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지 현실인지
출산 비긴즈 / 오전 6시 30분
약간의 경련이었다.
가늘게 한쪽 눈을 떠보니 다리 사이로 흐릿했던 운동화가 서서히 선명히 보였다. 이마와 목덜미는 식은땀으로 흥건했고 등줄기로 흐른 땀에 티셔츠가 달라붙어 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었는지 한참을 미동도 없이 그렇게 엎드려 있었던 것 같다. 천천히 허리를 펴고 무릎 위에 포개 두었던 두 팔을 앞뒤로 휘휘 저으며 뻐근해진 어깨를 움직여댔다. 그리고 고개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기와 온기가 동시에 느껴졌다. 겨울 막바지인 2월의 바깥 온도는 갑작스러운 한파로 차가웠지만, 이곳은 실내 공기 탓인지 약간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뚜딱, 뚜딱, 뚜딱, 뚜딱’ 아까부터 크게 소리 내던 체리 색 아날로그 벽시계는 분홍색 벽지에 별로 어울리지 않았고 조금 낮게 걸려 있었다. 소리가 균일하게 들렸지만 초침은 보이지 않았다. 오전 6시 30분.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두 다리가 무겁게 저려왔다. 불편했던 소파는 두 명이 좁게 앉거나 한 명이 겨우 쪼그려 누울 만한 크기로 오래 앉아 있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조용하다 못해 귀가 멍할 정도의 정적과 고요함이 느껴졌다. 실내가 워낙 조용해 그제야 저릿한 다리를 펴고 일어나니 무릎에서 두둑- 하고 뼈 부러지듯 소리가 났다. 천장이 높은 탓인지 그 소리는 곧 벽에 부딪혀 다시 돌아와 울렸다. 창문 밖으로는 분주히 가로지르는 자동차 조명들이 가득했다. 그 조명들은 곧 실내 안과 밖의 온도 차에 의해 뿌옇게 된 유리 사이로 수채화처럼 번져 보였다. 경직된 허리와 목을 재차 이리저리 움직이고는 세수하듯 얼굴을 쓸어내렸다. 버튼 식 자동문 위로 표찰이 보인다.
‘분만 대기실’
조금 전까지도 잠시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었다. 표찰을 보자마자 바로 현실임을 인지했고 내가 지금 이곳에 왜 와 있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입안이 말라 텁텁하고 썼지만, 물보다 커피가 간절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난 ‘흡연자들이 이럴 때 담배를 태우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약간 정신이 들었는지 배도 고파왔다. 하지만 그보다 커피가 더 먼저였다. 창가 맞은편에는 작은 테이블이 구석에 놓여있고 그 위에는 노란색 커피믹스와 쓰러질 듯 높게 종이컵이 쌓여 있었다. 반가웠다. 정수기 물을 종이컵에 반만 채운 채 휘휘 저어 커피를 급히 들이켰다. 뜨거웠지만, 단맛이 체내로 흐르는 게 느껴지고 나니 이제 좀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살짝 데인 듯한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평소라면 출근 준비에 여념 없을 이 시간, 좁디좁은 이 공간에 앉아 두 손에 쥔 커피 한잔에 의지한 채 하얗게 긴장된 가슴을 달래고 있다. ‘어떻게 돼가고 있을까. 난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그냥 이렇게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모든 순간순간이 처음이다 보니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 그리고 생각하면 안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온갖 경우의 수가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침착하게 기다려 보자고 심호흡으로 마인드컨트롤 해보지만 역시 초조하긴 마찬가지. ‘이렇게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라니…’ 다시 소파에 앉아 남은 커피를 마시며 자책했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지끈 머리가 아파져 왔다. 그리고 약 한 시간 전 상황을 떠올렸다….
“오빠…”
“…”
“오빠!”
“으응… 왜…”