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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Jan 28. 2022

15년 만에 엄마, 게스트하우스 가다

INFP엄마와 ENFP딸의 여행기

 딸과 단 둘이 떠난 여행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오자'였어요. 여러 명이 움직이면 각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어려울 수 있잖아요. 가끔은 가뿐히 둘도 좋은 것 같아요.


 원래 혼자 여행하고 싶은 마음에 제가 오래전부터 찜한 숙소를 1박으로 예약해 두었어요. 딸이 출발 보름 전에 함께 가겠다고 해서 겸사겸사 1박 더 하자 했죠. 여기저기 검색하다 급 떠오른 곳은 게스트하우스였어요. 딸과 함께 가는데 될까 하면서도 혹시 모르니 검색 들어갔어요.


 게스트하우스는 젊은이들의 낭만 같은 곳이잖아요. 가격 메리트가 무엇보다 예쁘고, 혼자 여행가도 저녁의 부엌에서 뭔가 대화가 충만하고 화기애애한 시간이 떠올라요.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조화가 신기루 같다고 할까요. 뭐, 바뀌었을지도 몰라요. 못 간지가 언 15년이 넘었으니까요.


 신혼 때 유럽여행을 다녀오면서 잠시나마 느꼈던 게스트하우스에서의 만남들이 참 그리웠지만, 아이들이 가족의 일원이 되면서는 막연한 그리움이 되었어요. 육아에 지친 마음 달래려 낭만이 흐르는 게스트하우스만 보면 자동반사로 기분이 들떠요. 열심히 글과 사진을 내려가며 보다가 아이들과 묵을 수 없다는 이용안내를 보기 전까지만요. 


 이번에도 실망할 것 같았지만 시간과 장소에 적합한 게스트 하우스를 알아보니 아이나 자녀에 관련된 문구가 없는 거예요. 또 혹시나 해서 열심히 찾고, 그래도 없어서 전화까지 걸었어요. 


"문의드리고 싶어서요. 혹시 12살 아이와 함께 묵어도 되나요?"


"네, 됩니다. 가능합니다."


 우와~ 감사하다며 전화를 끊었네요. 된대요!!!


 첫째 날은 제주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아늑하고 아담하고 평온한 우리만의 숙소였다면, 둘째 날 게스트하우스는 옹기종기 모여서 사람의 숨결이 공기에서 전해지는 곳이었어요. 입구부터 다섯 사람만 서 있어도 꽉 들어차는 것 같고, 배정받은 방은 더 했죠. 아이와 묵을 수 있는 2인실이었는데, 단독 화장실이 있고, 이층 침대와 화장대 앞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다였어요. 게스트하우스에서 이 정도면 만족이다 싶었는데, 저만 그렇다는 것이 문제였죠. 첫째 날 널찍하다 못해 우리 둘이 있어서, 무섭다고 느꼈는데 비교체험도 아니고 다음 날 바로 침대 위에만 몸을 뉘어야 하는 곳이니 충격적이었나 봐요. 딸에게는 생애 첫 게스트하우스였으니까요.

 

"엄마, 첫째 날 숙소는 느므느므 좋았는데 여긴 왜.."


 사실, 저도 좁은 공간에 있는 것이 다소 답답하기도 하고,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 소리도 다 들리니 불편하긴 했어요. 그래도 여행경비도 아끼고, 느낌이 좋지 않냐며 딸의 마음을 바꿔보려 했어요. 건물도 멋지고, 가격도 착하고, 깔끔 미니멀에 친절하시고, 맛난 조식까지 준다고요. 느낌으로 통하는 ENFP 딸도 엄마의 INFP 이런 느낌은 안 맞나 봐요.


 딸은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간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문 앞에 딱 한번 나왔어요. 공유 부엌에 가서 저녁 간단히 먹으려고 했는데, 이건 사실 예감이 불길했어요. 딸이 가지 않겠다고 해서 저 혼자라도 가 봤더니 20대, 30대 분들이 모여서 알코올을 마시며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중이시더라고요. 거기는 도저히 못 끼겠더라고요. 이런 낭만까지는 바라지 않았기에 뻘쭘하지만 전자레인지에 간단히 음식만 데워서 내려왔어요. 매니저님께 연락드려서 다른 공간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부탁드리고, 다행히 허락해 주셔서 먹을 수 있었어요. 원래 공유 부엌에서만 취사가 가능했거든요. 아이와 아주 약간은 조촐했지만, 나름 운치 있는 곳에서 저녁을 먹었답니다. 


 게스트하우스의 또 다른 매력은 조식이잖아요~ 딸은 여전히 나가지 않겠다고 해서 저 혼자 먼저 준비하고, 부엌으로 올라갔어요. 조식 먹을 때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토스트 샌드위치와 따끈한 커피, 간단하지만, 이 식탁 위의 풍경도 그리웠어요. 창밖을 보며 홀로의 여유를 맘껏 누렸답니다. 


 밤에는 못 봤는데, 강아지를 만났어요. 원래 저는 동물 공포증 있어서 저 멀리 보기만 해도 얼음이었는데요. 작년부터 함께 하게 된 저희 집 누리 덕분에 다른 동물들에게도 공포증이 사라졌어요. 제가 먼저 가서 털을 쓰다듬어주고, 이름을 물어보고, 아, 꿈에도 상상 못 하던 이 장면을 누리게 되네요. 정말 마음이 신기하죠. 40년을 무서움에 떨었던 대상들이 달리 보이고, 무섭지가 않다는 것이요. 15년 만에 제 옆에 든든한 딸이 함께 했다는 것과 저 역시 넓은 세상에서 키가 많이 자라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INFP 답게 그냥 직감적으로요. 


 오전 9시 50분.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딸과 다시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섰습니다. 2박 3일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이 시간을 정리하고 공항으로 향했어요. 배고픈 딸을 위해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 뜨겁게 먹어주고요. 딸이 게스트 하우스에서 조금 힘들어했는데, 나름 재밌었대요. 이층 침대에서도 자 보고, 언니 오빠들 여행하는 모습 보니 신기했나 봐요. 


 딸과 엄마 사이 서로의 니즈에 적절히 맞추고 조율한 여행의 마침 문장에 적어봅니다. 


'딸아 참 좋았다, 엄마 맞춰준 거 다 알아, 고마워~~ 우리 이렇게 여행인 듯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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