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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l 05. 2021

행복이란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 스물넷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


시간의 여유가 있다는 걸 알고는 도로 지표를 따라 에토샤 국립공원 내 두 번째 캠핑장으로 이동했다. 이름은 Namutoni 캠핑장으로, 예약을 하지 않고 방문했기에 곧장 로비로 갔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로비의 모든 시스템이 전산화 되어 있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나의 무지가 깊다. 캠핑장 직원은 전산을 이용해 바로 여분의 방갈로와 캠핑 사이트가 있는지 확인해주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방갈로는 있지만 우리가 하룻밤 묵기에는 비싼 가격이었고, 캠핑 사이트도 들어갈 수 있지만 우리에게 텐트가 없었다. 우리는 또 짧게 회의를 했다. 예상보다 숙소비에서 지출이 커지고 있고 환전해온 돈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여자 2명은 차에서 자고 남자 2명은 텐트에서 자자!'고 하다가도 '누워서 못 자면 굉장히 피곤하다, 텐트가 없으니 맨바닥에서 자야한다'는 난처함에 부딪쳤다. 방갈로에서도, 텐트에서도 잘 수 없지만 이곳에 꼭 머물러야 했다. 단체 우유부단에 빠져있다가 결국 우리가 내린 결론은 '여자들은 차 안에서 자고 남자들은 모기장에서 자자!'였다.

아프리카 여행 오기 전,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가 커서 동행들 몇 명은 모기장을 챙겨왔었다. 걱정이 많은 나는 당연히 챙겨 왔고 그것을 써보기로 했다. 남자들은 군대 얘기를 꺼내며 야외취침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게 다 추억이라며 웃어넘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입 돌아가게 추울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만으로도 재밌어했다.



직원의 공지 사항을 전달받고 캠핑 사이트로 입장했다. 우리에게 지정된 자리에 캠핑장 인부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대뜸 텐트를 빌릴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그 중 한 명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고 잠시 뒤 텐트 하나를 가져왔다. 필요한 두 개는 아니었지만 하나만 있어도 모두가 누워서 잘 수 있었다.


'와서 구하니 또 되는구나, 계속 쏫아날 구멍이 생기는구나' 싶었다.
모든 일이 갑작스러운데 하나하나 풀어가는 맛이 있었다.


터가 잡히자 우리는 간이 빨랫줄과 한국 마트 박스묶음용 끈을 나무에 연결했다. 그리곤 계속 이동하느라 말리지 못하고 들고 다닌 빨랫감들을 나무 사이에 촘촘히 걸었다. 이 나무에는 관광객이 걸어둔 듯한 철제 십자가가 있었는데, 아프리카에서 십자가를 발견할 거라 생각하지 못한 하국 오빠는 여기에 감동한 것 같았다. 내가 평소 같았으면 흘겨 봤을 십자가, 아니 혼자 봤으면 눈치 채지도 못할 철 꾸러미. '이게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특별한 일이구나, 왜 저렇게 감동하는 겨?' 하다보니 나도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다음으로는 장을 보러 갔다. Namutoni 캠핑장 내에는 마트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저녁 먹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살 참이었다. 고기와 야채, 물, 맥주 등을 사서 계산대로 갔다. 그런데 여기 계산원(cashier)이 정산을 정말 느리게 했다. 계산하는 도중에 몇 가지 항목이 추가 되고 손님이 몰리니 많이 헷갈려 하는 듯했다. 기다리다 못해 나는 어느새 계산대 안에 들어가 정산을 도와 주고 있었다. 어렸을 때 이용한 '눈높이 수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계산원을 보며 영화 「주토피아」가 생각났다. 영화에 행정원으로 나무늘보가 나온 게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난 경험을 작품에 녹이지 않았을까 싶다.


출처 : 영화 <주토피아>의 한 장면


이제 진정한 캠핑을 즐길 시간! 한국에서 2030세대 사이에서 캠핑이 유행인데 나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캠핑을 해보게 되었다. 해가 누인 풍경, 좋은 사람들, 허기진 배를 채울 재료들이 행복을 마중 나온 것 같았다. 주변 서양 사람들처럼 근사한 캠핑 도구는 없었지만 벽돌로 의자도 만들고 은박지로 팬을 둘러 그럴싸한 자리를 만들었다. 서로가 도와 고기를 구웠다.


예전에 유럽여행을 갔을 때도 이런 것들이 로망이었다. 젊을 때 할 수 있는 '가난한 여행', 근사한 레스토랑에 자주 못 가도 피자 한 조각을 먹고 힘을 내서 다니는 여행. 나중엔 편한 것들이 좋아 할 수 없으리라. 완벽하지 않은 것들은 추억을 더 빈틈없게 만드는 것 같다. 아프리카에서도 준비물들은 빈약했다. 그런데 가져온 것들을 허투로 두지 않고 다 사용하는 게 재미가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요리용 가위, 칼, 소금, 카레가루 등이 이곳에서 요긴하게 쓰였다.


고기가 다 구워졌다. 캠핑 분위기 제대로였다. 날이 좋아서, 맥주가 맛있어서, 분위기가 좋아 행복했다.


행복이란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게 아닐까!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기 위해선, 하루를 장악해 열심히 살아낸 게 전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안온한 일상을 보내면서 이완된 식사가 늘 즐거울 수 있을까. 편하기만 해서 큰 감흥이 없지 않을까. 나는 볕 좋은 봄날이면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고생 후에 맞는 화창함은 쉼이 될 수 있지만 막막할 때 들이미는 화창함은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 같다고. 그래서 날이 화창하다고 다 행복하고 좋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날의 저녁식사는 여행하는 내내 돌파해내려고 했던 상황들 이후에 온 쉼 같은 식사라 더욱 행복하고 즐거웠다. 고진감래(苦盡甘來)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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