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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endtic Hannahism Jun 27. 2023

철학이 내게 처음으로 준 것

내 이름을 마주 대하여 사랑할 수 있게 된 일에 대하여

Von Lesen und Schreiben

[나는 누군가가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낯선 피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한가롭게 책을 뒤적거리는 자들을 미워한다. 

한때 정신은 신이었다. 그러더니 정신은 인간이 되었고,이제는 심지어 천민이 되고 말았다.

피와 잠언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읽히기를 바라지 않고, 내면화 시켜 배워지기를 바란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오랜만에 대화한 친구에게 알베르 까뮈를 아느냐 했다.

삶이 재미 없다 하였기에 물었다.

이방인을 읽어보라 할 참이었다.


"까뮈양반 허무론 양반 아니냐" 하였다.


그런게 아닌데.. 그냥 허무하다가 끝이 아닌데.. 싶었다.

"철학 뭐 쉽네 그냥 뭐 아무의미 없다

인간다울 필요가 뭐있어. 그냥 착하게 살라 아니야? "


그저 논쟁치 않으려 더 이야기를 끌지 않았고 네 의견은 그럴 수 있겠다.

하여 책을 권하지 않고

'네게 철학이 필요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철학이 쉽고

다면 왜 네가 그렇게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걸까..?'

라고 물었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내 이름을 상당히 싫어했다.

마침 어릴 때 유행하던 조안나 아이스크림과 유사해서 툭하면 동급생이든 선생님이든 아이스크림이라고 놀렸기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내 이름이 조한나여서 자꾸 아이스크림이라고 불리는 건지.. 놀림의 대상이 된다는 자체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뭔가 내 이름은 귀엽지도 않고. 상냥히 불러 지지도 않고.

어른들에게 조한나! 하고 불러지면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져 두려웠다.


나이가 한참 지나 한나 아렌트를 알게되었다.

그녀가 유대인으로 유대인 수용소에 갇혔을 때 처음 두 무리로 나뉘었다고 한다.


탈출을 할 무리와 탈출은 위법이니 기다려보자는 무리. 살아야 하는데 살기위해 범법행위를 해야한다는 아이러니. 그것 마저도 저항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 였다.


한나 아렌트는 탈출하자는 무리에 섞여 탈출했고 살아남아 미국으로 건너가 정치 사상가가 되었다.


그리고 하이데거와 인연을 맺고 내가 사랑하는 야스퍼스를 스승으로 두어 박사를 받았다.

그리고 전체주의의 기원과 인간의 조건 그리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집필하여 사람들에게 절대악의 두려움에서 생각하지 않는, 사고 하지 않는 무지에서 오는 악의 평범성에 대하여 경고를 하는 충격적인 사고의 전환을 제시했다.


그로인하여 그녀는 동류의 유대인에게도 공격을 받았다. 사람들은 아이히만은 괴물이 맞으며 살인마가 맞다고 믿고 싶어했다.. 평범하고 오히려 바보같은 저 독일인이 수많은 유대인을 죽인 살인마라고 몰아가기에는 임팩트가 부족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읽은 책에서도 기록물과 다큐에서도 그는 괴물이 아니었다. 그저 교만하고 생각하지 않고 거만한 하나의 사고 부족의 짐승이었다. (실제로 그는 아르헨티나로 건너가서도 자신의 습관을 고치지 않아 모사드에게 쉬이 잡혔다.)


야스퍼스는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탄생을 쓸 시기에 과잉으로 서사를 부여하자 악에게 위대성(satanic greatness)을 주면 안된다고 했다. 박테리아와 같은 아주 작은 하찮음을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상당히 공감했다.


내가 요즘 탐독하는 철학자와 사상가들은 거의대부분이 죽어 만날 수 없지만 그들이 남긴 책을 읽기만 하면 그들의 생각을 만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해를 못하면 설명 영상과 다큐를 여러번 보면 된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결코 철학은 쉽지 않다는 것이며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하면서 박해를 받으면서 신념을 지키면서 투쟁하여 피로 써내린 정신의 글들이 호소하며 우리에게 읽혀지길 소망한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 뒤로는

악세사리와 화장품을 사는 것보다 책방에 가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이름이 좋아졌다.


내게도 적지 않은 많은 일들이 있었고 상당수는 트라우마를 남길만한 것들이기도 하지만, 한나 아렌트와 비교하자면 홀로코스트급의 재앙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작은 투쟁으로 얻은, 껍데기를 깨고 나온 세계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렌틱(Arendtic)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에게도 작은 서사를 주기로 하였다.


나는 야스퍼스가 유대인 아내와 자신의 신념을 버릴 수 없어서  서로가 독약을 나누고 손을 맞잡은 것을 기억하고.

아렌트가 선동하듯 아이히만을 비난 하고 악마로 표현할 수 있지만 있는 그대로 표현하여 악의 평범성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것을 안다. 그런 그녀와 내가 같은 철자를 쓰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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