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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유주얼 Apr 29. 2020

우리 모두의 앤디 워홀

<언유주얼픽!-Art> 3rd

언유주얼 매거진의 고정 칼럼니스트 주단단Z가 들려주는 명화 이야기, <언유주얼픽!-Art> 오늘은 여러분과 앤디 워홀 (Andy Warhol) 을 만나봅니다.




Andy Warhol @Factory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사람


주단단의 수요명화, 오늘 주인공은 본업인 화가 겸 영화감독, 사진, 음반, 저술가, 잡지 <interview>의 창간자. 바로 전방위적 예술가 앤디 워홀(Andy Warhol)입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가난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머니는 7살이 된 그에게 사진기를 사주고, 지하에 암실까지 만들어 현상 작업까지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죠. 이토록 세심한 사랑 덕인지 그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소박했으며, 일관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인이 된 그는 재능과 취미를 그대로 살려 대학에서 상업 미술을 전공합니다. 졸업 후 뉴욕으로 건너가 ‘보그 Vogue’, ‘바자 Bazaar’와 같은 패션지의 삽화를 그렸죠. 하지만 상업 미술계를 평정했던 그 역시도 순수 미술의 영역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평단은 그의 작품에 심지어 이런 평가를 내리고야 말죠. ‘세심하게 연구된 도착적 분위기.’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 세계를 정당하게 펼치기 위해 고심합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아는 그 많은 작품들로 당당히 아티스트로서 인정받게 되죠. 



Andy Warhol (1928-1987)


Andy Warhol and the Velvet Underground, Los Angeles, California, 1965 © Steve Schapiro



나를 알고 싶으면, 나 대신 작품을 봐 주세요


앤디 워홀의 남다른 시선은 그의 예술관에서 도드라집니다. 그는 예술가의 내면 대신 작품으로서 관객과 마주하길 바랐죠. 사생활을 철저히 숨기고 개인사를 노출하지 않았으며, 대중에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관리하였습니다. 실제로 그의 스타일이나 에티튜드는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니기도 했죠. 언제나 그의 내면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베일에 휩싸인 세계였습니다. 모두의 예측과는 다르게 사실 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고, 아무도 모르게 노숙자들을 돌보는 봉사도 했으며 성당을 지날 때는 차를 멈추고 들어가 기도를 드리고 나왔다고 하는군요. 시크한 외면에 숨겨진 이런 철저한 노력과 온화한 내면이야말로 그를 오랜 시간 동안 선두에서 활동하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그의 지인들은 증언합니다.


Andy Warhol <Campbell's green pea soup> (1968)


Andy Warhol <The Electric Chair> (1966)



Andy Warhol <The Brillo Boxes> (Tate gallery)



© 2018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Andy Warhol  <Michael Jackson>



Andy Warhol,  portrait of Marilyn Monroe (1967)



Andy Warhol ?Muhammad Ali> (1978)


캠벨 수프, 코카콜라, 마릴린 먼로 그리고 마이클 잭슨


'모든 것이 예술이다. 희귀한 것만 예술이 아니라 흔한 것도 에술이 될 수 있다.’ 


그는 예술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세우고, 이를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자신의 신념에 대한 강한 믿음이야 말로 앤디 워홀의 작품을 관통하는 힘이었죠.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함과 동시에 자신의 스타일을 잃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1962년,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작품인 <캠벨 수프>가 공개되었던 첫번째 전시회에서 그는 ‘예술의 대량 생산’ 이라는 신박한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평소 알고지내던 지인에게서 일상적인 물건에서 영감을 찾아야 한다, 수프 캔을 그려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게 되고 이 아이디어는 앤디 워홀의 철학과 만나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됩니다. 관객들 역시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에 화답했죠. 그는 자신의 예술을 ‘세상의 거울’이라 말했고, 스스로가 그 거울에 비친 세상을 찍어내는 기계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의 작업실 이름이 ‘팩토리’인 이유 역시 이와 관련있겠죠?





영원한 영웅

“왜 안되나요?”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은 '왜 안되나요?'였습니다. 앤디 워홀은 끝없이 시도를 거듭하였고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예술도 충분히 일상적일 수 있고, 재미있을 수 있으며, 쉬울 수 있고, 무엇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죠. 그는 끊임없이 대중을 유혹했고 평단을 유혹했으며, 결국 이 둘 모두를 함께 설득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맞아요, 그는 마침내 예술계의 영웅이 된 것이죠!. 사후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그의 이름은 모를수도 있지만, 그의 작품만은 분명 모두가 알거라 확신합니다. ‘나를 알고 싶으면 나의 작품을 봐달라’는 그의 바람처럼 말이죠. 




칼럼니스트 주단단 Z, 언유주얼 매거진


이미지 출처 :
https://static.independent.co.uk



주단단Z의 명화픽은 언유주얼 인스타그램에서 수시로 만날 수 있고, 주단단Z의 아트 섹션 <an usual Pick!-Art>이 수록된 언유주얼은 여기에서 만날 수 있다.


매거진 언유주얼은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 매거진을 표방합니다. 소설 수필 시 영화 음악 전시 사진 공연 뭐든 '내 얘긴데' 하는 얘기들을 빠짐없이 모을 것입니다.


언유주얼 브런치엔 

에디터들이 픽한 언유주얼픽이 올라갑니다. 인스타그램에 줄곧 소개하고 있는 이미지픽을 비롯하여, 브런치를 비롯 인터넷에 공개되는 미등단 미출간 작가의 좋은 글을 소개하는 텍스트픽, 주단단 칼럼니스트가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명화픽도 준비됩니다.


우리 같이

좋은 거 보고 재미나게 살아보자고요. 우리들의 an usual한 하루가 unusual하게 느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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