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저의 드림보드 속 그 집인 '섬집 오후'에 가면 꼭 하고 싶었던 일이 있어요. 이럴 땐 INFP 유형인 저도 꿈을 구체적으로 꿉니다. 육감적이고 직관적인 N 성향이 강해서 막연하게 생각하고, 상상할 때도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디테일하게 이런 건 꼭 하고 싶다는 디테일도 생겨요. 이 집에 하룻밤 머물며 경험하고 싶었던 일은요. 바로 앞에 잔잔한 바다가 보이는 통창 앞 책상 앉기였어요. 늘 저곳을 동경했죠.
작가의 서재처럼 왠지 저곳에 앉으면 글도 잘 써질 것 같고, 영감이 팍팍 떠오를 것 같지 않나요. 매일 보면 감흥이 떨어질지 모르지만요.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앉고 싶었지만, 참았다가 맨 마지막에 느낌 고이 간직하고 싶어 짐까지 다 풀고 서재로 향했어요. 상상으로만 앉아보던 이곳에 드디어 의자를 살살 들어 뒤로 빼고 조심조심 앉았어요. 아, 역시나, 앞에 검은 바위와 바다가 바로 코앞에 있다니, 무아지경이 따로 없어요. 마치 바다 위 떠다니는 배 속에서 바라보는 듯, 황홀하더라고요. 여기에 앉아서 오래오래 있고 싶었어요.
밤에는 딸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시간 동안 일을 했어요. 여행 와서도 일이라니 미안했지만, 각자의 시간도 필요하죠. 사춘기라 저에게 바리게이트를 치면 서운하면서도 이럴 때 이해해 주니 고마워요. 고마운 마음 꼭 표현해주고요.
디지털 노마드처럼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느껴보고 싶었어요. 마침, 밤 10시 온라인 미니강의가 있어서 작정하고 이 책상에서 진행했어요. 살짝 걱정했는데, 바닷가 앞이라도 온라인 끊김 없이 아주 잘 돼요. 여행하며 일하기. 시스템을 만들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새벽에도 작정하고 일찍 일어났어요. 꿈꾸던 로망들 폭발했네요. 한 번도 내려보지 않았던 커피도 내려보고, 깜깜했던 새벽부터 동이 터서 밝아질 때까지 글을 썼어요. 제주 맞다고 알려주는 듯 바람도 세게 불어주네요. 커피 향기랑 바로 앞 갈대의 흔들리는 바람소리, 바다의 작은 움직임들. 이 순간, 세포 하나하나들에 저장했어요. 지금도 그곳에 앉아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느긋한 아침까지도 꿈꿨지만, 딸의 소원 이루러 가야 하다 보니, 일찍 나오게 됐어요. 아침은 스피드 하게 짜장라면 한 접시 만찬으로 딸과 이곳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어요. 아침에 작가의 시간 보내며 여유 부렸다가 출발하기 전에 부랴부랴 움직였네요. 융통적인 인식형의 P 성향이 이럴 때는 조금만 계획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시간 분배만 잘하면 딱이겠는데 말이죠. 급히 정리하고, 마지막 점검하는데 딸이 방명록에 글을 써놨더라고요.
'일박이었지만 경치도 좋고, 고양이도 좋았어요!'
아, 짧은 감동과 뿌듯함을 느끼며, 1분이 아쉽지만 저도 발자취를 남겼죠. 사춘기 딸도 저절로 방명록 글 쓰게 만드는 섬집 오후, INFP 엄마와 ENFP 딸에게 완벽한 충전이었어요. 서로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들어주며 만족할 수 있는 시간.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