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시노미술대학, 다녀오다
도쿄의 아침이 밝았다
단잠에 늦잠까지 잤다
9시가 넘어서야 숙소를 나섰고
첫 목적지는 무사시노미술대학
긴자선, 도자이선, 세이부신주쿠선으로 환승
고다이라역 하차, 버스로 다시 환승
오가와 산사로역 하차, 5분 남짓 도보
1시간 30분 걸려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변이 너무 고요하잖아
대학가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후문 쪽 묘지공원
오래된 공원인 듯 보였다
문득 공원 앞을 오갔을 지모를
쇼와 시대 유학생 이중섭과 장욱진
그리고 권진규 화백이 떠올랐다
시대적 아픔 속에서 예술에 대한 고민을 안고
무수히 회의하며 창작해 나갔을 모습이 어른거렸다
무사시노 캠퍼스 걷는 동안
미대 오빠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울컥한 채, 추억을 반추하노라니
지나가는 남학생이 이중섭으로 보였다
야외 조각 작업실에서 권진규가 환원되었다
벚꽃 휘날리는 강의실로 장욱진이 얼핏 지나갔다
그들 모두 2025년 풋풋한 젊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부서질 듯 희고 커다란 벚꽃이 바람에 나풀거렸다
겹벚꽃 만개한 강의실 앞으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벚꽃 잎 향해 뜀박질하는 학생들 사이로 가는 빗방울 날리고
나부끼는 벚꽃 잎 사이로 학생들 웃음소리가 부서졌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지하로 연결된 캠퍼스 계단 따라
반대편 캠퍼스로 나오니 한 폭의 그림 같은 전경이 펼쳐졌다
바람에 날리는 벚꽃잔치는 어김없이 젊음 사이로 휘날렸고
바람이 가볍게, 혹은 거칠게 번복하면 경관도 강약으로 변신했다
흐르다가 퍼지다가 다시 화합하면서 봄의 교향곡이 울려 퍼졌다
두 손 가득 꽃잎 모아 쥔 남학생이 연인의 머리 위로 날렸다
순간을 포착한 카메라맨은 아름다운 현장 놓칠세라 찍어댔다
지금 서 있는 곳, 무사시노미술대학 캠퍼스 벚꽃 명소가 틀림없다
사촌동생 연상케 했던 낯선 동상 앞에 멈춰 섰어
미술학교 이사장 다나카 세이지의 동상이야
재정적 지원 끊긴 권진규의 사정 알고 학비 대신 작품을 사 준 사람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 풍경이 순간 떠올랐어
마음으로 인사했어 고마워요, 다나카 세이지
벚꽃 배경으로 블랙 라이브러리가 드러났다
재학생들과 건축 관련 전공자에게만 열린 공간
2층 계단으로 향하는 여학생을 쫓아 입장했다
실내 입장은 제한 됐으나 유리문을 통해 실내를 둘러보았다
이중섭의 소 형상인가? 싶었는데 말이었다
말을 배경으로 스터디룸이 텅 빈 채 드러났다
무사시노 뮤지엄은 아쉽게도 차기 전시 준비 중이었다
발길 돌려 대학식당에서 은은한 녹차와 전갱이 튀김 정식을 먹었다
야외 벚꽃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편의점 커피를 마셨다
바스러질 듯 해맑은 여학생 웃음소리 하얀 슈가처럼 반짝거렸다
젊어지려면 영한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돼
무사시노 미술대학 캠퍼스에서 마음만큼은 젊음이 부럽지 않더라
배차시간에 맞춰 빠르게 움직였다
JR 라인으로 이동한 장소는 도쿄 신국제 미술관
100년 전 탄생한 현대적인 주택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고전적인 가구와 조명기구
원하면 전시된 모든 의자에 앉아볼 수 있었다
한 번 앉으면 일어서고 싶지 않을 만큼 편했다
의자도 명작이 될 수 있음을 체험으로 알게 된 날
무심코 접하는 명작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자문자답하려고 3층 라이브러리로 이동했다
인테리어 잡지 한 권 빼어 들고 청 넓은 자리 착석
책 보다 멍 때리다 반복하며
야외 중정 바라보던 그 시간이 곧 휴식
자문자답은 멍과 멍 사이에 끼워 둔 채
어쩌면 휴식이 곧 해답일 수 있을지도
그게 무심코 접한 명작이 주는 선물일지도
시부야역에서 8년 만에 하치와 재회했다
하치의 인기는 세월이 갈수록 더했다
관광객은 하치와 기념 촬영하려고 긴 행렬 마다치 않지!
시부야 거리 걷다가 돌연 긴자행 전철에 몸을 실었어
다자이 오사무의 단골 술집 루팡으로 향했다
그가 앉았던 좌석은 이미 헤밍웨이 비슷한 놈이 차지했고
그 옆 좌석을 안내받고 준엄하게 앉아 마티니를 주문했지
마티니 한 잔이 온몸에 퍼지자 루팡의 기운과 섞여 들었어
요조 닮은 다자이 오사무를 만난 듯 기꺼웠던 순간이야
적당히 취한 채로 무거운 루팡 철문을 밀치고 나왔어
가혹한 4월 바람이 온몸을 때렸지, 취기 날리기에 적당한 바람이었어
긴자 밤거린 알코올로 달아오른 감각을 아슬아슬하게 건드렸어
불현듯 그리움이 몰려왔지, 술 한 잔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일지, 뭐야
밤거린 더 서늘해졌고 그래서 내 어깨를 감싸줄 42년 지기 룸메가 그리웠어
그날 밤 룸메에게 어제보다 조금 더 달콤한 멘트로 굿 나이트 인사하고 숙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