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제에서 미래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파란 눈에 금발 머리를 가진 키가 큰 네덜란드 남자였다

by 애플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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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남편인 L군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나의 '초심자의 운 '

그리고 '초심자라서 들뜬 마음' 덕분이었다.


과거 나는 영화제 참석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를 방문했었는데

유럽을 방문하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션 영화제.

그곳에서 이국적인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보자

너무 신나서 어설픈 영어를 써가며 캐나다, 인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들었고 그 결과 그 친구들과 영화제 기간 내내 함께 몰려다니며 좋은 추억들을 쌓았었다.

L 군은 함께 몰려다녔던 외국 친구들 중 한 네덜란드 감독의 친구였다.

전형적인 네덜란드 남자답게 키가 190이 넘고 날씬했고 금발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남자였다.


우리는 그 친구의 소개로 명함을 주고받은 후 옆자리에 앉아 함께 영화를 봤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헤어졌다.

그뿐이었다.

그 이후 영화제에서 L 군을 볼 순 없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동선이 서로 달랐었다)

나는 영화제가 끝난 후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한 달 정도 혼자 배낭여행한 후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대학원 입학과 졸업,

야근이 일상이었던 첫 직장생활을 하며

즐거웠던 영화제의 추억은 한 여름밤의 잠시 반짝였던 꿈처럼 내 기억 저 멀리 점점 잊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직장에서 회의를 마친 후 잔뜩 스트레스를 받아 열이 오른 얼굴을

잠시 화장실에서 식히고 있던 중이었다.


띵동-

핸드폰에 누군가가 페북 메시지를 보냈다는 알림이 왔다.

'누구지?'


"나 이번 여름에 서울에 갈 건데 기회가 된다면 오랜만에 잠깐이라도 만날까?"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영어 텍스트였고 보낸 사람은 낯선 외국인 이름을 가진 외국인이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프로필 사진 속 얼굴을 보니 기억이 났다.

프랑스 영화제에서 잠깐 만난 우리는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었고 한국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L군은 명함에 적힌 내 이메일 주소로 페북 친구 신청을 해서 승낙했었다.

하지만 그 후로 따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없던... 그는 그저 내 페북 친구 1인일 뿐이었다.


'아... 이 사람은... 영화제에서 아주 잠깐 이야기했었던...
그리고 일 년 전에도 내게 페북 메시지를 보냈었는데 내가 읽기만 하고
무시했었던 그 외국인이잖아...

일 년 전에 L 군은 내게 페북 메시지로 한국에 갈 예정인데 잠깐 만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봤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가난했던 대학원 생활을 가능한 한 빨리 졸업하기 위해 조교일을 하며 졸업 작품을 만드는 둥 안간힘을 썼을 때였기 때문에 예전 영화제에서 잠깐 만났던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던) 외국인 친구를 만나

과거의 추억을 되살릴만한 여유가 전혀 없었다.

또 영어도 안 쓴 지 오래되어서 외국인을 만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었고

그런 하루를 낸다는 것 자체가 내겐 사치였었다.

그래서 페북 메시지를 읽기만 하고 무시했었는데....

일 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메시지를 받았다.


'이 메시지도 읽고 무시한다면 너무 한 거겠지...? 휴... 어쩔 수 없이 이번엔 답변해야겠다.'


"안녕? 잘 지냈어? 저번 메시지에는 답변 못 해서 미안해. 바빠서 깜빡했어.
이번에 오면 잠깐이라도 보자.
주말에 하루 내가 서울 관광 가이드해줄게."
"그래 좋아:)"

답장 메시지는 빨리 왔다.

참고로 내 흐릿한 기억에 의하면 영화제에서 만났던 L은 전혀 내 타입이 아니었다.

(나중에 결혼한 뒤에 물어보니 나 역시도 L의 타입이 전혀 아니었다고 했다.

그냥 예전 일본 교환학생 시기에 알게 된 한국 친구들을 만나러 한국은 오게 되었고 혹시 자신이 더 알고 있는 한국인이 없나 해서 페북을 뒤져보다가 연락했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보다는 상냥한 한국인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

한국에 놀러 오는 (옛) 외국인 지인에게

하루정도 봉사활동 겸 서울 안내를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매일매일 쳇바퀴 돌듯 똑같고 답답한 일상에 하루정도 변화를 주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몇 주 뒤 주말에 인사동에서 만났다.

몇 년 만에 안국역 지하철 역 3번 출구에서 만난

L은 내 기억 속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 기억보다 훨씬 멋졌다.

(L도 오랜만에 만난 내가 훨씬 멋있어졌다고 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날 주말 아침 눈부신 햇살 속에

반짝거리며 빛나던 L의 금발 머리와

나를 보고 반갑게 웃던 보조개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L 이 네덜란드로 돌아간 후

우리는 자주 연락을 했다.

주로 스카이프로 화상 대화를 많이 했는데

수많은 대화들을 통해 서로의 몰랐던 점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가 점점 더 소중해졌다.



그러던 중

직장을 다니던 나는 더 나이 먹기 전에

미국으로 석사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다.

다행히도 원하던 미국 학교에 합격을 해서

꿈이냐.. 사랑이냐... 또 돈문제 등등 를 머리 터지게 고민하다가

스카이프로 L에게 우리 그만 연락하자고.

나 미국에 공부하러 갈 거니까...

너도 이제 네덜란드에서 다른 사람 만나라고..

말하면서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펑펑 울었다.


그러자 L은 자기가 네덜란드에서 잘 다니던 직장을 다 때려치우고서라도 미국까지 날 따라와 돈을 벌어

공부하는 나를 외조해주겠다고 말했다.

내가 듣다가 어이가 없어서 울다가 웃으며 물어봤다.

"네가 미국에서 직업 못 구하면 어떡하려고 그 먼 곳까지 나를 따라와.

미국 뉴욕에서 직업 구하기가 쉬운 줄 알아?"


"물론 쉽진 않겠지.

그래도 너 혼자 낯선 곳에서 공부랑 일이랑 병행하기 많이 힘들 거야.

내가 그걸 어떻게 보고만 있어.

내가 가서 공원 청소부를 하더라도 돈을 벌어 옆에서 널 지원해줄게.

너는 공부에만 집중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나와 평생 함께할 사람이구나...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난 이런 사람을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았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고

진지한 사랑은 감히 그것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이 날 남자 친구를 보며 깨달았다.

우리가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얼마 안 되어 네덜란드를 방문한 나는 L에게서 프러포즈를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다음 해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그다음 해에는 네덜란드에서 결혼식을 한번 더 올렸다.

그리고

나는 유학은 취소한 채

미국이 아닌

네덜란드로 왔다.


사랑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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