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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성호 Aug 28. 2017

우리는 모두 풀옵션으로 태어났다.

한계를 만드는 건 오직 나뿐이다.

"이야, 달래무침이 반찬으로 다 나오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나오는 달래무침을 젓가락으로 집으며, 저는 누구에게 말하는지도 모를 찬사를 보냈습니다. 요즘처럼 환절기에 알싸한 달래무침이야 말로 밥도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저는 원래 달래무침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굳이 어렵게 캐 온 달래를 맛있게 무쳐서 아버지보다 먼저 제 숟가락에 올려주실 때면 저는 어김없이 안 먹는다고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었습니다. 씁쓸하기도 씁쓸하거니와 평소 자주 먹어보지 않은 생소한 맛에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곱창도 그랬고, 백숙도 그랬습니다.

'내 입맛에는 별로야.', '나랑은 맞지 않아.'

좋아하지 않는다며 피해다니던 그 음식들, 지금은 굳이 찾아다니며 먹을 정도로 제 입맛이 변해 있었습니다. 아니 어쩜 익숙해 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생활 하다보니 먹고 싶지 않은 음식도 먹어야 할 때가 있고, 어떨 때는 좋아하는 것처럼 억지로 먹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익숙해지고 어느 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찾아 먹는 입맛이 되어버렸습니다. 절대 먹지 못할 것 같던 음식들이 지금은 찾아서 먹고 싶은 음식들로 바뀌었습니다.

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적성에는 맞지 않다고, 나랑은 맞지 않다고, 나는 그런 거 싫어한다고 배제시키고, 피했던 일들을 어느 새 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걸로 돈까지 벌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자주 알아채는 게 인생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항상 반복합니다.

하지 못할 것 같고 맞지 않을 것 같은 그것을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요? 내가 변한 걸까요? 아니면 원래 할 줄 알고, 적성에 맞는 것인데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우리의 생각이나 판단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보거나 겪은 상황과 경험들에 의해 형성됩니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들은 예측하거나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막연하게 두렵거나 어색하고 결국, 나랑은 맞지 않다고 합리화해 버리는 게 우리 대부분의 모습입니다. 막상 닥치면 어찌저찌, 그리고 어쩌면 '잘' 해내기도 하면서 말이죠.



"크루즈 기능 옵션으로 설치해 주세요."

새 차를 샀다고 시승을 시켜주겠다던 후배가 갑자기 한 정비소로 들어가더니 '크루즈'라는 옵션을 설치하겠다고 했습니다. 크루즈라는 기능은 고속으로 주행하는 도로에서 자동차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시승을 시켜주겠다더니 이런 고급 옵션 설치를 맡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도 오래 걸릴 테고.
그런데 불과 20분도 안 돼서 옵션 설치는 끝났습니다. 이유인 즉슨,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옵션들은 이미 자동차가 생산될 때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셋팅된 채로 출하된다고 합니다. 다만, 그것을 우리가 직접 콘트롤 하는 장치만 빠져 있기 때문에 그 기능들을 모두 사용할 수 없는 것이죠. 즉, 크루즈 기능을 옵션으로 설치한다는 것은 크루즈 기능을 작동할 버튼 정도를 하나 더 설치하는 것입니다. 자동차 자체를 뜯어 고치는 게 아니고 말이죠.



언젠가 '이디셜 D'라는 자동차 애니메이션에서 비슷한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시속 250km이상을 달릴 수 있는 자동차에 속도 계기판을 200km로 설치해 놓으니 주인공은 절대 200km 이상을 밟을 생각을 못하는 내용었습니다. RPM도 여유있고, 엑셀의 유격도 여유가 있는데도 계기판만을 보고 자동차의 최고 속도를 끌어올리지 못하는 걸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쟤는 되지만 나는 안돼.' , '나랑은 안 맞아.'

어쩌면 우리도 우리의 진짜 능력을 알아채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좌절하며, 포기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100이라는 우리의 능력을 지금까지의 경험과 판단, 선입견만으로 과소평가하고 지레 포기해 버리는 지도 모릅니다. 다소 어색하고, 두렵더라도 우리 안에 숨어있는 진짜 능력들을 꺼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동물원 우리 안 야생동물처럼 마치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그곳인 냥 살아가기 싫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풀옵션으로 멋지게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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