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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영 Feb 07. 2024

르네상스의 불꽃, 십자군 전쟁

<1095년 공의회를 진행 중인 교황 우르바누스 2세>


Deus lo vult, 신께서 그것을 바라신다


1095년 11월 27일, 오색 단풍이 프랑스 전역을 아름답게 뒤덮은 늦가을, 프랑스 중부의 마을 클레르몽의 성당 앞에는 마을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모여있습니다. 쌀쌀한 가을 아침 바람이 손발을 차갑게 만들었지만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들뜬 마음이었습니다. 곧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마을의 광장에서 연설한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손을 모으고 교황을 기다리고 있는 중세의 민중들. 그들에게 종교는 삶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누추한 마을에 '신의 목소리'를 대신해줄 교황이 나타난다니요.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지난 10일 동안 이 클레르몽이라는 마을의 성당에서 공의회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공의회는 유럽의 고위 성직자들이 한 곳에 모여 기독교계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는 회의입니다. 중세의 유럽은 철저하게 기독교 중심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기독교계의 결정이 내려진다는 말은 사실상 유럽 전체의 방향이 결정지어진다는 말과 같습니다.   

안에서 회의가 끝나고 드디어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교황의 등장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군중은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조용해진 관중들을 잠시 바라보던 교황은 곧 연설을 시작합니다. 교황의 칼날 같은 목소리가 가을의 찬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 모두 이미 소문을 통해 들었겠지만 이슬람인들이 우리의 형제들을 공격하여 서쪽 지중해 해안과 헬레스폰토스까지 이르는 영토를 침공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땅을 계속 점령하고 있고 일곱 번의 전투에서 모두 그리스도인들을 이겼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을 죽이고, 납치하며, 교회를 파괴하고, 이 땅을 황폐화시키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그들을 그대로 둔다면 더 많은 하나님의 신자들이 계속 공격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아니 그 누구보다 주님께서 바라십니다. 그리스도의 전령인 여러분은 병사와 기사, 가난하고 부유한 사람을 막론하고 모두 동쪽으로 가서 그리스도인들을 돕고 그 사악한 종족을 멸망시켜야 합니다. 나는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에게 지금 말하지만, 이는 여기 있지 아니한 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께서 명하시는 것입니다!

길에서나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이방인과의 전쟁에서 죽는 자는 즉시 죄 사함을 받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교황에게 부여하신 그 능력으로 죄 사함을 내릴 것입니다. 신자들끼리 서로 싸우던 자들은 이제는 이교도들과 맞서 싸워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입니다. 지금까지 강도였던 사람은 기사가 될 것입니다. 형제와 친척과 싸우던 자들은 이제 야만인들을 멸하는 의로운 싸움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적은 보수를 받던 용병들은 이제 영생의 보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연설을 들은 클레르몽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물론 천년 후의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는 11세기 중세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지만 교황은 자신의 연설이 사람들의 마음의 어딘가에 불을 지를 것이라는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뜨거워지는 군중들 사이에서 누군가 다음과 같이 소리칩니다.   


'데우스 로 불트!-(신께서 그것을 바라신다!)'


이 구호는 순식간에 퍼져나가 곧 광장의 사람들이 모두 이 구호를 합창하기 시작했습니다. 구호의 첫 제창자가 박자까지 고려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구호는 빨리 말하면 3음절이 되니까 축구장에서 외치는 구호처럼 다 같이 외치기에 좋았습니다. 사람들의 열정적인 외침은 클레르몽의 골짜기를 타고 넘으며 계속 울려 퍼졌습니다. 교황은 열정적으로 소리치는 사람들을 한동안 가만히 내려보았습니다. 군중의 열기가 어느 정도 잦아들었을 때쯤, 교황은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군중을 내려다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화답합니다. 


이 말은 여러분의 마음에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말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전쟁에서 적을 만날 때마다 외치십시오. 신께서 그것을 바라신다!


Deus lo vult. 이 구호는 마치 유럽 축구팀의 팀 구호처럼 이후 십자군의 전용 구호가 됩니다. 이 짧은 구호가 울려 퍼지던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서양사의 중앙에 가장 큰 획을 그은 전쟁 십자군 전쟁이 시작됩니다. 역사상 가장 종교적이었던 전쟁,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유럽을 그 종교로부터 완전히 탈출시키고 르네상스 시대를 불러온 역설의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히라산 동굴에서 계시를 받는 마호메트


이슬람의 침공

우리 입장에서는 11세기 프랑스인들의 열정적인 외침이 종교적 광기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내부상황을 살펴보면 마을 사람들이 교황의 연설에 열광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11세기 중세의 민중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괴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역사학자들 중에는 중세를 '암흑기'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실제로 중세가 굉장히 거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힘없는 민중들에게 더 그러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세의 민중들을 그토록 괴롭게 했을까요? 민중을 괴롭히는 것은 단순히 봉건 영주의 횡포가 아니었습니다. 악독한 영주들의 높은 세금이야 아무리 힘들어도 어떻게든 몸으로 때울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은 따로 있었습니다. 중세의 '진짜 공포', 바로 이슬람의 침략입니다. 


기원후 570년, 유럽이 중세의 혼란을 겪고 있던 시기에 중동에서는 시대를 바꿀 인물이 한 명 등장합니다. 바로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입니다. 진리를 갈구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던 마호메트는 젊은 시절 수행을 하다가 우연히 히라산의 어느 동굴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동굴에서 마호메트는 한 천사를 만납니다. 천사는 겁먹은 마호메트에게 '계시'를 받아 적으라고 했고 마호메트는 천천히 계시를 받아적었습니다. 이때 계시를 받아 적은 내용이 바로 이슬람의 경전, '쿠란'입니다. 바로 이슬람교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이슬람교는 곧 중동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호메트가 받은 계시 중에는 평범하지 않는 내용이 한 군데 있었습니다. 바로 이슬람을 믿지 않는 불신자는 죽여도 된다는 것이죠.


너희가 불신자를 만났을 때, 그들의 목을 쳐라 (쿠란 47:4)


이 구절을 꼭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논쟁은 여전히 있지만, 당시 이슬람을 믿기 시작한 사람 중에는 이 구절을 상당히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쿠란에는 다른 좋은 구절도 많이 있는데 왜 굳이 이 구절에 집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슬람 세력은 이 쿠란의 구절을 바탕으로 전방위적 침략을 시작합니다. 불신자는 죽여도 상관없으니 그들을 죽이고 땅은 차지하면 그만인 것이죠. 현대의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 중에 간혹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 것은 아마도 이 구절의 영향 때문일 것입니다.  

이슬람은 우선 칼로 기독교 마을을 정복을 한 후 이슬람을 믿을지 말지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살려주었고 개종하지 않으면 살려두지 않았던 것이죠. 죽음의 위협 앞에 이슬람을 택한 기독교인들도 적지 않았지만 일평생 기독교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많은 중세의 사람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습니다. 

이슬람 세력은 처음에 북 아프리카 지역, 지금의 이집트, 알제리, 리비아 쪽을 점령에 성공합니다. 지금도 이집트를 포함한 북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슬람 국가인데 전부 이 시기에 이슬람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파죽지세로 침공을 이어나가던 이슬람은 지중해를 건너 유럽 본토까지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침략을 당한 곳은 아무래도 북 아프리카에 가장 가까웠던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는 북아프리카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면 바로 침입할 수 있으니까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지금은 서유럽의 강호 중 하나로 인식되지만 8세기의 중세 때는 완전히 이슬람화 됩니다. 



스페인 알함브라의 나스르 궁전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스페인에 가면 이슬람양식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데, 기타곡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은 이슬람이 스페인을 점령하던 시기에 세운 이슬람식 궁전입니다. 

스페인까지 점령당했다는 것은 이슬람의 칼 끝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목까지 도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쿠란"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무서운 포교방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에 누군가 종교를 포교할 때 한 손으로 칼을 들이밀며 전도활동을 한다면 어떨까요. 이슬람에게 '전도'와 '정복'은 사실상 같은 말이었던 셈입니다. 중세인들 입장에서 이슬람의 '전도'는 실존하는 위협이었습니다.  


목욕탕의 노예들

유럽 사람들이 이슬람에 대해서 특히 공포스러워했던 것은 납치였습니다. 이슬람 사람들 중에는 기독교 마을을 습격해서 사람들을 납치하고는 노예로 팔아버리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리상 불신자 기독교인은 노예로 삼아도 별로 문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노예상인들은 귀족, 농노, 천인 구분 없이 기독교인이라면 모두 납치해서 중동 쪽으로 팔아넘겼습니다. 노예만큼 돈 되는 장사는 없으니까요. 근대의 유럽인들은 끔찍한 아프리카 노예사냥으로 악명 높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그들은 이슬람의 사냥감이었던 셈입니다. 

이슬람 노예사냥꾼들은 납치한 유럽인들 중에 귀족은 비싼 몸값을 받고 풀어주었고, 여자는 중동의 부자들에게 팔아넘겼으며, 남자들은 농장에 팔아서 큰 이익을 남겼습니다. 여자는 그나마 중동에 팔려가면 괴로워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지만, 남자들은 부상이라도 당해 쓸모가 없어지면 그냥 죽이기 일쑤였습니다. 이들은 노예로 팔려가기 전까지 '목욕장'이라고 불리는 공간에 묶여있었는데, 로마시절의 목욕탕 폐허를 임시 납치공간으로 활용했던 것입니다. 현대의 호러영화에서 살인마들은 유독 커다란 화장실 같은 곳에 사람을 납치해 놓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비슷한 그림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모습은 중세를 다룬 영화 '로빈후드'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 로빈 후드는 이슬람에 붙잡혀 있다가 탈출하는데, 묶여있던 장소가 목욕탕 같은 곳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에 있는 이슬람 침략 감시탑 일명 '사라센의 탑'

도망가야 한다

이 정도 되면 국가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중세의 봉건 영주들은 그럴만한 역량이 없었습니다. 자기들끼리 권력투쟁하기 바빴기 때문입니다. 이는 시스템상의 문제이기도 했는데 중세는 거대한 '국가'의 개념이 없던 시절입니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지방의 작은 영주에게 귀속되어 있었습니다. 현대로 비교하자면, 국적이 '대한민국'인 게 아니라 '남양주시', '평택시'같은 작은 시나 동 단위였던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여러 개로 갈라진 작은 세력은 하나의 거대한 세력이었던 이슬람을 막을 힘이 없습니다. 그들을 막으려면 국가단위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중세의 서민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방어했을까요? 그냥 도망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세의 마을 사람들은 등대 같은 높은 탑을 세워놓고 이슬람 노예 사냥꾼들의 침략을 감시했습니다. 이슬람 복장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면 마을에 알려서 모두 도망갔던 것이죠. 만약 감시자가 꾸벅 졸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끔찍한 상황이 전개됐습니다. 이슬람 노예 사냥꾼들은 마을에서 쓸만한 남자들과 어린 여자들을 모두 납치해서 마을을 초토화시켰습니다. 특히 해안가 마을이 가장 취약했다고 합니다. 이슬람 노예사냥꾼들 입장에서는 배를 타고 와서 마을을 털어먹고 돌아가면 간편했기 때문이죠. 육로는 아무래도 걷는데 시간이 걸리니까요. 그렇게 이슬람이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나면 마을에는 노인들만 살아남곤 했습니다. 이들은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린 마을에서 그저 살아남은 것으로 기뻐했어야 할까요. 



영주들에게 십자군을 명령하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 14세기 삽화

기독교의 역습

이것이 십자군 직전 유럽의 상황입니다. 아마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지난 400년간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증오와 뒤섞여 커다란 덩어리로 뭉쳐져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이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클레르몽에서 교황의 연설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열기로 순식간에 뜨거워졌던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지금껏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기독교인들에게 복수의 깃발을 꽂아준 것이죠. 

다시 1095년의 늦가을의 클레르몽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민중의 열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몇 명의 고위 성직자들과 귀족들이 교황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십자군에 동참할 것을 선서합니다. 연설할 당시에는 물론 귀족보다는 서민들이 더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었지만, 사실 교황이 바라는 것은 민중들의 선서라기보다는 영주들의 선서였습니다. 힘없는 농민들이 괭이나 낫을 들고 모여서 십자군 원정을 가봤자 이슬람의 훈련받은 군인 집단을 만나게 되면 도살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죠.

현장에서 바로 십자군의 참여를 선서한 귀족들도 있었지만, 공의회에 참석했던 다른 성직자들은 이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각 고국으로 돌아가 왕과 귀족들에게 클레르몽에서 있었던 소식을 전달했습니다. 이슬람의 위협은 왕과 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들도 곧 십자군에 동참할 뜻을 교황에게 전달합니다. 왕들은 본인들이 직접 나서지는 못했지만 정권의 2인자들을 보내서 전쟁에 동참하게 됩니다. 


"거룩한 전쟁Bellum sacrum"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십자군전쟁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렇게 역사에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종교적 목적의 거룩한 전쟁, 1차 십자군 원정이 시작됩니다. 교황은 십자군 원정대에게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 정복'입니다. 예루살렘은 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도시인데 지금 이슬람의 통치 아래 있으니 우리가 거룩한 전쟁을 통해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죠. 유럽의 왕과 영주들은 다음 해에 출발할 목표로 1년 동안 전쟁 준비를 시작합니다. 왕과 귀족들은 땅을 빌려주어 돈을 마련하기도 했고 가지고 있는 귀금속을 팔아서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진심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포위한 1차 십자군, 13세기 삽화


십자군의 예루살렘 정복

이듬해 1096년 8월, 서유럽의 제후들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집결합니다. 콘스탄티노플은 동쪽 도시 중에서는 이슬람의 세력이 아직 점령하지 못한 기독교인들의 마지노선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모인 십자군 원정대는 예루살렘으로 진격을 시작합니다. 이들 입장에서 보면 맨몸으로 낯선땅에 들어선 것이었기 때문에, 정복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십자군은 이슬람의 기습에 전멸할 뻔한 적도 있었고 모두 굶어 죽을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군 원정대는 3년 동안 천천히 전진하며 예루살렘으로 가는 경로에 있는 모든 이슬람의 도시들을 차례로 점령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결국 3년 간의 전쟁 끝에 1099년 7월, 십자군 원정대는 이슬람이 지난 수세기동안 점령하고 있었던 예루살렘을 드디어 정복합니다. 십자군들은 엎드려 눈물을 흘렸고 유럽의 민중들은 열광했습니다. 지금껏 자신들을 괴롭히던 이슬람 세력을 무찌르고, 신의 아들이 태어난 도시를 다시 기독교의 손으로 돌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십자군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3년간 이어진 1차 십자군의 점령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이슬람인들이 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루살렘은 신의 아들이 태어난 도시였지만, 신의 눈으로 봐도 끔찍할 만큼 도시 점령 과정에서 가장 가혹한 학살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초적 감정이 지배하던 중세에, 유럽사람들은 그것조차 정의가 구현된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1차 십자군은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하지만 정작 십자군을 창시했던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자신이 창시한 1차 십자군 원정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했다는 소식을 끝내 듣지 못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어떤 우연인지 예루살렘을 정복한 날짜로부터 정확히 2주 뒤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정보의 이동소식이 느렸기 때문에 2주 안에 예루살렘 정복의 소식이 교황청까지 도착하지 못했던 것이죠.

현대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사실 십자군 전쟁은 그 자체로 이상한 광경입니다. 아무리 기독교 입장에서 복수의 명분이 있었다고는 해도, 교황의 말 한마디에 유럽 열강의 모든 왕들과 귀족들이 일제히 움직인 것이니까요. 현대로 비교하면 어느 목사님이 각 나라의 대통령들을 불러 모아놓고는 '신께서 그것을 바라신다!'라고 다그친다고 한들 전쟁이 일어날까요? 그럴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세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교황의 말 한마디가 곧 신의 명령이 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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