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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려치는 미술사 -르네상스의 천재들 서문

by 박신영

르네상스 시대는 인류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들을 창조했던 시대다. 세상에는 하늘의 별처럼 많은 예술들이 있지만 르네상스의 예술들은 그중 유독 더 밝게 빛나는 소수의 별들과 같다. 르네상스의 영광이 끝나고 세월이 흘러 벌써 다섯 세기가 더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회화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 조각하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역사에 존재했던 많은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 때문에 로마와 피렌체를 방문해 르네상스의 작품들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그들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했지만 그 누구도 르네상스 예술만이 가진 우아함을 따라잡지 못했다.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여 빛나는 예술, 그것이 바로 르네상스의 예술들이다.

르네상스 예술이 가진 아름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아름다움일까. 매년 수백만의 사람들이 르네상스의 걸작들을 보기 위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로마 바티칸 궁전을 방문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작품 앞에서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런 감상도 의미 있지만 이는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예술의 감상에는 여러 계층의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 단순한 커피에서 조차 겉으로 느껴지는 향기 아래에는 쓴맛과 신맛의 비율은 어떠한지, 은은한 고구마 향이 나는지 상큼한 오렌지 향이 나는지, 또는 아프리카 원두인지 남미 원두인지에 따른 맛의 차이를 이야기할 수 있다. 커피 맛을 이해하는 계층이 쌓일수록 맛을 더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감상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 뿐 아니라 그 예술이 탄생한 시대는 어떤 시대였는지, 예술가는 어떤 성격의 사람이었으며 그 성격이 어떻게 예술로 드러났는지, 또한 어떤 생각과 고민을 가지고 예술을 창조했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그 예술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술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대에 관해 먼저 이해하는 것이다. 예술은 그 시대의 보살핌 속에 태어난 딸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르네상스 시대에 관해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은 '14세기와 16세기 사이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부흥운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는 그저 단순히 문화와 예술이 부흥한 시대가 아니었다. 인류는 르네상스를 통해 계몽의 근대Modern Age라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라는 단어에서 어쩐지 밝은 느낌이 나는 것은 계몽의 밝은 이미지가 단어에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인류사 전체를 반으로 잘라 거대한 두 덩어리로 나누어야 한다면 정확히 그 분기점이 되는 시대가 바로 르네상스 시대다. 르네상스 이전의 시대는 '신'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천년의 중세동안 사람들은 촛불 아래 성경을 읽으며 신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중세의 마지막 즈음에 십자군 전쟁과 흑사병 같이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신의 섭리'로 이 문제들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필요해졌다.

이 절박함이 르네상스를 깨우게 된다. 사람들은 성경을 버리고 대신 과거의 모래 속에 파묻혀있던 그리스 로마시대의 인본주의와 철학, 그리고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을 다시 깨우기 시작했다. 르네상스라는 이름은 여기서 비롯되었는데 그리스 로마의 정신을 '다시re 깨운다naissance'는 의미가 바로 르네상스였다. 중세의 신으로부터 벗어난 인간들, 그들이 처음으로 스스로의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르네상스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르네상스 예술에는 천년의 중세를 극복하고 인간중심의 시대를 이끈 시대정신이 그대로 녹아있다. 르네상스의 천재들은 인간의 순수한 이성과 의지로 모든 것을 처음부터 고민하며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인간과 인간의 지성에 대한 고민, 그것이 르네상스의 예술을 우아하게 만들었다.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사람들은 우리에게 '르네상스의 천재들'로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신과 가장 닮았던 자들이기도 했다. 중세의 끝자락, '신의 섭리'와 '인간의 이성'이 충돌하던 그 시대에 르네상스의 천재들은 예술을 창조했다. 혼혈 중에 유독 미인들이 많다는 말도 있지만 르네상스의 천재들은 신의 시대에서만 나올 수 있는 초월적인 아름다움과 인간의 시대에서만 나올 수 있는 세속적 아름다움을 조합하여 최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 포세이돈의 바다와 키프로스의 땅 사이에서 태어난 비너스처럼 르네상스의 예술은 거대한 두 세계의 경계, 그 물거품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지금부터 르네상스의 천재들이 어떻게 새로운 예술과 문화를 창조해 나갔는지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미리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책은 예술을 설명하는 책이지만 상당 부분 역사 이야기들을 함께 다룰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 강조했던 것처럼 르네상스 예술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함이다. 그 이야기들이 르네상스의 천재들의 이야기에 두툼한 살을 붙여줄 것이다. 때문에 이야기는 중세의 마지막 시기였던 십자군 전쟁부터 시작해서 피렌체 공화국의 종말로 끝맺을 것이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린다.

이 책을 통해 르네상스 예술의 아름다움을 의미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만약 정말 르네상스의 예술이 인류사 최고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런 예술의 아름다움에 관해 한 번쯤은 제대로 감상해 보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그저 입구에서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 살피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그 깊이로 내려가보자. 그 깊이에는 르네상스를 탄생시킨 시대는 어떤 시대였는지, 르네상스를 꽃피운 천재들은 어떤 생각과 고민을 가지고 예술을 창조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창조된 예술에서는 어떤 아름다움이 숨어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우리가 커피의 향을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르네상스 예술 또한 그렇게 즐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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