몇 점 맞았어?”

“몇 등이야?”

“장학금 받을 수 있는 거야?”

“저번보다 몇 점이나 오른 거야?”


그리고 나의 대답에 따라 갈리는 반응.


“와 성적 많이 올랐네~ 수고했어~”

“잘했네. 축하 파티라도 해야겠네! “

“거봐. 하면 잘한다니까?”


혹은


“뭐? 장학금 못 받는다고? 근데 왜 그걸 바로 이야기를 안 해?”

“이번엔 성적이 왜 떨어졌어?”

“그러니까 도서관에서 공부하라니까. 솔직히 이번엔 공부 안 했지?”




.

.

.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정말 집중해서 노력한 적도 있고 아닌 적도 있다.

성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의 노력이 백 퍼센트 반영되지는 않은 것 같다.


어쨌든 부모님은 나의 성적에 아주 지대한 관심을 가지신다.

그동안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난 후,

대학에서 처음으로 성적 장학금을 받지 못했을 때

엄마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성적 장학금 못 받았으니까 이번학기 기숙사비는 어떻게 할래?”라는 반응이었다.


그동안은 돈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없다.

성인 전에는 분명 공부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지원해 주겠다고 했는데, 그랬는데...

그 조건은 내가 공부를 “잘”했을 때였나 보다.

그전까지는 대학을 가기 위한 길이니까, 아직 결과를 모르니까 공부와 관련된 지원을 해주셨던 걸까.


하지만 전문직을 가지려면 대학 가는 것은 필수가 아닌가? 그러니 엄마의 의도는 하나뿐이다.


“좋은” 대학을 갔을 때만 지원해 주겠다.


실제로도 엄마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 근데 만약 내가 좋은 대학을 갔어도 거기가 집이랑 멀면 통학하기 힘들어서 기숙사를 살거나 자취를 했을 텐데 그럼 그때도 지원 안 해줬을 거예요? “


“아니, 그때는 당연히 지원하지. 좋은 대학을 갔잖아. 너는 지방대고.”


“네?”


“엄마가 재수하라고 계속 이야기하는데도 지방대 갈 정도였으면 그 정도의 결심은 했어야지. 혼자 학비 벌어서 다닐 작정 정도는 했어야지.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엄마 말 무시하고 지방대 간 거였어? 그런 거야???”


엄마는 윽박지르며 나에게 말했다. 엄마가 큰소리를 낼 때마다 진절머리가 난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어렸을 때지만 엄마한테 맞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지방대 간 것이 엄마의 말을 무시한 거라고 생각해요?”


“당연한 거 아니야? 네가 재수해서 좋은 대학 갔으면 무슨 지원이든 해줬을 거야. 돈이 아깝다는 생각 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지방대는 왜 가서 기숙사랑 식비를 더 들게 만들어??? “


”... “


“그리고 지방대를 갔으면 당연히 만년 1등이어야지. 거기서도 성적 장학금을 못 받으면 어떡해? 이래서 임용고시는 어떻게 보려고. 성적 장학금 못 받으면 기숙사비고 식비가 다 네가 해라. “







.

.

.


나는 엄마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대답이 없자 엄마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계속 똑같은 말만 계속해서 미안한데,

나도 머리로는 이해를 하겠다.

근데 왜? 마음속에서 물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자식을 낳았다면 나는 재수하라고 권하기는 하겠지만(안타깝고 아까워서), 지방대를 가겠다고 말했을 때는 분명 지원해 줄 것이라 말할 것이다.


애초에 성적이 좋아야 돈을 줄 거야 라는 말은 안 했을 것이다. 내가 자식을 낳아보지 않아 그런 걸까.

난 엄마를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마음의 짐은 계속해서 쌓여서 결국 언젠가는 터질 것만 같다. 완전히 터져버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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