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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맨을 잡았다, 그것도 두 마리나

작은 가전이 가져온 아주 큰 평화

by 피터의펜

예전에 아이들과 함께 포켓몬스터를 보다가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아빠는 포켓몬 세상에 가면 어떤 포켓몬 잡고 싶어?"


아이는 주저 없이 꼬부기라고 했다.

이유는 참 단순했다.


"귀여워서."


아이다운 대답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아이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거북이를 좋아했다.


한번은 우연히 들어간 거북이 카페에서 등껍질을 만지고 먹이를 주던 순간이 너무 좋았던지,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날은 아이를 달래 가며 집에 가자고 한참이나 설득해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꼬부기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아이가 내게 다시 물었다.


"아빠는?"


포켓몬스터는 내게도 낯설지 않다. 학창 시절, 방과 후 TV 앞에 앉아 주인공들이 포켓몬과 함께 여행을 떠나던 장면을 수없이 보며 자란 세대이니까.


그래서 나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마임맨."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내가 왜 마임맨을 골랐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임맨은 주인공 집에 살면서 집안일을 묵묵하게 돕는 착하고 든든한 포켓몬이다. 출근도 없고, 불평도 없고, 슬럼프도 없다. 청소면 청소, 빨래면 빨래, 그저 조용히 주인공 엄마의 부름에 응하며 필요한 일을 해낸다.


나는 늘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집에도 마임맨이 한 마리만 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나는 정말 마임맨을 두 마리나 들였다.


바로 식기세척기음식물처리기다.


처음엔 그저 조금 편리한 주방가전 정도라고 생각했다.


이런 거 없어도 남은 음식물은 봉투에 담아 버리면 되고, 설거지는 고무장갑 끼고 하면 되는 일이니까.


겨울이면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게 조금 귀찮긴 해도 평소엔 크게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 이 두 녀석을 들여놓고 보니, 내 상상보다 훨씬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원래라면 식탁을 치우는 순간에는 늘 작은 한숨이 먼저 나왔다.


'오늘은 누가 설거지하나?'

'음식물 쓰레기는 어쩌지?'


집 안의 자잘한 의무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어느새 사소한 말에도 서로 예민해지는 날이 생겼다. 별것 아닌 한마디에 분위기가 흐려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두 마리의 '마임맨'이 들어오고 나서 이 집의 공기는 조금 달라졌다.


음식물처리기는 남은 찌꺼기를 금세 말리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작은 알갱이로 바꿔준다. 종량제 봉투에 툭 넣으면 끝이다. 식기세척기는 복잡한 설거지 과정을 문을 닫는 순간부터 온전히 맡아준다. 세제를 넣고 버튼만 누르면 조용히, 성실하게 일을 해낸다.


그 조용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우리 집의 저녁 시간을 이전보다 훨씬 부드럽게 바꿔놓았다. 누가 먼저 나설지 눈치 보던 순간이 사라지고 설거지 당번을 정하던 작은 갈등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어쩌면 우리 가족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는 건 이 조용한 두 마리의 마임맨 덕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집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들이 자연스레 일어난다. 주택으로 이사하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서로 조금 덜 부딪히자'는 약속을 사람보다 기계가 먼저 지켜준 셈이다.


가끔 아이가 지나가다, 설거지를 쉼 없이 해내는 식기세척기를 힐끗 보며 말한다


"아빠, 우리 집 마임맨 진짜 좋다."


그 말이 참 좋다. 매일 저녁 조용히 일하는 두 마리의 마임맨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집이라는 건 큰 변화보다 이렇게 작은 편안함이 조용히 쌓여 완성되는 게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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