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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r 03.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V 서울 종묘

산자와 죽은자가 공존하는 곳, 종묘

1392년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옛 수도이던 개성의 수창궁에서 조선 제1대 왕에 오르게 되고, 새 수도가 필요하니, 1393년 충청남도 계룡산에 도착하지만, 물류의 한계로 1394년 무학대사와 함께 왕십리 근처에 도착하고 다시 10리를 더 간곳이 지금의 경복궁터를 잡는다.

1395년 창건 전, 종묘를 조성한다.

자기 집을 지을 때는 개인 사당을, 나라를 만들 때는 나라의 으뜸이 되는 사당인 종묘宗廟를 먼저 만드는 게 선비나라인 조선의 자존심인것이다.


군주는 국가에 의존하고, 국가는 백성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백성은 국가의 근본인 동시에 군주의 하늘이다.

- 정도전 조선경국전


종묘는 경복궁 좌측에 사직단은 우측에 대칭으로 배치하는 게 도시계획의 기본.

따뜻한 우물이 있다하여 훈정(薰井)동. 민가들 전부 쫒아 내고.


1394년 이 동네 5만 6천 평에 공사 시작.  다음해 1차 완공.

태조 이성계의 4대조 위패(位牌-위패는 깊은 산속에서 자란 밤나무를 사용한다)를 모신다.

고조부 목조, 증조부 익조, 조부 탁조, 부친 환조.

전부 왕으로 추존(追尊: 왕위에 오르지 못한 할아버지들을 왕으로 모시는 것).

정문은 검박(儉朴 검소하고 소박).

여기부터 왕도 걸어 들어간다.

정문 들어가면 4각 연못위에 동그란 섬이 하나 떠 있다.

연못은 땅, 섬은 하늘이라 사각과 원.

망묘루(望廟樓: 왕이 종묘의 정전을 바라보며 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하는 정자)에서 잠시 대기한다.

종묘제례가 시작된다.

왕이 몸소 제사를 올리는 친제(親祭)때는

왕이 맨 처음 헌작(獻爵 술잔을 올림)하는 초헌관,

왕세자가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

영의정이 마지막으로 잔을 올리는 종헌관이 된다.

제관인 왕과 왕세자는 어숙실에서 재계(齋戒 심신을 깨끗이 하고 금기를 범하지 않도록 샤워)한 후, 어숙실에서 정전과 영녕전 동문으로 난 어로를 따라 묘정에 들어와 각각 정해진 자리인 전하판위(殿下版位)와 세자판위(世子版位)에 이르러 제사를 올릴 예를 갖춘다.

남문에서 정전까지 왜 까만 돌로 길을 낸건 신로. 신만이 다니는 길.

왕은 동문으로 입장 한다.

정전 길이는 앞의 1과 뒤의 1일 대칭이 돼야하므로 가로101m 세로 69m의 소우주.

2,300평의 정전공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대한 공간.

신성하고,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구름이 둥둥 떠 있고, 아무렇게나 깔려 있는 박석(薄石 얇고 넓적한 돌)은 무한하게 펼쳐지고, 파도가 치는 것도 같고...

박석을 다듬지 않은 건 손을 댈수록 더 망가진다는 생각, 투박한 자연미.

정전 앞은 좀 올렸다.

월대.

그래서 정전은 달이 되고, 구름도 떠다니고, 하늘엔 해가 있다.

그냥 배흘림기둥을 세우고 지붕 얹었다.  

왕이 바뀌거나 말거나 설계자가 죽거나 말거나 종묘 공사는 152년간 계속된다.

정전의 부족한 공간으로 서쪽에 영녕전(永寧殿: 길이길이 평안한 집) 짓는다.

정전에는 19실에 정전 좌측부터

제  1실 태조,

제  2실 태종,

제  3실 세종,

제  4실 세조,

제  5실 성종,

제  6실 중종,

제  7실 선조,

제  8실 인조,

제  9실 효종,

제 10실 현종,

제 11실 숙종,

제 12실 영조,

제 13실 정조,

제 14실 순조,

제 15실 문조,

제 16실 헌종,

제 17실 철종,

제 18실 고종,

제 19실 순종과 왕후들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를 모신다.


1546년 완공.

기둥과 기둥 사이 한 칸이 1실.

정전은 국보 227호. 영녕전은 보물 제 821호.  


1592년 왜놈들이 쳐들어 왔다.

조선 제 14대 왕 선조, 종묘의 위패 챙겨서 북한 의주로 야반도주.

왜놈들 돌아가고 선조 한양 도착.  

경복궁은 흔적도 없고  월성대군 고택 입주해서 월성대군 고택은 덕수궁이 된다.


1608년 종묘 중건해서 조상들 위패 다시 모신다.

선비들이 나서서 종묘에 선비를 앉힌다.  

위계를 낮추려고 정전 앞 박석 걷어 내고 잔디 깔고 공신당(功臣: 나라를 위해 특별한 공을 세운 신하) 건립한다.

16칸 건물에 83위의 신위를 모셨다.  

서얼 출신으로 한양을 완성한 위대한 건축가 정도전은  1398년 이방원의 칼 맞고


30년 긴 세월 온갖 고난 겪으면서 쉬지 않고 이룩한 공업,

송현방 정자에서 한 잔 술 나누는 새 다 허사가 되었구나.


473년만에 1895년 천재 건축가 삼봉 정도전 신원되고 1912년 후손들이 삼봉사당인 문헌사 건립하고 고종이 현판을 내렸다.

유종공종(儒宗功宗: 유학도 으뜸이요, 조선 건국의 공도 으뜸이었음)  

1910년 나라 망하면서 폭동 일어날까 없애지는 못하고 창덕궁 정문에서 동대문 쪽으로 도로를 뚫어 기氣를 끊는다.

창덕궁과 종묘 완전 차단하고 종묘와 창경궁을 잊는 육교 만든다.

원서동 이름도 창경원의 서쪽이라고하기도 하고 비원의 서쪽이라 하기도 하고.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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