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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강인성 Oct 22. 2023

철학을 한다는 건

시작하기 전에

이제 3번 문장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3. 갑돌이는 현재 철학과에서 과학철학을 배우는 중이다. 


 철학적 질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면 철학이 뭔지는 쉽습니다. 궁극의 철학적 질문은 세 가지였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세계란 무엇인가. 나와 세계는 어떤 관계인가. 즉 철학은 이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학문입니다.

제육볶음과 돈가스를 두고 철학적 질문을 떠올리던 갑돌이가 ceo직을 그만두고 철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하며 세 가지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합니다. 부푼 마음을 가지고 수강신청을 하려 하는 갑돌이. 강의 목록을 봐볼까요? 과학철학. 정치철학. 언어철학. 심리철학 등등등. 뭔 놈의 철학이 이렇게 많은지 갑돌이는 당황합니다. 뭘 들어야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만약 갑돌이가 철학과 수업을 모두 듣고 졸업하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게 될까요? 

제 대답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입니다. 맞다는 입장부터 봐보죠. 철학에서 다루는 모든 질문은 궁극의 세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세 가지 궁극의 질문을 알기 위해서 그 아래 있는 하위 질문을 연구하는 거죠. 그러한 점에서는 맞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궁극의 세 질문은 너무 거대합니다. 아무리 하위질문에 답을 찾아도 결코 궁극의 질문의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부분의 합은 언제나 전체보다 작을 수밖에 없어요.  궁극의 세 질문은 결국 아무 질문도 아닙니다. 하위질문을 만들어내는 계기 정도입니다.

철학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철학은 없다. 철학들이 있을 뿐.”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궁극의 세 질문에 답하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그 세 질문은 너무 거대하기에 분명한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답 없는 질문을 찾아내는 건 학문이 할 일이 아니죠. 우리가 답을 찾을 수 있는 건 궁극의 질문 아래에 있는 질문 들입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철학’들’이 연구됩니다. 갑돌이가 철학과에 들어가 배울 과학철학, 정치철학, 언어철학, 심리철학 등은 그런 철학들 중 하나인 거죠. 결국 철학을 한다는 건 철학들을 공부한다는 뜻입니다. 철학들을 공부한다는 건 현실 너머에 있는 나와 세계,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개별적인 질문의 답을 찾아간단 뜻이고요.


- 답을 찾는 방법

 그렇다면 개별적인 질문들의 답은 어떻게 찾아갈까요?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일련의 과정 속에 답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지금까지의 글을 천천히 밟아나가 볼까요? 우선 철학과를 다니면 듣게 되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해 말해 봤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우스갯소리이니 넘어가고요.(철학관을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철학과 철학관과의 상관관계가 아예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 번째 질문인 “그거 해서 뭐 먹고사냐?”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거, 즉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알아보려 했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세 가지 문장에서 철학이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살펴보았죠. 

첫 번째는 “김갑돌 ceo의 경영철학은 훌륭하다.”입니다. 이 문장에서의 철학은 다양한 삶의 태도를 담는 개념으로서 의미 있고 유용하지만 사실이 될 수는 없음을 밝혔습니다.

두 번째는 “갑돌이는 문득 자유의지란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떠올렸다.”입니다. 이 문장을 통해 철학적 질문과 철학적이지 않은 질문의 경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현실너머의 나, 세계,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바로 철학적 질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갑돌이는 철학과에서 과학철학을 배운다”입니다. 이 문장에서의 철학은 궁극의 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철학이 아닌, 하위질문들에 답을 찾는 학문으로서의 개별 철학들임을 밝혔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철학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철학”이라는 개념을 던지고, 쪼개고, 굴리며 옆으로도 보고 위로도 보고 아래로도 봤죠. 그 결과 “철학’이라는 단어 안에 무려 세 가지 의미나 있었음을 알아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철학이라는 단어를 잘 못쓰며 오해하고 있었나를 알 수 있었죠. 궁극의 세 질문 아래에 있는 질문들은 모두 이러한 형태입니다.


“x란 무엇인가?” 


사실 여러 형태가 있기는 합니다만, 웬만하면 억지로 끼워 맞춰서 “x란 무엇인가?”형태로 바꿀 수 있으니 일단은 넘어갑시다. 만약 x가 사물이라면 관찰하고 실험해서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커피란 무엇인가?”라면 커피의 맛과 감촉, 색을 관찰하면 되죠. 혹은 그 안의 화학분자구조를 밝혀내던지요. 커피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철학이 관심 있는 x는 좀 다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의식. 영혼. 신. 아름다움. 정의. 올바름. 죽음. 본질. 사실과 거짓 등등등. 또 이런 예도 있습니다. 과학. 예술. 정치. 언어. 수학. 이념. 논리 등등등. 어떤가요. 무언가 상당히 중요해 보이지만 막상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당연히 그게 뭔지 알 것 같지만 막상 설명하려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분명히 있는데 또 확실하게 있다고 말하기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없다 하는 것도 무리가 있는. 분명히 의미는 있지만 형태는 없는. 분명히 사물 안에 들어있지만 사물과 구분되는. 철학은 그러한 x들에 관심이 있습니다.

철학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주 멋지게 표현한 말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교 학부생 시절 과학철학 수업에서 교수님께 들은 말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인하대학교 철학과 고인석 교수님께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그때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말을 이렇게 써먹는군요. 아무튼. 교수님은 수업 첫날 저희에게 이 책의 처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철학이란 뭘까? 철학을 한다는 건 뭘까?”

학부생 나부랭이가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철학과를 다니며 그러한 질문을 무수히 많이 받았기 때문에 기회라고 생각했죠. 교수님의 답을 잘 기억해 두었다 누가 철학이 뭐냐고 물으면 써먹어야겠다고요. 몇 명의 학생들이 진리를 탐구한다, 만학의 아버지다, 과학이 알 수 없는 걸 알려고 하는 학문이다 등 뻔한 답들을 말했고 교수님은 그런 대답들 하나하나에도 열정적으로 반박하며 답을 해주셨습니다. 강의실은 금방 조용해졌고 얼타는 저희를 보며 씩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철학은 개념을 저글링 하는 학문이란다!”


저글링. 저는 저글링이라는 표현에 확 꽂혀버렸습니다. 개념을 저글링 한다는 표현이 너무나 쿨하고 스마트해 보였죠. 철학을 지루하고 딱딱한 학문에서 유쾌하고 즐거운 학문으로 바뀌는 기분이 들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 당시에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철학을 놓지 않고 공부하다 보니 어느덧 저도 개념을 저글링 하고 있더군요. 교수님의 저 표현이 얼마나 적절하고 위트 있는 표현인지 알게 되었죠. 

제가 여러분에게 소개할 철학은 여러분을 잘 살게 만들 철학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각자 알아서 잘 사실 거라 믿습니다. 또한 “나는 누구인가. 세계란 무엇인가. 나와 세계는 어떤 관계인가.”라는 궁극의 질문에 답하는 철학도 아닙니다. 물론 철학을 하며 여러분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답을 너무 믿지는 마세요. 앞으로 보시면 아시겠지만, 철학은 언제나 그 답을 깨부수어가는 과정이거든요.

제가 소개할 철학은 개념을 저글링 하는 철학입니다. 도대체 그 저글링이 뭐냐고요? 교수님께서 쓰신 저글링의 의미는 좀 더 확장된 의미입니다. 무언가를 가지고 노는 행위 전체가 바로 저글링입니다. 그렇다면 개념을 가지고 노는 게 철학인 셈인데, 도대체 개념을 가지고 어떻게 논다는 걸까요. 

놀랍게도 제가 지금까지 한 게 바로 저글링입니다. ‘철학’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렇게나 재밌게 가지고 놀았죠. 철학이 뭔지 알기 위해 철학이라는 개념을 던지고 쪼개고 분해해서 앞으로도 보고 뒤로도 보고 옆으로도 봤습니다. 그러면서 사실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갔죠. 이 일련의 과정들이 전부 저글링이고, 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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