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대해 고민하다.
최근 토이스토리 3을 보고 후기를 썼었습니다. 글에서도 말했듯이 토이스토리 1,2를 애지중지하며 본 저는 토이스토리 3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폭풍눈물을 흘렸습니다. 작중의 캐릭터들은 모두 행복하게 웃는데 반해 다 큰 27살 청년은 그 장면을 보고 엉엉 울다니 조금 꼴불견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눈물 없이 지내온 터라 아직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름 안도감을 느끼며 토이스토리3를 마무리 했습니다.
영화가 끝이 나고 아직도 남아 있는 북돋아온 슬픔의 여운이 가실 때 즈음, 문득 갑자기 내가 왜 슬픈지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슬픈 이유가 뭐지? 분명 작중 캐릭터들은 모두 웃고 있는데... 나는 왜 눈물을 흘리는 거지?' 감수성 깊은 중2병 같은 질문이지만 이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바닥 끝의 질문까지 다달았습니다. '슬픔이란 뭐지?'
제가 군대를 갈 때, 저희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제가 유럽으로 1년 교환학생을 떠날 때 저를 배웅해주시던 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날, 여자 친구가 기르던 고양이만 생각하면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군대를 갈 때 저희 아버지는 울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프랑스로 떠날 때 제 친구들은 아무도 울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 여자 친구를 생각하는 것으로는 크게 눈물이 나지 않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왜 서로 다른 슬픔을 느낀 걸까요?
저는 슬픔은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을 다시 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클수록 그 감정의 폭은 더 커지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옛 군대를 생각하셔서, 제가 군대를 가게 되면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비록 훈련소만 갔다 오면 되는 입장이었지만, 군대를 가면 보고 싶어도 못 볼 거라는 생각이 할머니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입니다.
제가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갈 때, 저를 공항 가는 기차역까지 마중 나오신 아버지는 눈시울이 붉었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떨리던 아버지의 목소리는 아직도 머릿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간 제가 다른 지역을 가거나 여행을 갈 때도 무덤덤하시던 아버지셨지만, 제가 1년간 외국에 살 거라는 생각에 많이 슬프셨던 모양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래도 스마트폰에 능숙하지 않으셔서 제가 외국에 가 있는동안 연락도 자주 못하고 얼굴도 보지 못할 거라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여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 저는 그녀가 키우는 고양이는 평생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양이는 사람보다 짧은 생을 살기 때문에 제가 빨리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는 이상 그 고양이는 영영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여자 친구와의 이별에도 흔들리지 않던 제 감정을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제가 군대를 1달만 갔다오면 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제 친구들은 제가 프랑스에 가더라도 sns나 보이스톡 등으로 충분히 연락을 할 수 있단 걸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전 여자 친구는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간의 이러한 믿음 차이는 결국 슬픔의 정도 차이로 나타났습니다. 그 사람을 다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매우 큰 슬픔을 느꼈습니다. 반면에 지금 헤어지더라도 다시 언젠가 만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슬픔을 매우 작게 느꼈습니다.
좋은 이별을 가지는 사람은 대게 작은 슬픔을 느낍니다. 서로를 다시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웃으며 인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토이스토리 3에서 앤디와 장난감들은 웃으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비록 이별을 하지만 서로에게 언젠가는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이들의 헤어짐이 영영 서로를 다시 보지 못하는 이별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앤디와 장난감들이 새로이 다시 노는 장면을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슬픔이 주는 고통은 큽니다. 슬픔에 잠긴 사람은 스스로를 자해하고 삶의 의지를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슬픔이란 것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느끼는 슬픔은 다시 보지 못할 거라는 착각 때문일 수 있습니다. 떠나가는 상대를 바라보며,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는 암울한 미래를 그리기보다는 다시 부둥켜안고 웃으며 맞이할 미래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볼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슬픔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누구도 알지 못하기지만 기왕 알지 못할 것이라면 조금 밝은 쪽으로 생각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