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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Nov 07. 2024

수요일엔 퀸빅토리아 나이트마켓으로 가자



작은 방에 히터를 단단히 틀어두고 나섰다. 마침 퀸빅토리아 나이트마켓이 열리는 수요일 밤이다. 트램을 기다리는데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워댄다. 요리조리 고개를 돌려도 사방에서 날아오는 담배 연기. 트램부터 담배연기까지 우리가 살던 북반구의 어느 도시와는 사뭇 다르다. 갑자기 시간 여행을 온 듯한 기분에 우왕좌왕하다가 애꿎은 트램만 한 대 놓치고 추위에 덜덜 떨다 겨우 다음 트램을 탔다. 퇴근 시간의 트램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거의 대부분의 승객이 퀸빅노리아 마켓 앞에서 함께 내렸다. 멀리서 봐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웅장한 천막을 향해 사람들이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 되어 흘러간다. 


먹거리를 파는 거대한 천막들이 저마다 냄새와 연기를 뽐내며 줄줄이 서 있다. 무엇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이다. 인파에 휩쓸려 가며 우리가 고른 메뉴는 필리핀 식 바비큐. 밥이나 빵 혹은 샐러드에 먹음직스러운 돼지고기나 닭고기 꼬치를 두 개나 얹어 준다. 오랜만에 고향의 맛과 가장 비슷한 양념 냄새에 취해 얼른 줄을 섰다. 배가 너무 고파서 바로 옆 천막에서 파스타를 한 접시 사와 기다리면서 뚝딱했다. 공항에서 먹은 부실한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이 오늘 먹은 것의 전부였으니 배가 고플 만도 했지. 효율적인 시스템 덕분인지 요리조리 꼬여 있던 줄은 금방 척척 줄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꼬치를 받아 들고 겨우 엉덩이 붙일 곳을 찾아 든든히 배를 채웠다. 그제야 너른 마켓이 눈에 들어온다. 기념품들은 시드니 패디스 마켓과 다르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마켓이라 그런지 특별한 이벤트가 더 많았다. 


시드니에서 둘이 가만가만 다니다가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 오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코로나 이후 이렇게 사람 많은 곳은 처음인 듯하다. 새삼스러웠다. 오래전 당연했던 것들이 한동안 당연하지 않았고 다시 조금씩 당연해지고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 어딜 가든, 그들도, 이곳도, 힘들게 그 시절을 헤쳐왔겠구나 싶어 짠한 마음이 든다. 우리 모두 힘들었지. 나도 그랬고 아이 역시 우울한 시간을 보냈고 남편 또한 겨우 버티며 살아남았다. 그런 시절을 보내고 다시 조금씩 익숙했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무사히 그 터널을 빠져나와 다행이다. 물론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조만간 두루 안녕이 찾아오길 빈다.  


돌아올 때는 트램을 타지 않고 도시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며 걸었다. 퀸빅노리아 마켓은 무료 트램존 북쪽 끝. 우리 속소는 남쪽 끝. 북쪽에서 남쪽으로 일직선으로 내려온 다음, 다시 서쪽으로 한참을 걸어야 우리 숙소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니 추위도 견딜 만했다. 밤의 도시를 걸으며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새로운 곳은 낮에 도착해야 해. 밤에 도착하면 너무 이상해.


맞아. 소개팅 상태가 얼굴을 가리고 있는 느낌이랄까?


나는 여기서는 못 살 것 같아.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런 느낌이 들어?


몰라, 담배 연기도 그렇고. 내가 도시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어색한가?


그렇네. 우리 딸은 도시에 살아본 적이 없는 시골 아가씨구나. 내일 낮에 보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


여기서 시골이라 함은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녔던 경기도 어느 시. 그리고 초등 시절을 보냈던 발리의 우붓이다. 광역시엔 살아본 적 없으니 시골 아가씨가 맞긴 맞다. 지금 살고 있는 조호바루가 그나마 가장 도시답지만, 한국의 휘황찬란한 도시에 비하면 그곳도 시골이나 마찬가지지. 어쨌든 아이가 그런 말을 하면 엄마들은 아마 다들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너무 시골에서만 키워서 애한테 이런저런 것들이 부족하면 어쩌지?’ 


하지만 도시에서만 키운 엄마들은 또 반대로 이런 고민을 할 것이다.  


‘내가 아이를 너무 도시에서만 키워서 이런저런 게 부족하면 어쩌지?’ 


이래도 고민 저래도 고민이 바로 엄마라는 사람들의 숙명이다.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두자. 하지만 오래 붙잡고 있을 고민은 아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니까. 그때그때 내렸던 결정이 우리에게 최선이었다고 믿을 수밖에. 


어쨌든 시드니가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고 있는 한적한 도시라면 멜버른은 괜히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긴장감 있는 도시 같다. 물론 이 섣부른 평가는 낮의 멜버른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은 밤의 멜버른을 걸어 본다. 뚜두두두 신호등 소리를 들으며 수많은 횡단보도를 건너 바둑판 모양의 시티를 한 칸 한 칸 내려와 숙소에 도착했다. 시드니의 신호등 소리가 다소 가볍게 ‘띠리리리’ 울렸다면 멜버른의 신호등 소리는 그보다 둔탁한 ‘뚜두두두’ 같다. 담배 연기와 뒤섞여 얼굴로 달려드는 찬바람, 비 온 후의 축축한 도로, 그리고 투박한 신호등 소리가 멜버른의 첫인상이다. 아, 밤의 첫인상. 내일이 되어 우리의 소개팅 상태가 베일을 벗으면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겠지. 그 또 다른 모습에 우리는 또 반해버리고 말겠지.


돈을 더 주고 겨우 얻어낸, 하지만 을씨년스러운 우리의 옥탑방 501호로 돌아왔다. 겹겹이 입었던 옷을 벗으며 아이가 말한다. 


아, 지겨워. 내일도 이 옷 입어야 해?


정말 그렇다. 그래서 정말 우울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걸 아이도 나도 알고 있다. 다 알면서도 그냥 한 번 투덜거려 보는 것이다. 그럴 땐 그저 ‘그러게 내일도 이 옷을 입어야 한다니 정말 끔찍하다’고 공감해 주면 된다. 씻고 침대에 누웠다. 지금까지 중 가장 작은 방이라 그런지 금방 후끈해졌다. 침대에 몸을 던지며 아이가 말한다. 


침대는 괜찮은 것 같네.


침대에 나란히 앉아 리셉션에서 가져온 멜버른 시내 지도와 각종 투어 브로셔를 살펴본다. 어쩐지 이제야 여행자가 된 느낌이다. 역시 여행은 아날로그지. 스마트폰 없던 시절, 워킹홀리데이 시절의 여행 감성이 되살아난다. 지도에 동그라미를 쳐 가며 내일은 어디를 가볼지, 어떤 길로 가볼지 머릿속에 저장하던 시절, 가다가 까먹으면 가방에서 종이 지도를 꺼내 커다랗게 펼쳐 들고 누가 봐도 ‘나 길 잃은 사람이에요’ 알리던 시절. 볼펜을 꺼내 가고 싶은 곳에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쳐본다. 내일이 되면 이 지도의 존재조차 잊고 다시 익숙한 구글맵에 의지하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새하얀 침대보 위에서 바스락거리는 종이 세상의 느낌이 전자파 안의 세상보다 훨씬 좋았다.


근처에 수족관에 있네. 수족관에도 펭귄이 있을까?


아이는 호주 여행을 결정한 순간부터 펭귄을 보고 싶어 했다. 왜냐고 물으면 그냥 귀여울 것 같아서라고. 흔쾌히 그러마 했지만 따져보니 비용도 이동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내가 워킹 홀리데이 시절 그 펭귄 투어를 해 보았는데 영 감흥이 별로였다. 그래서 확신의 P 답게 펭귄에 대해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하고 멜버른까지 온 것인데, 마침 숙소 근처에 수족관이 있는 것이다. 자세히 읽어보니 펭귄 친구들이 바로 그 수족관의 하이라이트인 듯하다. 


그래, 펭귄 투어까지는 가지 말고 그냥 수족관 펭귄으로 만족하자.


그리고 수족관 주변으로 갈만한 곳들을 살펴보았다.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몇 군데만 가지 싶었지만 그것조차 여기서 더 추워지거나 갑자기 비가 오는 일은 없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체력 또한 관건이고. 일주일 넘게 추위에 웅크리고 다니다 보니 둘 다 컨디션이 썩 좋진 않았다. 그렇게 대충 P다운 계획을 세우고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시드니에서는 들을 수 없던 트램 소리가 멀리서 딸랑딸랑 들려온다. 아이가 말한다. 


트램 소리는 좋네.


그래,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좋은 것을 찾아내니 다행이다. 입을 옷이 없어도, 추워서 금방 지쳐도, 그 와중에 이렇게 좋은 순간들은 있을 것이고, 그런 순간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내는 것이 지금 우리의 여행에, 어쩌면 여행이 끝난 후의 우리 삶에도 필요한 능력이겠지.


옷이 없다고 투덜대는 아이도, 그 순간 좋은 것을 찾아내는 아이도 다 내 아이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니 그렇게 변덕을 부려도 이해해 줄 만 하지만 사실 변덕이 더 죽 끓는 사람들은 바로 엄마들일 것이다. 빨리 컸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다가도 돌아서면 또 천천히 크길 바라는 게 바로 엄마라는 사람들 아닌가. 어떤 엄마가 그러지 않을까. 비단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에게만 해당되는 바람도 아니다. 이제 곧 집을 떠날 정도로 커 버린 아이를 보면서도 속절없이 빌어보는 바람.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를 동시에 바라는 이상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 엄마들이다.


이불속으로 파고든 아이가 책을 펼쳤다. 책 읽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그 책이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 영어판 <Human Acts>라면 더더욱. (그때는 한강 작가님이 아직 노벨상을 받기 전이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광주 출신 엄마의 뿌듯하고 대견한 마음을 누가 알까. 양쪽 입꼬리를 잔뜩 올린 채 아이를 바라본다.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어느 완벽한 순간. 


멀리서 구왕구왕 개구리 소리 같은 게 들려온다. 이상하다 도시에도 개구리가 있나 생각하는데 무거운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와 멜버른에서의 첫날밤을 가만히 닫아 주었다.



사진: UnsplashDominic Kurniawan Suryapu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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