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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의봄 Aug 16. 2022

결혼 생활의 기쁨과 슬픔(11화 - 김형욱)

당신의 결혼 생활은 안녕하신가요?





  “이거 우리 집 초인종 소리야? 자기가 나가 봐.”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이 둘을 재우고 잠이 들려던 찰나에 미지가 형욱을 흔들어 깨웠다.

  “응? 무슨 소리? 어? 정말 그러네? 나가볼게.”

  화상 인터폰 너머 낯선 두 남자가 형욱의 눈에 들어왔다. 형욱은 인터폰을 켰다.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잠깐 조사할 일이 있어서 그런데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아 네.”

  형욱이 문을 열려는 순간 미지가 나와 형욱의 손을 잡았다.

  “이 시간에 갑자기 남의 집에 와서 경찰이라고, 문 열라는 게 상식적이야? 따져 묻지도 않고 냉큼 문 열면 어떡해? 가만있어봐.”

  미지는 굳게 닫힌 현관문을 가운데 두고 문 너머에 있는 두 사람에게 무슨 경찰서 무슨 과 소속이며,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죄송하지만 이 시간에 영문도 모른 채 경찰이라는 분들께 문을 열어드릴 수 없어요. 1층 로비는 어떻게 통과하셨어요? 경비실에 방문 허락받고 들어오셨나요?”

  “아... 아니요. 주민 한 분이 들어올 때 따라 들어왔습니다.”

  미지는 경찰이라는 사람들을 향해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00 경찰서에 전화해 형사과에 박 00, 최 00이라는 경찰이 있는지 확인하고, 밤 열 시가 넘어 갑자기 민간 주택에 경찰이 들이닥쳐 문을 열어달라는 게 법과 절차에 맞는 행동이냐고 따져 물었다. 잠시 후 00 경찰서에서 문 너머에 있는 두 명의 경찰 중 한 명에게 전화를 한 것 같았다. 형욱과 미지는 문 너머의 두 사람이 경찰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제야 미지는 현관문을 열었다.

  ‘하여튼 깐깐해. 그냥 문 열고 대화했으면 벌써 끝났을 걸. 뭘 그렇게 따져 묻는 거야?’

  형욱은 속으로 미지를 욕하며 웃는 낯으로 경찰과 대면했다.








  “늦은 시간에 저희가 생각이 짧았네요. 여기 집에 사는 남자분이 또 계신가요?”

  “아뇨. 저밖에 없어요. 무슨 일이시죠?”

  “잠깐 저쪽으로 가서 얘기하시죠.”

  경찰은 현관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형욱을 데리고 갔다. 형욱은 십 분 정도 경찰과 대화를 나눈 후 집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기에 자는 사람 다 깨워서 이 난리야?”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오해가 있었더라. 장애인용 자전거가 없어졌는데 뭐 아무튼 나랑 상관없어.”

  “응? 장애인용 자전거? 자기랑 상관없는데 왜 자꾸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랬어?”

  “문 늦게 열어서 그랬지.”

  “그게 죄송할 일이야? 하여튼 신혼여행 때 알아봤어야 했어. 아무 일이나 다 죄송하대. 밖에서는 그렇게 아무한테나 죄송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한텐 왜 그래?”








  신혼여행 때 이야기를 하면 형욱도 얼굴이 붉어진다. 형욱은 미국 기업 한국 지사 차장이다. 영어 실력으로 취업했다고 미지에게 뻐긴 게 문제였다. 하와이 경찰이 형욱과 미지의 렌터카 옆으로 다가와 무서운 얼굴로 소리를 쳤다. 차를 세우라는 말로 알아듣고 형욱은 갓길로 갔다. 경찰도 형욱 뒤에 차를 세웠다. 영문도 모르고 차에서 내리려는 형욱을 경찰이 호통치며 저지했다. 창문을 내리자 경찰은 국제 면허증을 확인한 다음 계속해서 화를 내며 말했다. 형욱은 경찰에게 연신 ‘I'm sorry’라고 말했다. 미지는 경찰이 떠날 때 마지막으로 한 ‘have a nice honeymoon’이라는 말만 알아들었다.

  “경찰이 뭐라고 했어? 무슨 일이기에 계속 죄송하다고 말한 거야?”

  “모르겠어. 못 알아들었어.”

  “.......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죄송하다고 말한 거야?”

  “죄송하다고 말해야 갈 것 같아서.”

  “영어 잘하잖아? 어려운 말이었어?”

  “ ............... 저쪽 발음이 이상했나 봐. 하핫.”

  형욱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나중에 곰곰 생각해보니 실선인 도로에서 형욱이 차선을 변경했고, 마침 점선인 도로에서 차선을 변경하던 경찰차와 마주친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하마터면 경찰차와 부딪칠 뻔했던 것이다.








  밖에서는 쏘리 맨 인 형욱이 집에서는 논쟁 맨이 된 데에는 미지의 잘못도 있었다.(‘있다’고 형욱은 확신한다)

  바깥사람들은 자신이 먼저 ‘죄송하다’고 말하면 더 이상 일을 키우지 않는다. 잠깐만 자존심을 굽히면 일이 해결되는 편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았다. 미지는 무엇이든 명확하게 시비를 따지는 편이다. 반드시 따져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형욱의 입장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라고 생각한  일도 꽤 있었다. 신혼여행 때 하와이 경찰에게 쏘리를 연발한 후 형욱은 신혼여행이 끝날 때까지 미지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형욱도 미지와 대화할 때 시비를 가리게 되었다.


  기실 형욱에게는 날카로운 면모가 숨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하며 비평가적 기질을 길러왔다. 대학 때 독서 토론 동아리 회장을 맡았다. 데미안을 읽고 '아브락사스'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논쟁이 붙었다. 그 일로 형욱은 회장직을 내려놓았고, 논쟁이 붙은 친구와 의절했다. 이후 형욱은 사람들과 논쟁을 피하려 먼저 ‘죄송하다’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형욱은 미지가 자신의 심연에 숨어있던 논쟁 기질을 끌어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신혼여행 때 얘기가 왜 또 나와? 별일 아닌 거 확인했으면 됐지. 또 잘잘못을 따져야 돼?”

  형욱은 발끈했다.

  “애들 다 자고 있는 밤이야. 목소리 낮춰. 우리 둘만 사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애들 부모야. 지켜야 될 사람이 있다고. 함부로 문 열었다가 나쁜 사람이면 어쩔 거야? 왜 그렇게 생각이 짧아?”

  “내가 생각이 짧다고? 너 일 년에 책 한 권은 읽어? 읽으면서 그런 말 해. 나 대학 때 독서토론 동아리 회장이었어. 너 니체가 누군지는 알아? 니체의 말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생각하며 대학 시절을 보낸 사람한테 뭐? 생각이 짧아? 한 번 끝까지 따지고 얘기해 봐?”

  형욱의 어깨가 호흡에 맞춰 들썩였다.

  “말을 말자. 내가 차라리 벽을 보고 말하는 게 낫지.”






  두 사람의 다툼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형욱이 믿고 의지하는 직장 상사이자 인생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다.

  “우리 회사 복지 서비스에 부부 상담도 있어. 상담 한 번 받아보는 거 어때? 나도 예전에 와이프랑 한창 많이 다툴 때 받았는데 도움이 됐어. 둘이서 지지고 볶아봐야 답 안 나와. 제삼자의 객관적인 말 한마디가 효과적일 수도 있어.”

  형욱은 미지에게 선배 말을 전했다. 미지도 부부 상담을 받는 데 동의했다.







  상담사는 ‘어떻게 오셨냐’라는 질문부터 시작했다.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할 때 형욱의 머리에 아빠 때문에 참고 살았던 엄마 모습이 떠올랐다. 형욱 눈에 비친 엄마는 늘 참는 얼굴이었다. ‘미안하다’ 한 마디만 하면 될 것 같은데, 형욱의 아빠는 엄마에게 한 번도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직장에서 자신은 어떤 모습인가요?”

  지난주는 살아온 이야기고, 이번 주는 직장이 주제인 것 같았다.

  “저는 외부 출장이 많아요. 미국으로 전자제품을 수출하려면 저희 회사 인증 마크를 받아야 하는데, 저희 회사 인증 마크가 필요한 회사를 만나 인증 시험 치고 인증서가 나오게 해주는 일이에요. 만나는 회사 직원은 인증 마크를 받아야 하고, 저는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가 편한 편이에요. 회사에서 제 모습은 음... 잘 웃고 누구와도 적을 만들지 않는 평화주의자? 뭐 그런 것 같아요.”

  “방미지 씨는요?”

  “저는 의료기기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요. 인허가나 심사 관련 자료를 빠르고 정확하게 확인하는 게 핵심이에요. 심사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자료 보완이 뜨면 낭패거든요. 직장에서 저는 ‘신속, 정확’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통과하지 못했을 때에는 상대방 업무 담당자에게 왜냐고 따져 묻는 일도 많고요. 그래서 일을 할 때 꽤 예민한 편이에요.”

  상담을 받으며 형욱은 미지의 직장 생활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 그날은 어땠는지 물어보던 때가 떠올랐다.

  ‘회사에서 깐깐한 업무를 십 년 이상 맡고 있으니 집에 와서도 그 모습이 연속될 수 있겠구나. 내가 조금 이해해줬어야 했는데...’


  상담 4주 차 때 상담사는 비로소 부부 문제에 접근하는 것 같았다.

  “미지 씨, 내가 이 사람과 결혼 잘했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

  “음....”

  미지는 한참 머리를 굴리며 기억을 더듬는 것 같았다. 형욱은 재판 선고를 기다리는 피고처럼 미지 입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느낀 적이 없다고 말하면 어떡하지? 그럼 우린 앞으로 어떻게 될까?’

  형욱이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는 순간 미지가 입을 열었다.

  “저희 애 둘과, 조카 둘까지, 아이 넷을 양쪽에 끼고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았을 때가 떠올라요. 이 사람, 아이들한테 참 자상한 아빠예요. 집 정리와 청소도 깔끔하게 해요. 그 면은 제가 좀 부족한데 남편이 하는 걸 보면서 저도 남편처럼 해보려고 노력해요. 외국계 회사에 다녀서 그런지 주말에 출근하는 일이 일절 없어요. 빨간 날은 당연히 쉬고요. 퇴근 시간도 정확하고. 그래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많은 편이에요. 또.....”

  형욱은 미지가 자신의 노력을 몰라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매사 따지고 들며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린다고 여겼다. 사람은 무엇보다 사랑과 인정에 목말라한다. 미지는 형욱의 노력을 다 알고 있었다. 형욱의 마음에 무지개가 떴다.

  “형욱 씨는 언제 결혼을 잘했다고 느끼세요?”

  “저는... 솔직히 현실적인 면이 먼저 떠오르네요. 안정적인 맞벌이 수입이 있어서 좋고, 아이들이 착하고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 것도 감사해요. 아내도 저도 유연 근무가 가능한 직장이라 도와주는 손길 없이도 둘이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어서 좋고요. 운동할 시간을 충분히 허락해주는 것도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다음 상담은 몇 일로 예약할까요?”

  형욱은 잠시 미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 집에 가서 아내와 얘기 좀 나누고 전화드릴게요.”

  “네. 그렇게 하세요.”

  두 사람은 차로 돌아왔다. 형욱의 마음 같아서는 오붓하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이 둘을 미지의 사촌 언니에게 맡기고 온 토요일 오전이라 마음이 급했다.

  “자기야, 미안해. 내가 너무 직장에서 일할 때처럼 자기한테 따지고 든 것 같아. 습관이 무섭다. 앞으로 자제하도록 노력할게.”

  “앗, 그거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상담받으며 알게 됐어. 어릴 때 아빠 모습 보며 나는 절대 저런 남편이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내가 아빠와 똑같이 하고 있었더라. 아빠가 엄마한테 그랬거든.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했어. 내가 볼 땐 아빠 잘못인데도 자식들 앞에서 싸우기 싫은 엄마가 항상 먼저 미안하다고 했어. 아빠가 정말 못나 보였어. 그런데 내가 그러고 있었나 봐. 밖에 나가서는 고개도 잘 숙이고 웃으면서 미안하다는 말도 잘하면서 정작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어. 미안해. 이제 너한테도 쏘리 맨 할게.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이제 우리 상담 그만 받자. 내가 더 잘할게.”

  미지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그래? 아.. 그렇게 해주면 너무 고맙지. 다음에 형부랑 언니도 우리한테 애들 맡기도 데이트 한 번 해. 끊어.”

  “무슨 말이야?”

  “언니가 형부랑 애들 데리고 피자 먹으러 나왔는데, 피자가게 옆에 실내 놀이터가 있대. 애들이 거기 가고 싶다고 난리라 피자 잘 먹으면 실내 놀이터에서 놀게 해 주기로 약속했대. 밥 다 먹고 애들 거기서 놀고 나면 몇 시간 지날 테니 그때까지 우리는 데이트하라는데?”

  형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 오랜만에 연애할 때 가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갈까?”

  “그래. 좋아.”

  형욱은 그때 그 시절 음악을 틀었다.

  “동요를 듣지 않고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다니. 이게 얼마만이야?”

  형욱은 이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둠칫 둠칫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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