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 센터에는 바비가 있다. 바비처럼 곧고 긴 팔다리와 작은 얼굴을 가진, 근육으로 가득 찬 허벅지와 잔뜩 힘이 들어간 엉덩이, 그리고 하나도 어렵지 않게 동작을 해내는 비인간 바비족들이 있다. 각 센터에 한 명정도는 존재하는 그들을 복도 끝에서 발견하면 작은 원 같은 얼굴과 9등신은 족히 될 것 같은 비현실적인 몸에 놀라곤 한다. 이들은 많은 수강생을 몰고 다녀서 수강신청은 항상 아이돌 티켓팅 수준이다.
바비와 바비 외 강사님의 실력에 차이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확실히 그들의 몸이 그들의 티칭기술을 대변한다고 생각되는 것 같다. 세 군데의 센터를 다녀본 결과, 바비족 강사의 강좌는 항상 일 순위 마감이었기 때문이다. 바비강사와 인간계 강사, 그리고 아줌마 수강생 무리들로 필라테스 센터는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다.
집에서 센터까지 가려면 15분 정도를 걸어야 했다. 앞에서 걸어가는 쫄쫄이 레깅스를 입은 사람을 발견하고 동지애를 느끼며 반가운 마음으로 걸어갔다. 그때 노년의 부부가 그 뒤를 따라가면서 불편한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할머니가 만면을 일그러뜨리며 턱짓으로 그의 옷차림을 보라고 할아버지를 쿡쿡 찌르는 것이었다. 한여름이었고 아침 10시라고 해도 이미 햇살이 뜨거워 운동복 위에 겉옷을 걸치는 일이 힘든 날씨였다. 겨우 얇은 카디건으로 엉덩이만 가리고 걷고 있던 삐사감은 쇼윈도에 비친 자기 모습을 단속하게 되었다. 그렇게까지 보기 흉할까? 민소매에 거친 헤어도 모두 노출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구먼.…..
필라테스는 2016년 매트에서 소도구를 이용하는 운동으로 시작하였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강좌였는데 여기에서 제1대 바비를 만나게 되었다. 영화 속 바비보다는 훨씬 근육이 잡힌 당당한 몸에 아줌마 수강생들과 농담도 잘하는 활달한 성격이었다. 소도구에는 링, 짐볼, 밴드, 폼롤러등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주로 코어근육을 단련하기 위한 운동이 대부분이다. 수업의 도입 부분은 스트레칭이다. 폼롤러를 굴려서 몸의 구석구석을 마사지하면서 근육을 풀어주는 시간인데 생각보다 굳은 근육이 많아서 생각지도 않은 부분에서 의외의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본격적인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쉬운 동작을 8번에서 10번 반복한 후, 곧이어 심화동작을 몇 개 더 연결하는 것이 보통 하나의 구성이다. 난이도를 올려가며 동작을 완성해 나가는 순간에 중도이탈자가 발생하고 이를 악물고 끝까지 해내는 사람은 허벅지와 엉덩이, 팔뚝이 터질 것만 같다고 느낀다. 그중 헌드레드는 매트필라테스의 백미가 아닐까.
손바닥이 매트바닥을 향하게 골반 쪽으로 끌어내리고 날개뼈가 뜰 정도로 상체를 들어 올린 상태에서 다리는 테이블 탑(쉬운 난이도)을 유지한다. 이것이 헌드레드의 준비 자세이다. 시작부터 배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자세를 취하고 호흡을 100번 하면서 손바닥을 팔랑거리며 위아래로 공기를 누르듯이 움직인다. 하나 둘 셋넷……여덟 아홉 열, 후후후. 이 과정을 열 번 반복해야 끝나는 헌드레드. 50번을 넘기고부터 강사는 거짓말을 시작한다.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말은 쉽지만, 바닥에서 위 등을 띄운 상태에서 백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 먼 미래 같다.
백의민족답게 백 회 이용권을 세 번 끊어가며 4년째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최근 의도치 않은 잦은 이사로 가까운 센터로 옮길 때마다 이 운동이 처음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허, 기가 막혀서… 이래 봬도 4년 차인데.
잠깐만 쉬어도 몸은 원래대로 굳어서 아는 동작도 능숙하게 따라잡지 못하고 이번 생에 처음이라는 느낌을 줬나 보다. 항상 초심을 잃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운동이다.
근육은 좀처럼 생기지 않고 여전히 팔뚝은 부챗살처럼 찰랑거리며 다른 곳도 말랑콩떡 그 자체이다. 바비강사의 수업을 들어도 결코 바비가 될 수 없지만, 수업시간마다 코어에 힘을 주라며 귓전을 때리던 강사의 말은 배에 희미한 세로선(과식하면 없어지는)을 만들었다. 항상 앞으로 기울어져있던 상체도 수직을 찾아가고 있다. 부단히 지속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운동치로서 만족한다.
사진출처 : https://unsplash.com/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